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부터 다시

날짜: 
2024/01/06
말씀: 
히6:1-2
말씀구절: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설교: 

옛날과 달리 요즘은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각각 실력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튼 피아노 앞에 앉으면 뭔가를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시대 때에는 학교에 피아노가 없었고, 단지 피아노의 구식 모델인 ‘풍금’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즉 피아노는 너무 고급이고 비쌉니다.

그러니 경제 사정이 좋지 못했던 옛날에는 피아노를 아무나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피아노가 여기 저기 참 많습니다. 너도 나도 피아노를 배웁니다. 저의 경우도 한때 피아노를 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멋있는 곡을 쳐서 사람들에게 “야- 나도 이렇게 피아노를 칠 줄 안다.” 하고 뽐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시도했던 곡들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독주곡인 ‘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아마 피아노 어느 정도 치시는 분들 중에 이 곡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주 유명한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피아노 초급 과정이 끝나고 난 사람들이 중급으로 넘어갈 때에 배우는 곡입니다.

그리고 제가 시도했던 또 다른 곡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입니다. 이 곡도 중급 난이도 이상에 해당되는 곡입니다. 이거 치려면 손이 최대한 길게 쫙- 찢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악보조차 잘 모릅니다. 종이에 그려진 악보가 피아노 건반의 어디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런 제가 이 두 곡을 빨리 배워서 나도 ‘인싸’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음악 선생인 제 딸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서 이 두 곡을 악보도 없이 무턱대고 하나하나 외워서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손가락이 많이 아픕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뿌듯합니다. 제가 제 자신을 바라봐도 참 대견합니다. 멋있습니다. 나도 피아니스트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간을 바빠서 피아노를 못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다 까먹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악보를 보고 다시 치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악보와 피아노 건반을 매치시키지 못합니다. ‘학교종이 땡땡땡’도 악보가 있어도 못 치는 사람입니다. 기초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겉멋이 들려서 ‘엘리제를 위하여’ 하고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무턱대고 배운 겁니다. 왜요? 아- 나도 인싸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이 두 곡을 배울 때 제 딸이 옆에서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는 기초부터 배워야 돼.” “아- 그건 맞는 말인데 그렇다고 이 나이에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유치한 곡을 배우려고 하면 좀 쪽팔리잖아. 그리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러니 그냥 가르쳐 줘라.”

그래서 제 딸이 가르쳐 주기는 합니다만 속으로는 “아- 이건 아닌데...” 하고 저를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겁니다. 자- 제가 오늘 제 과거의 수치를 드러내면서까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듣고, 또 오늘의 설교 제목인 ‘기초부터 다시’라는 것을 매치시키면 대충 오늘 설교 주제가 뭔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즉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배우자는 겁니다. 누가요? 따라서 해봅시다. 내가요.

혹 이 말에 여러분들 중에 “아니, 내가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데 나보고 다시 기초부터 배우라는 거야? 아- 이거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되게 나쁘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종종 가장 중요한 기초와 기본을 까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리마인드(remind) 하는 차원에서 기초를 다시 살펴보는 겁니다.

아- 그러잖아요. 운동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고 기초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어려운 미적분 수학 공식을 가르칩니까? 군대에서도 그래요. 신병훈련소에 들어가면 일단 기본 제식훈련부터 가르칩니다. 차렷, 열중 쉬어, 앞으로 가, 좌향좌, 우향우...

아- 이게 전투하고 전쟁을 하는데 왜 필요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런 기초가 없으면 전쟁할 때 상관이 ‘앞으로 가, 돌격 앞으로!’라고 할 때 들어먹지 않습니다. 도리어 위험하다고 자기도 모르게 뒤로 도망갑니다. 아- 그러면 이게 뭐가 되겠어요? 완전 오합지졸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상태로 어떻게 전쟁을 치룹니까? 그러니까 죽어라고 기초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신앙의 세계도 그래요. 기초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처음 발령 받은 곳이 기도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의 종들이 기도원에서 사역하는 걸 굉장히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단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집보다 매우 불편합니다.

더구나 한국의 단체생활은 어디서든지 선후배 관계, 상하 관계가 뚜렷합니다. 일단 어렵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은 졸병이 해야 합니다. 그거 안 하면 야단맞습니다. 징계 당합니다. “아- 그래도 내가 전도사님인데... 성도님들 앞에서 체면을 차리고, 위신도 세워야 하는데...” 그런데 기도원에 들어가면 그거 안 통합니다.

옛날에 순복음 기도원 원장님은 조용기 목사님의 장모님인 최자실 목사님이었습니다. 지금은 기도원 시설이 최신 시설로 잘 갖춰져 있지만 초창기 기도원은 화장실도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이었습니다. 냄새가 많이 나고 지저분합니다. 그런데 그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최자실 목사님이 전도사님들에게 시키는 겁니다.

아- 그 전도사님 몇 시간 전에 양복을 멋있게 차려 입고 많은 성도님들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 고귀한(?) 분이 조금 있다가 작업복 입고 화장실을 청소하니까 성도님들이 그걸 보고 말합니다. “어머- 전도사님 아니세요. 전도사님이 이 일을 하시네요?”

