감사를 회복하자

날짜: 
2004/10/11
설교: 

17:11-19 감사를 회복하자
불평만 일삼는 불평나라의 한 젊은이가 감사나라에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모든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떠나는 그 젊은이를 향해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서 외쳤습니다. "이번에 제발 감사를 꼭 배워서 우리에게도 감사를 가르쳐 주세요." 이 젊은이는 감사의 나라에 가서 아주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감사학 박사 학위를 따게 됐습니다. 이젠 더 이상 감사에 대해서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유식해진 그는 자랑스러운 감사학 박사 학위증을 가지고 드디어 자기 나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부둣가에는 기대에 부픈 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이를 마중하기 위해서 모여 있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정말로 감사를 잘 배워 왔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에이, 정말 지겨워요. 거기에는 감사밖에 배울 것이 없어요. 저는 감사만 징그럽게 배우다가 왔단 말이에요." 하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편 또 감사나라의 한 젊은이가 불평나라로 유학을 또 떠났습니다. 그 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면서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불평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 역사 등을 배워서 그들과 더 화목하게 여러 면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을 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아주 열심히 공부해 가지고 짧은 기간 동안 불평학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불평나라에 대해 잘 알게 된 그는 드디어 귀국하게 됐습니다. 그 가족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불평나라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아 왔는가 궁금해서 몰려 왔습니다. 그때 단상에 올라선 이 젊은이가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감사할 줄 아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르쳐 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합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즉 불평의 습관이 들어 이미 그 말과 행동이 불평으로 가득한 사람은 아무리 감사에 대하여 외국 가서 공부를 해도 그 불평의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늘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아홉 사람은 유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은 사람들과 격리되어서 따로 떨어진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그 근처를 지나가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런 뒤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제사장들에게 자기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열 명 모두의 병이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열 명의 행동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뒤로는 아홉 사람과 한 사람이 갈라졌습니다.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그냥 그대로 제사장들에게 자기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서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이방 사람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가던 길을 돌이켰습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최고의 경의를 표하면서 예수님께 사례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셨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감사에 대한 중요한 교훈들을 여러 가지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감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일이 쉬울 것 같습니까? 어려울 것 같습니까? 감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감사한 사람은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감사한 사람과 감사하지 못한 사람의 비율이 1:9였습니다. 그만큼 감사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롬1:21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즉 타락한 인간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 마음 속에 감사가 없으면 그만큼 "내가 타락한 성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몹쓸 문둥병에서 나음을 입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아홉 사람은 타락한 성품에 짓눌려서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갑니까? 그런데 타락한 성품을 극복하지 못하고 감사를 잊고서 상실한 채 살아갈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감사해야 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를 원하시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할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신자와 불신자가 나란히 담을 하고서 이웃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식탁을 앞에 두고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우리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그리고 난 뒤에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그랬더니 불신자가 대꾸를 했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 자유지만, 그런 미신적인 신앙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나한테까지 강요하지 마시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기 혼자 경건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불신자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우리 집에도 당신과 똑같이 생각하는 자가 하나 있습니다."
불신자는 내심 반가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아마도 그는 대학에
다니는 그 집 아들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집에도 똑똑한 친구가 한 명 있구먼. 누구인가? 대학 다니는 자네 아들인가?" 그랬더니 하나님을 믿는 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닐세! 우리 아들은 나보다 신앙이 더 좋아.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기르고 있는 돼지를 가리키는 말일세."
여러분, 하나님은 돼지에게는 감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된 우리들에게는 감사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열 명 모두가 문둥병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만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이방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그 모습을 보시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7∼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놀라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두 가지 면에서 놀라셨을 것입니다. 첫째로, 마땅히 돌아와서 감사해야할 유대인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둘째로, 기대하지 않았던 이방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이 오히려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는 그 사실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 사람 모두가 예수님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놀라게 한 성질이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부정적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긍정적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해서 기쁘시게 해드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놀라게 해드릴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부정적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를 느끼지 않는 사람,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있는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마리아 사람처럼 긍정적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해드릴 때, 예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사를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를 요구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욕심이 많으셔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감사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보는 것도 아닙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합니까? 빼앗긴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손해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사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에 열 명이 나옵니다. 누가 복있는 사람입니까? 감사하지 않았던 아홉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감사했던 사마리아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까? 대답할 필요도 없이 감사했던 사마리아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했던 사마리아 사람이 얻게 된 명예가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떠했습니까? 명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명예를 잃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사마리아 사람의 복있는 모습을 다시 살펴보십시다. 사마리아 사람은 제사장에게 자기의 몸을 보이러 가다가 도중에 자기가 깨끗함을 입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할 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입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여러분 생각에 그 사마리아 사람이 무엇이라고 큰 소리 쳤을 것 같습니까?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몹쓸 병에서 나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몸을 깨끗하게 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떻습니까? 큰 소리를 외쳤다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속으로 기도했겠지! 속으로 감사했겠지!"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속으로만 사랑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만백성이 보는 눈앞에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속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마음으로만 감사하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랑과 감사를 떳떳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에 감사와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하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만일 사마리아 사람이 다른 아홉 사람을 보았다면 감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이방인이고 저 사람들은 유대인들인데 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냥 가는데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더라면, 그는 감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들이야 넓은 길을 가든지 말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좁은 길을 가야지요.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 감사의 길을 가야되는 것입니다. "그 집은 나보다 돈도 많이 벌고 부자인데 헌금하는 것 보면 너무 작게 합니다."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르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감사를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면 절로 효도하는 자녀가 됩니다. 감사하지 못하니까 효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로 그 가정은 화목합니다.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만 회복하면 저절로 충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감사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타락한 습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를 원하시니까 우리는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감사를 요구하십니까? 감사 자체가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시옵소서!"의 받는 믿음에서 벗어나서, "감사합니다!"의 드리는 믿음으로 성숙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모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