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로 옷 입고...

날짜: 
2012/12/01
설교: 

롬13:11-14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남자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비군복을 입으면 사람들이 이상해집니다. 사회에서 나름대로 지위와 체면이 있는 분들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함부로 행동을 합니다.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고,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 침도 아무데나 뱉고, 강의 중에도 잡담하며 떠들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현역 군복을 입고 있었을 때는 어땠나요? 그때는 군기가 들어가고, 훈련을 받으면서 늠름하고 절도 있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군대 예절에 따라 비가 오더라도 우산을 쓰지 않고, 겨울에는 아무리 손이 시려도 장갑을 낄지언정 호주머니에 손 넣지 않습니다.
즉 옷이 사람의 행동을 좌우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입은 대로의 사람이 된다.” 이 말은 군인들에게 제복을 입힘으로 많은 효과를 본 나폴레옹의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입은 옷에 어울리는 행동거지를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겁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모든 학생들이 교복을 입었습니다. 학창 시절 때에 교복을 입으면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학생답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복을 벗고 사복을 입으면 방종하게 됩니다. 어른들만 가는 다방에 출입하고, 미성년자 입장금지 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드나들고,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에 출입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의상치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복을 통해 정신 질환을 치료하거나 혹은 성격을 개조하는 보조적 치료방법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독한 개구쟁이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아주 좋은 신사복을 사서 입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행동이 조신해지고 성격도 온순해진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옷에 맞춰져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옷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어땠나요? 활짝 웃었나요? 두 사람 다 하나님 된 모습을 보고 기뻐서 얼싸 안았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습니다.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에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끄러움이 일어나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서로가 벌거벗고 있는 알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고사하고,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입혀 주셨던 신령한 옷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거룩하고 의로운 옷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영도 거룩했던 사람이 몸도 마음도 영도 더럽혀지고, 그 더러움이 알몸의 육체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보기에도 민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몸에 걸쳐야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급히 넓적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몸에 걸쳤습니다. 잠시 안심을 하고 서로를 멋쩍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에 무화과나무 잎 치마가 자꾸 말라들면서 오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구멍이 뻥뻥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치가 다시 드러나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벗어 던져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좋은 옷을 만들어 입혀 주마, 전혀 수치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혀주마, 영원히 수치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선물로 주마!"
그리고는 짐승을 잡아서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햇볕이 내리쫴도 옷이 말라서 올라가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수치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속죄한다는 단어는 '카파르'(כפר)인데, 무슨 말인가 하면 '덮어서 가리다'(cover over)는 뜻입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인간이 고안해낸 철학과 종교 사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옷으로는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습니다. 즉 죄의 정죄함을 가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적인 옷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6의 말씀입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반면 양의 가죽 옷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만든 옷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셨을까요? 짐승을 죽였을 겁니다. 무죄한 짐승이 인간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속죄해 주기 위해 대신 피 흘려 죽은 겁니다. 대속의 제물이 된 짐승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구약 시대에 계속 짐승 제사 제도가 시행된 것은 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한 분이요 의로운 분이지만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 흘려 죽으신 겁니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만 죄가 가려지고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옷을 가리켜 '세마포 흰 옷'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세마포 흰 옷을 입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흰 세마포 옷으로 단장되어 있는 자신의 신부인 성도들을 맞이하여 천국으로 이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그 후에 세상은 심판을 받아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 번 자신의 영적 모습을 체크해 보십시오. 과연 나는 흰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혹시 그 옷이 세상의 죄로 얼룩지고 더러워지지는 않았는가? 혹시 죄로 인해 옷이 더러워졌다면 회개함으로 그 옷을 빨리 빨아야 합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회에서 일했던 시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청년회 총무가 주님의 일을 상의하자고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방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시끄러운 세상 노래가 나오는 장소였습니다. 몇 시간 동안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가 왜 이렇게 마음이 안 좋지? 주님의 일을 의논하고 왔는데..."
그런데 그 날 밤 꿈에 하나님이 이런 것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어제 갔던 그 다방 그 자리에 앉아있는데 다방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는데 그것이 똥물로 튀기는 겁니다. 그 똥물이 나의 흰 옷에 묻어서 더러워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다방 아가씨가 자기의 더러워진 옷을 자꾸 내 옷에 비벼서 내 옷도 더러워지게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 세상 음악을 듣다 보면 심히 타락한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음악을 들으면 우리의 영적 옷이 똥물로 더러워지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으로 각종 더러운 것들이 집안까지 침투해 들어와서 우리들의 흰옷을 똥물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똥물사이트들에 들어가 밤새도록 똥물에서 수영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됩니다. 빨리 그 옷을 빨아야 합니다. 어떻게 빨아야 하느냐고요? 이 세상의 세척제로는 빨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아무리 강한 브리치(bleach)를 써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빨아야 합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여러분! 천국은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는 성도들도 흰 옷을 입고, 천사들도 흰 옷을 입고, 예수님도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천국 파티장에 똥물이 묻은 옷을 입고 오면 쫓겨나고 맙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임금님이 혼인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종들을 보내어서 모든 것이 준비 되었으니 혼인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을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혼인자치에 오지를 않습니다. 혹은 밭으로 가고, 혹은 상업차 가고, 어떤 사람들은 종들이 자기를 귀찮게 한다고 그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임금님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사람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로 심판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님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8-14)
여기 보십시오. 하늘나라 임금님인 하나님이 그 아들 되시는 예수님의 7년 혼인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자에게 묻지 않습니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뇨?"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올 때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은 흰 옷을 입고 와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늘나라 혼인 잔치에는 다이아몬드나 보석으로 치장한 비싼 옷으로도 입장이 안 됩니다. 세상 권력자의 옷을 입고와도 입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는 수족을 결박당하여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슬프고 억울하면 이를 갈아야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나라 혼인잔치 날이 매우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고로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예복을 미리미리 준비하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의 예복을 빼앗지 못하도록 잘 보존하십시오. 즉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고 신앙을 잘 지키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오늘 본문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의의 흰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옷에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예수님의 신부로서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각자 스스로를 살펴보십시오. 지금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있습니까? 혹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분은 빨리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 의의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그 옷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고, 즉 바른 신자의 생활을 통하여 천국 파티장에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 철학과 세상 종교의 옷을 입고는 천국 파티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 다이아몬드와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옷으로도 그 파티장에는 출입이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하는 7년 혼인잔치의 시기가 매우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 날 우리는 예수님이 오실 때에 횐 옷을 입고 부끄러움이 없이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7년 환난을 피하고, 천국에서 혼인잔치를 하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그 혼인잔치 파티장에서 기쁘게 만나 인사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옆에 분들에게 서로 인사를 합시다. "천국 파티장에서 꼭 만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