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불평

날짜: 
2007/10/06
설교: 

시50:23 감사와 불평
아시다시피 감사의 반대말은 불평이며 불평의 반대말은 감사입니다. 초등학생이라도 감사는 좋은 것이며 불평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듭거듭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불평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평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요, 불평의 결과는 스스로를 파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요, 감사의 결과는 스스로를 크게 이롭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 말씀을 반대로 한번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불평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모독하나니 그 행위를 나쁘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보이리라. 즉 불평=하나님 모독이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반면 감사=하나님께 영광이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런 성경의 공식을 보면 불평은 100%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감사는 100% 좋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100%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100%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100%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물론 이 물음은 대답하기가 좀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때로 불평도 하고 감사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율로 보아 당신은 감사하는 쪽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쪽에 더 가깝습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계산하여 감사와 불평의 비율을 따져본다면 당신의 경우 그 비율이 얼마나 됩니까? 스스로 생각하기를 감사 대 불평의 비율이 거의 90% 이상 되신다고 하시는 분은 한번 마음속으로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감사 대 불평의 비율이 90%는 못되지만 그래도 80%는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은 마음속으로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또 다시 묻습니다. 나는 요즘 나쁜 일이 생겨서 마음이 영 좋지
않습니다. 고로 나는 요즘 나도 모르게 종종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감사 대 불평의 비율을 따진다면 60% 이하가 될 것입니다. “에이, 목사님은 왜 짜증나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기분 나빠 죽겠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한번 마음속으로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감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떠한 때에 감사를 합니까? 만약 좋은 일이 일어나면 감사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불평을 한다면 당신은 100% 감사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인생에 있어 만날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런 조건에서는 90%의 감사 생활도 하기 힘들 것이요, 어쩌면 50%의 감사 생활도 하기 힘들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돈은 그런대로 있습니다. 먹고 살만 합니다. 그런데 몸이 아픕니다. 그것도 고질병입니다. 잘 낫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그 고질병만 바라보고 그 고질병 때문에 감사를 못하고 불평만을 토해낸다면 당신은 평생 감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질병은 불평의 이유지만, 물질의 복은 감사의 제목이다.’라고 하시는 분들은 감사 대 불평의 비율이 50/50 일 것입니다. 그리고 고질병이 있지만 물질의 복을 주신 것을 바라보고 감사를 한다면 당신의 경우 거의 100%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사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좋지 못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좋은 것을 바라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어린이들도 다 아는 쉬운 예화를 들어봅시다. 옛날 어떤 마을에 두 아들을 데리고 사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짚신 장사를 하였고, 또 다른 아들은 우산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의 어머니는 언제나 근심과 한숨이 떠날 날이 없었고 가정의 분위기는 늘 우울했습니다. 그 이유는 비가 오는 날이 되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돈을 못 벌게 되므로 근심 걱정을 하고, 반대로 날이 맑으면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이 돈을 못 벌게 되므로 걱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사람을 통해서 충고를 받았습니다. "여보시오, 기왕이면 그런 걱정 근심을 사서 할 것 없이 반대로 생각하면 될 것 아니요. 아- 날이 맑으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반대로 우산 장사하는 아들이 돈 잘 벌 것이니 감사하면 되지 않겠소?“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그 어머니는 마음과 생각을 고쳐서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그 가정에는 감사하는 어머니를 통하여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 우리의 국가, 우리의 교회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즉 행복은 감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같이 한 번 따라합시다.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래도 불평하고 저래도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혹은 이러면 감사하고, 저러면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성경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즉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잘생겨도 감사하고, 못생겨도 감사하고, 키가 커도 감사하고, 키가 작아도 감사하고, 뚱뚱해도 감사하고, 날씬해도 감사하고, 가졌어도 감사하고, 못 가졌어도 감사하고, 건강해도 감사하고, 아파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 생겨도 감사하고, 나쁜 일이 생겨도 감사하고...
여러분, 어찌 이 일이 가능합니까? 그러나 신앙의 위인들을 보면 이렇게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분임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 누가 생각이 납니까? 욥이라는 훌륭한 분이 있습니다. 욕이 아니라 욥입니다. 동방에 사시는 이 분은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분에게 자녀의 복을 주시고, 아주 많은 물질의 복을 주시고, 명예의 복을 주셨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욥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하루아침에 모든 물질을 오랑캐가 빼앗아가고, 7남 3녀는 집이 무너져 모두 압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온몸에 악창이 들어 도대체 사람 같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위로를 하러 욥에게 찾아왔다가 그 재앙이 너무 심함을 보고 칠일동안 아무 말도 하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욥의 와이프가 욥에게 나아와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합니다. “아이고, 그렇게 혼자 하나님을 잘 믿는 척 하더니 꼴좋네.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때 욥이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의 말이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욥2:10)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지로다.”(욥1:21) 할렐루야! 만약 이 상황이 여러분에게 일어났다면 여러분의 태도는 어떻겠습니까? 과연 이 상황 속에서 여러분도 욥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답은 “당해봐야 알지요. 그때 가봐야 알지요.”라는 것이 정답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이 추수감사절이요 감사하는 절기인 만큼 이런 각오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 이 땅에 한번 태어났으니 불평보다는 감사를 하자! 그리고 기왕이면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어보자!”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나님, 저도 욥처럼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만약 여러분들이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는 감사해야지 하는 데도 어느덧 입에서는 불평의 말이 튀어나오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 불평은 결국 짜증을 일으키고, 짜증은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는 분노와 무기력증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그
마음에서는 어느덧 행복은 멀리 사라지고 맙니다.
신앙생활 가장 잘하는 비결은 감사입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비결도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도 감사입니다. 성도 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가족들 간에 화목 하는 비결도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자녀는 부모님에게 사랑받습니다. 감사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사랑받습니다. 감사하는 친구는 친구들로부터 사랑받습니다. 감사하는 이웃은 이웃들로부터 사랑받습니다. 감사가 있으면 사랑이 생기고, 불평이 있으면 미움이 싹틉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할 것을 찾으면 얼마든지 감사한 일이 있지만, 반대로 원망, 불평할 것을 찾으면 또한 태산같이 원망과 불평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종교 개혁가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할 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건짐을 받은 후에는 감사할 줄 모른다. 이는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페인의 극작가요 돈키호테를 지은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죄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지옥은 배은망덕한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마음으로 입술로 감사의 고백을 하기 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감사할 제목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감사하는 고백으로 가득 찬 ‘감사장’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 136편입니다. 같이 한번 펴보시지요. 제가 이 시편 136편을 읽으면서 ‘감사하라’는 말씀이 나오면 여러분들이 모두 큰 소리로 외쳐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민 생활, 유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나라에 와서도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면 이민 잘못 왔습니다. 유학 잘못 왔습니다. 가장 살기 좋은 장소는 감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입니다. 천국이 왜 그렇게 살기가 좋은 곳입니까? 그곳에는 불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모두가 감사하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아 감사! 너무나 위대한 단어입니다. 감사하는 성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감사하는 아내,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감사하는 남편, 너무도 멋집니다. 감사하는 자녀, 너무도 기특합니다. 감사하는 국민, 너무도 훌륭합니다. 감사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감사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기에 하나님께 영광이란 단어가 성립이 됩니다. 아무쪼록 감사하는 위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