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기다리라

날짜: 
2005/04/17
설교: 

애3:19-26 기도하고 기다리라
사람이 시험과 고난을 당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고난 속에 담겨있는 고통과 슬픔, 조롱과 수치 및 자존심의 상처 등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중에 대부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 정도 잊을 수 있고, 또한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험이 세게 왔는데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앉아있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기다리지 못하고 움직입니다. 평소에는 신중한 사람들도 시험의 상황에서는 경솔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안전부절 하지 못한다."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즉 시련을 만나면 사람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당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다가 시련이 오면 직장을 옮기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다가도 시험이 들면 학교를 옮기려고 합니다. 또한 교회를 다니다가 시련이 오면 가만있지 못하고 교회를 옮기겠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마음은 스스로의 마음이 안절부절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환경을 바꿔보면 무엇이 좀 나아질까 이런 마음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극심한 시련과 시험을 만났을 때에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 25-2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오늘의 본문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극심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9-20절에 자신의 고난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여러분, 예레미야는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쓰디쓴 쑥을 씹은 것처럼 얼굴의 표정이 찡그려졌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시험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는 낙심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의 때에 예레미야는 그 해결책을 깨닫고 21-25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히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여러분, 예레미야는 고통과 시험이 다가와도 자신이 그 고난과 시련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는 낙심합니다. 답답해합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떤 시련과 시험이 다가올 때 그것을 돌릴 만한 방법이나 능력이 있으면 참 좋은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답답하지요. 마음이 상하지요. 그래서 무엇인가 탈출구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별의별 방법이 다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스러운 탈출이나 불완전한 인간의 방법들을 동원하다 보면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치달아서 마치 선로를 떠난 열차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답답함이 더욱 심하게 되겠지요. 후회와 더불어 더 큰 낙심이 다가와 그 고통이 더욱 심하게 되겠지요.
고로 스스로의 힘으로 풀기 어려운 시험과 시련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이 문제를 풀어주실 것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떠난 열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일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믿음이 약하고 체험이 없어서 “하나님을 기다려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내가 직접 나서야지!” 하고 생각만 하는 분들에게는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차라리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리석은 일로 들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종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시편 62:5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 또한 이사야 25:9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여러분, 환경이 아주 어려울 때는 사람이 일하는 것 보다 주님이 직접 나서서 일하는 것이 좋을 때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즉 구원받는 방법,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내가 마음이 급하고, 환경도 시시각각 좋지 못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데 단순히 기다린다는 것은 보통 신앙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중무장한 애굽의 기마대가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넘실대며 막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아- 우린 이제 모두 죽었다!" 하면서 이리저리 우왕좌왕합니다. 이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여러분,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이 닥쳤는데 가만히 있으랍니다. 즉 우리에게 어려움이 올 때 당황하여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다름 아닌 안정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솜씨를 기다리며 제자리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큰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만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렸더니 그들이 홍해수에 다 빠져 죽었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이집트 군사들에 의해 칼에 죽고 다시 종살이를 하러 애굽의 포로로 끌려갔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불신자도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놓여있는 홍해가 갈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들은 모두 홍해수에 몰살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성경인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왜 그리 문제 앞에서 우왕좌왕 합니까? 마음은 왜 그리 초조해 하고 답답해합니까? 오늘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애3:25-26) 할렐루야!
여러분, 요즈음은 비행기가 모두 제트 엔진입니다만 옛날에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종 프로펠러 비행기 엔진에 쥐가 들어와서 운동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엔진에 쥐가 들어와서 엔진이 스톱되므로 비행기 추락사고가 종종 일어났습니다. 이때 초보자 조종사는 엔진 속에 들어온 쥐를 잡겠다고 운전에는 신경을 안쓰고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그런데 노련한 조종사는 엔진에 쥐가 들어오면 쥐는 신경도 안 씁니다. 대신에 뭐합니까? 비행기의 고도를 높입니다.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기압도 함께 높아지고 결국 쥐가 힘들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비행기는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가운데 문제의 쥐가 뛰어다닐 때, 그 쥐 잡겠다고 같이 뛰어다니면 문제의 쥐와 함께 추락할 수 있습니다.
고로 문제를 당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 아닙니까? 내가 직접 문제와 상대하지 말고, 그 문제와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어떻게 다 해결합니까? 내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하나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약하니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있습니까? 여기저기에서 문제라는 쥐가 뛰어다니고 있습니까? 괜히 쥐 잡으려고 우왕좌왕 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서 고도를 높이십시오. 하나님을 향해서 말씀과 기도로 영적 고도를 높이고, 주를 향해서 달려가면 나중에는 내 삶의 문제의 쥐들이 다 죽어 버립니다. 주님만 바라보게 되면 문제의 쥐들이 다 사라지는 해결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고로 이 외국 땅에서 문제와 시험이 있을 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귀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여러분,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 가정(교회, 나라)이 어려움에 처했다면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잠잠 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일하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