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날짜: 
2024/06/15
말씀: 
슥1:12-17
말씀구절: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설교: 

목사님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영감입니다. ‘영감’이란 ‘성령의 감동’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Spiritual Inspiration'입니다. 베드로후서 1:21에 보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고, 디모데후서 3:16에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그 메시지에 성령의 영감이 깃들어 있으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요, 성령의 영감이 없으면 그저 평범한 인간의 말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영감님이 필요할 때에 자주자주 오시면 너무나도 할렐루야 좋습니다. 설교 준비하기가 너무나도 편하고, 스스로도 확신에 차서 아주 기분 좋게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영감이 올 때는 마치 머리에서 전구불이 반짝- 하고 켜지듯이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떤 때는 그 영감이 한 단어로 나타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한 문장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스토리 전체가 영감으로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영감이 갑자기 떠오르면 그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급히 종이에다가 적어 놓습니다.

얼마 전 저에게 설교 영감이 왔습니다. 바로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이 영감이 처음에 왔을 때 “아- 그래, 이 구절이 성경 어디엔가 있었는데... 근데 이게 어디에 있지?” 하면서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 스가랴 1:15에 있습니다.

보통 성도님들은 이 구절 잘 모르고 잘 안 읽는 성경구절입니다. 혹시 이 성경 구절을 처음부터 스가랴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분은 한번 손들어보십시오. 하여튼 이렇게 영감이 온 것을 바탕으로 각종 설교 재료들을 모으고, 그 후 어느 날, 어느 특정한 시간에 이들을 조립해서 써 내려가면 한 편의 설교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그 설교 조립의 특정한 시간이 목사님들마다 혹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저의 경우 20분 정도의 주일 설교를 위한 조립시간이 보통 5-6시간 걸립니다. 이때는 초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이때는 누가 옆에서 말 걸면 안 됩니다. 이때는 밥 먹는 것도 건너뜁니다.

그러다 보니 5-6시간을 혼자 집중할 수 있는 밤중이나 새벽시간에 보통 설교 준비를 합니다. 오늘의 설교도 월요일 새벽 4시부터 10시까지 준비를 했습니다. 일단 오늘의 설교 영감인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에 대한 본문 내용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12절)

구약시대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망했고, 남왕국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그렇게 남왕국 유다 나라가 망하고 수도인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지 이제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바로 이때에 한 천사가 하나님께 물은 겁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12절)

여러분, 혹시 ‘나라 없는 슬픔’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의 저와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이미 세계 속에 우뚝 서있기 때문에 ‘나라 잃은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여기 캐나다 땅에 살면서 대한민국의 기아 차나 현대 차들이 도로에 많이 달리는 것을 볼 때에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전제품 LG와 삼성이 매장마다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의 집에도 TV나 가전제품은 모두 LG와 삼성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폰도 모두 삼성입니다. 저의 집 식구들의 경우 여기 캐나다 땅에 온지 27년째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요? 아- 한국이 여러 가지로 좋으니까요. 한국이 아주 매력이 있잖아요.

