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날짜: 
2006/04/02
설교: 

요15:5-7 그것은 하나님의 관계다.
어떤 분이 인터넷에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 어려워라. 제 질문에 답 좀 해주세요. 누가 저보고 하나님을 믿으래요. 겁도 주고요. 저주도 받는다는데.... 아~ 도대체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죠?”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분이 이렇게 답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요, 우리 인간은 그 분의 피조물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만드셨죠.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이 만드시지 아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나를 나으신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는 분들은 하나님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분들은 도대체 하나님이 누구고 나와 하나님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합니다. “무슨 서양 신을 믿으라는 모양이다. 바쁜데 무슨 하나님을 믿느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혹시 우주인이 아니냐? 나는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산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은 대개 인간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작년(2005년) 10월 24일부터 31일까지 한 기관이 한국의 전국 남녀 직장인 1067명을 대상으로 “귀하께서는 타인과 친해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성 직장인 587명 중 37.1%가 “직장상사나 동료와 함께 담배를 피운다.”고 응답해 가장 많았으며, 그 뒤로 “술자리를 함께 한다.”가 35.5%로 나타나 73%에 달하는 남성 직장인들이 대인관계를 위해 술과 담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어 “밥을 같이 먹는다.”가 15.8%, “직장동호회나 취미활동을 함께 한다.”가 9.1%, “기타” 2.5% 순이었습니다.
즉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해서 싫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참으면서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대인관계를 중요시 합니까? 그 이유는 상대방이 나의 행복에 깊이 관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하고 관계를 잘 맺지 못하면 회사 생활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진급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고로 대인관계를 잘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찌 보면 자신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잘 맺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어려움이나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자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의 육체적 질병과 고통, 그리고 마음의 아픔까지도 고치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총각 전도사 시절에 오산리 기도원에서 상담실에서 상담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별별 모습의 문제들을 가지고 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담을 듣다 보면 그 문제가 너무나 복잡하여 머리가 혼란해지고 마음도 육체도 지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단이 되었는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아주 혼란이 올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과 아내의 부부 문제가 있는데 그 사이에 어떤 여자나 남자가 끼어들어 삼각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삼각관계에 또 다시 시집 식구나 친정 식구나 친구나 이웃이 끼어들어 사각 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사각 관계에 또 다시 다른 사건이나 인물이 맞물리고 복잡하게 꼬입니다. 그런 경우 본인은 어쩌고저쩌고 설명을 하지만 상담을 해주는 분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상담을 해주는 분은 제대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됩니다. 이때 인간적인 경험이나 지식의 관점에서 상담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면 자칫 실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그런 복잡한 상담을 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상담실에서 나오면서 연세가 많이 드신 목사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목사님, 이런 복잡한 경우에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이 아주 간단하게 명언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문제네!”
즉 상담자가 이런 저런 복잡한 문제를 이야기 하지만 결국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단이 된 문제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인간관계가 얽히고설키면 그 문제가 하나님과의 문제가 아닌 단지 인간관계에서만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마음은 더욱 힘이 들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아주 힘이 드는 문제가 있습니까? 이제는 그 문제를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보지 마시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보는 시각을 가져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문제의 발단을 물어보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들의 문제의 발단과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은 이렇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5,7)
즉 문제의 발단은 내가 하나님을 떠나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진 것에 기인한 것이요,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다시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것을 문제의 발단으로 보기가 쉽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일을 해결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요,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먼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중학생 분이 이런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중3 남학생입니다. 저는 중1때부터, 하나님을 영접하고 정말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중2 때부터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의 본질로 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그런데 3개월 정도 전부터 자꾸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죄를 지으면 죄책감이라도 남아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율법도 거의 다 지킬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일마다 교회에서 은혜는 받습니다. 회개하고 눈물도 엄청 흘리면서, 그런데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제 마음대로 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ㅠㅠ 하나님께 제발 예전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도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정말 심각합니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ㅜㅜ 빨리 답변해 주세요.”
여러분, 중학생이 이런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고백을 할 정도면 믿음이 상당히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가 3개월 전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졌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고충을 털어놓는 분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3-5)
즉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진 때가 언제부터인지,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는지 자세히 원인을 분석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깨달아지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회개도 하고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 관계가 나빠지는 이유가 어떤 특별한 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만하다거나, 불순종하거나, 음란하고 방탕하거나, 범사에 불평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회개를 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특별한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열정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런 경우는 다시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분은 철야예배도 나오시고, 목표를 정하여 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읽고, 전도도 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스스로 열심을 내야합니다.
여러분, 혹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잘 오지 않고, 찬양을 해도 감동이 없고, 성경을 읽으면 졸리기만 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고, 세상 잡다한 생각만 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가정의 희망을 위하여 남편과 아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름답고 친밀하게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의 희망과 발전과 부흥을 위하여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희망과 절망도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요, 발전과 후퇴도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요,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과의 관계요, 축복과 저주도 하나님과의 관계요, 불행과 행복도, 천국과 지옥도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고로 희망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각자가 회개도 하시고, 각자가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합심 기도 제목 중 착하게 겸손히 성실히 헌신하자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헌신을 해도 착하게 겸손히 성실히 하지 않고 그 반대인 악하게 교만히 불성실하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고 도리어 나쁘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서 내가 저주와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었기에, 그로 인해 인간에게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대신 형벌을 받아 죽으신 것 아닙니까? 고로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주홍 같은 죄, 진홍 같은 죄가 흰눈보다 양털보다 더 희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축복을 누릴 수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어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므로 그 분이 항상 우리 옆에,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늘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어 이 외국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