이때 어느 전도사님이 이것을 심히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최자실 목사님이 시키시는 그 궂은일을 안 하고 불순종했습니다. 땡땡이를 쳤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아주 크게 혼이 났다고 간증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왜 최자실 목사님이 그런 궂은일을 굳이 전도사님에게 시키는 겁니까?

다름 아닌 그렇게 낮아져서 솔선수범하여 남을 섬기는 것이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친히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거 당시에 가장 천한 종이 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또한 성경에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상15:22)라는 아주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순종이라는 겁니다. 양과 소를 통째로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들 드리는 것보다 일단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아- 그러잖아요. 성경에 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이 있습니다. 그거 대놓고 순종하지 않으면 도리어 반역이 되는 겁니다. 더구나 순종의 중요성을 알만한 신자가 대놓고 하나님께 거역하면 그건 하나님을 심히 모독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삼상15:23, 26)

그리고 신앙의 기본 중이 기본은 회개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그 잘못을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아- 그러잖아요. 일단 깨끗이 씻고 난 다음에 로션을 바르던지, 화장을 하던지, 향수를 뿌려야지, 얼굴에 덕지덕지 때가 잔뜩 끼었는데 그 위에 화장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성경의 모든 선지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친 말이 ‘회개하라’입니다. 즉 깨끗이 하라는 겁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서 예수님을 소개했던 세례 요한의 첫 마디도 ‘회개하라(깨끗이 하라)’(마3:2)입니다. 예수님의 첫 마디도 ‘회개하라(깨끗이 하라)’(마4:17)입니다. 제자들의 첫 마디도 ‘회개하라(깨끗이 하라)’(막6:12)입니다.

성경은 종종 신앙의 초보를 버리고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본문도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1절) “교훈의 기초를 다시 닦지 말고(배우지 말고), 완전한대로(성숙한대로) 나아가라.“(2절, 공동 번역, 우리말 성경) 그리고 많은 목사님들이 이런 말씀에 입각하여 성숙한 신앙, 어른의 신앙으로 자라나라고 설교합니다.

아- 이거 참 좋습니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보를 버리라’는 뜻은 기초와 기본을 무시하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도리어 그런 기초는 너무도 중요하니까 더욱 확실히 해두라는 뜻입니다. 이런 튼튼한 기초 위에 신앙의 집을 지으라는 겁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건축자라는 겁니다. 반면 튼튼하지 못한 기초 위에 집을 지으면 어리석은 건축자라는 겁니다.(마7:24-27)

제가 처음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 군대를 제대 한 후에 순복음 기도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회개 기도를 하다가 성령의 은혜를 세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가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마음먹고 봉사를 하려고 청년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부를 보니까 묵은 닭 같은 신자가 제법 있었습니다.

뭐-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찬송을 참 잘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도를 못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니까 새신자가 들어왔는데 반갑게 맞아주지도 못하고, 도리어 자기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새신자가 붙지 못해 청년부가 부흥이 안 되는 겁니다. 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거 묵은 땅을 새롭게 기경해야 합니다. 다시 불로 불로- 해야 하고, 다시 “천부여 의지 없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겉멋이 들어서 회개의 찬송을 하려고 하니까 눈살을 찌푸립니다. “우리는 그런 고상하지 못한 찬송은 안 한다.”는 눈치입니다. 아- 이게 아닌데... 먼저 회개의 찬송을 부르고 난 후에 은혜를 받고, 그 후에 고상한 찬송을 부르던지 말든지 해야 하는데...

마치 제가 피아노 바이엘 기초 1권도 못 치면서 ‘엘리제를 위하여‘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치려는 것과 같습니다. 일종의 주제파악을 못하고 교만을 부리는 겁니다. 아- 이거 제가 너무 원색적으로 말해서 혹시 불편한 분이 있다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중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은 아마 제 말을 듣고 속이 좀 시원할 겁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위기일수록 기본에 더욱 충실하라.” 그렇습니다. 학문이나, 운동이나, 인격이나, 신앙이나 기본이 튼튼해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도 그렇습니다. 일단 기본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이름답고 고상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이 되지도 않고 고상하려고만 하는 것은 자칫 위선과 교만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기초도 없이 너무 고상하게 꾸미려고 하지 마십시오. 못난 것, 잘못한 것 있으면 즉시즉시 회개하고, 불순종한 것 있으면 돌이켜 순종하고, 높아진 마음이 있으면 겸손해지고, 낮은 데서 솔선수범하여 남을 섬기는 것을 진짜 행복으로 여기십시오.

바로 이것이 신앙의 가장 기초이면서 주님 보시기 진짜 고상한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신앙의 기초는 첫째 회개, 둘째 순종, 셋째 겸손, 넷째 솔선수범입니다. 이런 신앙의 기초 없이 집을 지으면 나중에 그 집은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쪼록 신앙의 기초가 튼튼한 신자가 되어 그 위에 아름다운 신앙의 집을 짓고, 주님과 함께 더욱 행복하고 더 많은 상급을 쌓아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