특히 의료 기술과 의료 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좋고, 빨리빨리 문화도 신기할 정도로 좋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 보면 방학이나 휴가철을 기회로 한국에 참 많이들 갑니다. 왜 그러지요? 아- 한국이 좋으니까 그렇겠지요. 그러나 나라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36년간 한국은 일본 강점기를 겪었습니다. 그 당시의 시절을 겪었던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죽으신 유관순 누나의 고백입니다.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강대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나라였지만 그 마저도 잃으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간 모진 슬픔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 나의 살던 고향,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로로 끌려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때로는 이곳 살기 좋은 캐나다 땅에 살면서 종종 인종차별을 당하고, 외국 땅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슬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 제법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버티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향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나라 잃은 슬픔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구약시대에도 70년간 나라를 잃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도 그 조그만 땅, 그 조그만 나라마저 잃고 1900년 동안 온 세계에 흩어져 학대와 멸시를 당하고 서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외국 땅에서 모진 슬픔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천사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들을 위해 간구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백성 아무개가 이곳 캐나다 땅에 와서 여러 가지 슬픔을 겪고 매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그 천사에게 혹은 예수님에게 위로의 말씀, 좋은 말씀을 주시어 우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여기서 ‘크게 질투하며’의 뜻은 질투할 정도로 많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를요? 예- 그 옛날 예루살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크게 질투할 정도로 사랑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나와 너를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그토록 이토록 많이많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지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그리고 이어서 말씀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여러분, 세계를 지구촌이라고 합니다. 여러 민족,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지구라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섞여서 북적북적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타락한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여기서나 저기서나 사는 것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말세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한국에서의 삶도, 여기 캐나다에서의 삶도 인생은 힘들기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불쌍히 여기고,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 도와가며 살면 참 좋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도리어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어떤 때는 꼬집고, 할퀴고, 찌르고, 때립니다. 그것도 너무 심하게요. “아이고- 아파! 죽겠다.“ 그 당시 이스라엘 주위의 여러 열국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심히 못살게 했습니다. 아- 때려도 너무 심하게 때립니다. 아파도 너무 아픕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와 여러분들을 훈련도 하시고 징계도 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과 징계의 채찍이나 막대기로 종종 다른 나라, 다른 민족, 혹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열국들에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딱 두 대만 때리라고 했는데 아- 이것들이 열 대, 스무 대, 마구마구 때리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소리칩니다. “뭐야- 이것들! 야- 이놈들아! 내가 너희 보고 이스라엘을 딱 두 대만 때리라고 했지. 사람 죽이라고 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렇게 마구 패서 죽일 정도로까지, 멸망을 당해 없어질 정도로까지 만들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여러분, 지금 이 외국 땅에서 힘들지 않습니까? 아주아주 힘드신 분도 있을 겁니다. “아- 이러다가 돌아버리겠다. 아- 증말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여러분, 아주 쬐금만 더 참아보십시오. 조금 있다가 금방 좋은 날, 좋은 시절이 올 겁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예-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이 예정하신 70년 고난의 세월이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각자 하나님이 예정하신 훈련과 연단의 기간이 있습니다. 때로는 장래의 교만을 막기 위하여 낮아짐의 긴 시간도 있습니다. 때로는 더욱 큰 평안을 주시기 위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는 역경의 시절도 있습니다. 나중에 더 큰 상급을 주시기 위해 저와 여러분들처럼 이곳 캐나다 땅에까지 와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 당해야 하는 뼈저린 고통의 시간도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언제 끝나는 겁니까? 글쎄요. 하루 밤 자고 나면 그리운 엄마가 오실까요? 이틀 밤 자고 나면 보고 싶은 아빠가 오실까요? 도대체 언제 하나님이 오시는 겁니까? 언제 이 고통, 그 고통이 끝나는 겁니까? 이에 대해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라.” 아멘!

아- 70년의 세월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금방 하루 밤 자고 나니, 이틀 밤 자고 나니 꿈에도 그리던 엄마 아빠가 내 곁에 오셨습니다.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쓰다듬으시며 위로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래요. 힘들었어요. 엄마 아빠,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저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를 잠잠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요14:16)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아주 버린 줄 알았습니다. 자신들을 아주 떠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바벨론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바벨론에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 외국 땅에서도 다니엘과 에스더를 비롯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멸망을 당하지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며 70년이 차매 다시 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셨을까요? 그들에게 행복한 삶의 터전을 다시 마련해주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행복을 위해 그들에겐 각자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학교도 있어야 하고, 일할 직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성전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필요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캐나다 땅에 와서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 때 집도 필요합니다. 차도 필요합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집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때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삶의 터전, 즉 교회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옛날 영국의 청교도 인들이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기나 긴 항해 속에 아메리카 땅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집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게 하나님께 축복 받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짜로 좋은 신자라면 우리가 캐나다 땅에 와서 우리의 최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여야 합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한국인들은 외국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전이 필요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학개, 스가랴, 스룹바벨과 같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비롯해 주위의 끈질긴 방해로 인해 성전 건축이 16년간 중단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질 때 늘 사단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각종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성경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바른 신앙 고백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즉 주님의 성전이고 주님의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사단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방해를 합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하도록 하게하고, 교회 가는 것을 중단시키려고 합니다.

외국 땅에서 먹고 살기가 너무 바쁘니까 교회는 나중에 나가라고 속삭입니다. 교회 나가는 것보다 너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하라고 속삭입니다. 이때 마귀의 말을 듣고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됩니다.한 집안의 가장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엄마나 아빠가 무너지면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무너지면 안 됩니다. 너와 내가 무너지면 안 됩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의 신앙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믿음을 세워줘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가꾸고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힘을 내서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16년간 성전 재건을 포기하고, 신앙생활에 나태해지고, 자기 집만 세우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어- 이상합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힘을 쓰고 열심히 일을 해도 생활형편이 전혀 나아지지 않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해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1:5-6)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학1:9)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먼저요, 자기가 우선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먼저입니다. 이에 대해 너무나도 유명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오늘의 본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집보다 하나님의 집을 먼저 재건하려고 하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의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한 번 넘치도록 풍성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시온을 안위하시겠다고 합니다. 시온이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언덕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겠다고 합니다. 즉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하나님의 자녀로 확실히 삼아주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의 택한 사랑하는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품안에서 위로를 받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쪼록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넘치도록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너무나 힘들게 하는 마귀를 물리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너무 힘들지 않도록 그 고난의 문제도 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순간순간마다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시옵소서. 이 외국 땅에서 주님의 일을 하느라 애쓰는 백성들을 넉넉히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다시 한 번 넘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