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려운 시기에도

날짜: 
2012/03/14
설교: 

왕상17:8-16 그 어려운 시기에도
이스라엘 아합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자 이스라엘을 비롯해 그 주위의 팔레스타인 온 땅에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 땅은 큰 기근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절망과 탄식이 온 땅에 가득하고, 곳곳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사르밧 동네의 한 과부는 아무런 염려 없이 그 위기를 잘 극복하며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의 과부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녀가 그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며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의 사르밧 과부를 통하여 그 어려운 시기에도 살아날 수 있는 비결을 배우며, 우리도 이 어려운 이민생활을 잘 극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축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본문은 이 여인은 과부라고 합니다. 즉 그녀는 돈도 없고, 빽도 없으므로 이 극한 기근 속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어린 아들까지 달렸으니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기근은 그녀가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라고 피해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근은 그녀에게 가장 먼저 잔인하게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여인에게는 기근이라는 문제를 자기 스스로 해결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침내 삶을 거의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고 죽기 위해서 성문 앞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되지 않는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면 "에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삶을 포기하며, 나아가 그 고통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의 포기나 죽음은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나 가족들에게 더 큰 절망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어서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하나님 의 자녀가 환경이 어려워 낙심과 절망 속에 삶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절망하다가 삶을 포기하고 죽어버린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수가 있겠습니까?
아주 어려운 환경을 맞이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을해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살아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절망 속에 살지 않고 희망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장차 부요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질병으로 인해 신음하면서도 장차 치료와 건강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우리는 그 뒤에 있는 부활을 바라보고 희망을 갖습니다.
본문의 과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며 말합니다. “그 후에는 우리가 죽으리라."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말합니다. “두려워 말아라.” 여러분, 두려워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너의 어려움, 나의 어려움,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이민생활을 하면서 겪는 우리들의 어려움을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그 분은 장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요,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들의 사정과 형편을 보시고 있고, 우리들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시고 있고,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믿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다면 결코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기를 가지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결국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죽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이 사르밧 과부에게 희망이 빛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성문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이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말합니다. “물 좀 마실 수 있습니까?” “예, 갖다 드리지요.”
“잠깐, 당신이 물을 가지고 올 때에 떡도 좀 한 조각 가지고 오시겠습니까? 제가 상당히 배가 고픈데요.” 아니 여러분, 이 큰 기근 중에 물을 달라는 것도 대단히 미안한 일인데 떡을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부자 집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에게 말입니다. 도대체 이 엘리야 선지자 미친 겁니까? 뭡니까?
만약 이 과부가 이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당신 미쳤어요? 이 큰 기근 중에 음식을 공짜로 달라고 하다니?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딴 데 가서 알아봐요." 만약 오늘의 과부가 이렇게 쏘아 붙이고 그냥 돌아섰다면 이 과부는 아마 기근을 버티지 못하고 가장 먼저 죽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복을 받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히 아룁니다. “미안하지만 저에게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있는 기름 조금밖에 없는데 그것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제 아들과 죽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힘든 일이 있습니까? 자신의 그 어려움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과부에게 엘리야 선지자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가서 그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서 먼저 나에게로 가지고 오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면에 비를 내리는 그 날까지 그 통이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르밧 괴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이 큰 기근 중에 밀가루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이런 소망의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사르밧 과부의 마음속에는 찬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즉시 떡을 만들어서 엘리야 선지자에게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에 순종한 그 날부터 그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름병의 기름이 아무리 써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샘물 솟듯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밀가루 통의 가루도 아무리 써도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녀는 이 큰 기근 속에서 도저히 살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3년 6개월이라는 심각한 기근 속에서도 죽지 않고 잘 먹고 잘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인간의 힘으로 된 것입니까? 