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이기면 강자가 된다(동영상)

날짜: 
2013/04/27
말씀: 
시119:71
말씀구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설교: 

시119:71 고난을 이기면 강자가 된다.

지난주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 입에서 이런 말이 계속 나왔습니다. "고난을 이기면 강자가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고난에 지면 어떤 사람이 될까요? 당연히 약자가 되고,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극한 고난까지도 이기면 어떤 사람이 될까요?

그 사람은 영웅이 되거나 매우 뛰어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고난을 이기면 강자가 된다. 고난에 지면 약자가 된다. 극한 고난을 이기면 영웅이 된다." 한국의 어떤 등산가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높은 산을 정복했습니다. 산소도 희박한 그곳을 무산소 등정으로 올라가서 정상에다 태극기를 꽂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 기사입니다. "의지의 한국인! 드디어 정상에 태극기를 꽂다." "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여! " "왔노라. 보았노라. 정복했노라." 그리고 그 극한 고난을 이기고 산을 정복한 그 등산가가 고국에 돌아오자 그 날 석간신문의 헤드라인 기사입니다. "우리의 영웅!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극한 고난까지도 극복한 등산가를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학생들 교과서에도 나와 그를 본받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영웅이 되어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남들보다 내가 좀 더 뛰어나기를 원합니다. 돈 버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남들보다 자기가 더 공부를 잘하기 원하고, 운동선수들은 남들보다 자기가 더 성적이 좋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이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경우도 자기 자녀가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신 하나님도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 그래서 큰일을 성취한 사람들의 가장 꼴불견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그 후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후 자기만 잘났다고 하는 거만한 모습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타락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에게는 두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첫째, 남들보다 뛰어나야 되고, 둘째, 그 후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성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고난이라는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고로 성경은 아주 자주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여러분! 제가 나이가 이제 55세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나름대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아주 힘들었던 그 고난이 오히려 나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겪으면서 당시에는 그 고난이 단지 나를 파괴하고, 나를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저주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고난으로 인해 큰 유익이 온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더욱 큰 유익이 왔습니다. 여러분! 큰 고난이 올 때 기분 좋은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도리어 큰 고난 앞에서 사람들은 낙심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원망과 불평은 좋지 못한 태도인 것을 잘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 고난 앞에서 우리는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별별 일들을 다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덧 고난이 지나갑니다. 소낙비처럼 순식간에 빨리 지나가는 고난이 있고, 장마시즌처럼 아주 지긋지긋하게 오래도록 괴롭히다가 지나가는 고난도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야기 할 때 '불같은 고난'이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의학계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순위를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16. 염좌(삐는 것)

15. 자궁경부열상

14. 관절염 통증

13. 치통

12. 베임

11. 포진 이후의 신경통

10. 골절상

9. 타박상

8. Phantom limb pain (신체부위가 잘린 사람들이 그 부위가 잘려나가 없는데도 그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는 현상)

7. 암에 의한 통증(초기, 중기)

6. 만성요통

5. 출산 (경산-1회 이상 출산 경험자)

4. 출산 (분만법 및 출산 준비 훈련을 받은 초산)

3. 출산 (초산)

2. 손가락 혹은 발가락의 절단

그러면 과연 1위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사람이 불에 타는 고통입니다. 일명 '작열통'이라고 합니다. 이런 기사를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지옥입니다. 성경은 지옥(헬라어로 게헨나)을 가리켜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불로 소금 치듯 영원토록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지옥 이야기를 하면 "에이, 목사님이 우리 겁주면서 하나님 잘 믿게 하려고 있지도 않은 지옥 이야기를 하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설마 지옥이 있으려고!" 하면서 지옥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렇게 지옥의 존재를 부인해야 자기가 좀 더 자비롭고 고상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여러분! 한번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혹시 이 물음에 아직도 초보적인 질문을 하시는 분이 안 계시겠지요? 그 초보적인 질문이 뭡니까? "지옥에 니가 갔다 왔니? 그곳에 갔다 오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지옥이 있다고 주장하니?" 오늘은 이런 초보적인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안 될 것 같습니다.

혹 아직까지 이런 초보적인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듣고 싶으신 분들은 각각의 선교회에서 믿음에 서신 분들에게 답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누가 어떤 큰 고난을 당한다고 할 때 '불같은 시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 중에도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할렐루야!