이것이 어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된 것입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희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취하시겠다는데 누가 안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위하여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베푸시는 오늘과 같은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내가 모르는 계획을 이미 다 세워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다가오면 미리 겁을 먹고 낙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를 찾아올 때까지 사르밧 과부는 자신에게 축복이 있을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녀를 비롯해 그녀의 아들까지 살릴 계획을 다 세워 놓고 계셨습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은 나를 행복하게 할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낸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동네에 오기 전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큰 기근으로 인해 그릿 시냇가의 물도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쓰는 엘리야 선지자를 살리기 위해서 또 다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사르밧 과부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엘리야가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고, 사르밧 과부도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삶의 고통 속에서 낙심하고 좌절하며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만 하면 절대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상기 시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행복하게 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이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에스겔 16장에 보면 어떤 부모가 자기가 낳은 피투성이 딸을 들판에 내다 버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곁을 지나다가 피투성이가 된 어린 아이가 살겠다고 발짓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이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이를 데려다가 길러서 어엿한 처녀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나는 살길이 없어도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살려 주시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시고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도 사르밧 과부에게 희망이 있었고, 기적이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희망의 하나님이 우리가 모르는 계획을 나타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사르밧 과부를 생각하셨을까요?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눅4:25-27)
여러분, 예수님이 자라신 곳은 나사렛이란 동네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만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도, 선지자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잘난체하는 허풍쟁이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니까 예수님은 그곳에서 많은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적은 믿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받지 못합니다. 불순종하는 자는 누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엘리야 선지자는 사르밧 과부에게 기근 중에도 살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방법과 그 계획에 믿고 순종하면 사르밧 과부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큰 기근 중에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을 아멘으로 받기가 어찌 보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 과부가 있는 것이라고는 기름병의 기름 몇 방울입니다, 가루통의 가루 조금입니다. 그것으로는 조그만 떡 하나 만들 정도입니다. 그 귀한 것을 갑자기 나타난 낮선 손님에게 대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쉽지 않은 것을 나에게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내게 큰 손해가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따르면 나와 내 자녀가 죽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원래 순종이란 단어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맞지 않을 때에 성립하는 단어입니다. 순종을 하려면 내 생각을 먼저 꺾어야 합니다.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상당히 힘이 듭니다. 아무나 순종의 길로 들어서질 못합니다. 고로 평상시에 순종을 연습하고, 순종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순종하게 하옵소서."
지난주에 저희 교회가 처음으로 홈리스 사역을 했습니다. 15명의 노숙자가 교회에 왔습니다. 그 중에 보니 임신 7개월인 임산부가 있었습니다. 20세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인디안 입니다. 남편도 같이 왔는데 역시 젊은 인디안 입니다.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재들 사고 쳤구나!"
여러분, 저도 20살 먹은 장성한 딸이 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밴쿠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내 자녀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제 딸도 언제든지 사고 칠 위험이 있고, 사고 날 위험이 있습니다. 한 번 물어봅시다. 여러분의 자녀가 사고 쳐서 이와 같이 임신을 하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갑자기 생각이 좀 복잡합니까?
아무튼 제가 그 홈리스 임산부를 보면서 느낀 것은 "아이고, 불쌍한 녀석들! 어쩌다가 저렇게 됐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속에서 말씀합니다. "재들이 그렇게 불쌍하니? 그러면 저들에게 니가 가진 돈을 줘라." 저는 지갑을 열었습니다. 갈등이 다가왔습니다. 저도 요즘 돈이 좀 달립니다. 한 달 한 달 밸런스 맞추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밤새 갈등하다가 새벽에 지갑을 열어 돈을 줬습니다. 아주 조금입니다.
조금이지만 저에게는 분명히 손해였습니다. 그 돈을 주고 나서 나는 다시 한 번 은행 잔고를 염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 돈을 주고 나니 하나님이 그보다 7배나 더 많은 돈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순종의 결과입니다. 순종은 처음에는 손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큰 축복입니다.
결론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살릴 계획이 있습니다. 고로 낙심은 금물입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순종하면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이 어려운 외국 생활 속에서도 축복과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그 어려운 시기에도 사르밧 과부를 살리시고, 그녀에게 희망을 주신 하나님,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시옵소서. 희망의 계획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들이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