여러분! 고난은 개인적으로도 다가옵니다. 가정적으로도 다가옵니다. 회사에서도, 국가에서도 고난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고난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교회적으로도 다가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믿음이 없었을 때에는 고난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고난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세월 낭비인 줄 알았습니다. 그 고난을 당하면 인생이 크게 손해 보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고난을 피해가려고만 합니다. 분명히 결혼식 때에는 어려워도, 슬퍼도 같이 고난을 극복하며 평생 살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막상 고난이 닥치면, 기분이 상하면, 너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그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피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난을 피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손해 보지 않고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고, 신사숙녀답게 쌈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성경과 매우 다릅니다. 고로 타락한 가치관입니다. 즉 사람들은 갈수록 고난에 너무 취약해집니다. 믿는 사람들도 고난을 보면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약한 신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작은 고난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어찌 큰 고난, 큰 핍박, 큰 시련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고난을 저주로만 해석하는 성숙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나요? 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을 믿어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여러분! 하나님 믿으면 병이 안 걸립니까? 하나님 믿으면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 믿으면 믿음이 강한 순서대로 649 복권 1등부터 순서대로 당첨이 됩니까? 아- 자꾸 제가 왜 이런 초보적인 설교를 해야 되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교회 다닌 지 얼마 안 된 분들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설교요, 들어야 할 설교지만, 적어도 교회에 다닌 지 5년이나 10년 이상 됐으면 어느 정도 고난에 대하여 정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강하다는 것은, 좋은 신자라는 것은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이지,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좋은 교회란 고난이 다가올 때 그 고난을 꿋꿋하게 극복해가는 신자들이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뚝딱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가정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고난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고난이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도 마십시오. 오히려 "고난아- 너 또 왔느냐?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너 또 나를 흔들려고 왔구나. 왔구나. 왔구나." 같이 한 번 따라합시다. "요놈아- 이제는 안 넘어간다." 이때 마귀는 말합니다. "이래도 안 넘어 가냐?" 또 따라합시다. "그래, 죽으면 죽었지 너한테 지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승리한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좀 더 고차원적이고 성숙한 신자가 되어 봅시다. 고난이요? 그 까짓것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참고 견디면 됩니다. 아니, 참을 필요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결국 고난은, 마귀는 제 풀에 쓰러지고 지나갑니다. 아무리 긴 고난이라도 70-80년이면 다 지나갑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여러분! 고난은 나를 결코 죽이지 못합니다. 고난은 나를 파괴하지 못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고난은 진짜 크리스천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는 그 고난의 파도를 타고 나중에 보면 더 안전한 곳,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다져지게 되고, 겸손해지게 됩니다.

고로 고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나중을 생각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결과를 생각하고 도리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웃을 수 있습니다.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쌓으십시오. 물론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고로 고난이 오면 주님께 더욱 매달려 주님과 함께 그 고난을 잘 이기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할 때 베드로는 "주님, 그런 고난당하지 말고 피해갑시다. 그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사단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즉 주어진 고난을 피해가는 것은 넘어지는 것이고, 실족하는 것이고, 그게 진짜 시험을 당하는 것이고, 그것이 매우 좋지 않은 악수인 겁니다.

여러분! 조금 있으면 한 번 보세요. 고난을 피해간 사람이 잘 되는지, 고난을 꿋꿋이 이긴 사람이 잘 되는지, 그 결과를 여러분 눈으로 직접 보시고 깨달으십시오. 따라합시다. "고난을 이기면 강자가 된다. 고난에 지면 약자가 된다. 극한 고난을 이기면 영웅이 된다."

여러분! 영웅에게는 훈장이 따릅니다. 명예가 따릅니다. 부수적인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이 따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극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는 신앙의 영웅이란 칭호와 함께 각종 좋은 것을 하나님이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누가 빼앗지 못합니다.

가끔 이민이나 유학을 오신 분들 중에는 도피성 유학이나 도피성 이민을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는 어려움이 오면, 고난이 오면 피할 길부터 찾는 겁니다. 이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피할 길이 우선이 아니고, 정복이 우선입니다. 피할 길은 정 안될 때 하나님이 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성경구절 아시지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결론을 맺습니다. 누가 좋은 친구입니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누가 좋은 남편(아내, 자녀, 신자, 국민)입니까? 어려울 때 그 고난을 피하지 않고, 진리로 함께 그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이 진짜 좋은 남편(아내, 자녀, 신자, 국민)입니다. 여러분! 어떤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각자가 주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답안지를 쓰시고 고난을 이기는 좋은 신자, 믿음의 영웅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