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날짜: 
2005/05/22
설교: 

시39:4-7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한 정신병자가 밤에 몰래 백화점에 침입했습니다. 밤새도록 장난질을 했습니다. 가격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붙인 것입니다. 만원 자리에는 100만원자리를 붙여놓고, 200만원자리에는 5천원 붙여놓고... 자기 마음대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백화점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는데 손님들이 들어와서는 이상한 눈빛도 없이 그냥 엉터리 가격표를 보고 그대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비꼬아 만든 이야기입니다. 즉 현대인들은 가치관이 혼돈되어 있기 때문에 뭐가 정말 중요하고 뭐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가치 있는 것을 싸게 취급을 하고, 쓸모없는 것이 정말 귀한 것인 줄 착각하고 사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엉터리 가격표 백화점에 와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내 생활을 한번 살펴보세요. 나는 정말 아까운 내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정말 내가 귀하다고 붙잡고 있는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 정말 귀한 것인가? 다시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혹시 ‘화장실을 위해 산 여인’이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가난한 여인이 남의 집 셋방 하나를 얻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화장실이 하나였으므로 아침마다 늘 문제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화장실을 하나 쓰는 것도 주인 눈치를 봐야 되고, 주인집에서 쓸 때는 들어갈 수도 없고... 참으로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결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화장실 딸린 집을 하나 마련하리라.” 그리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몇 년 후에 큰 집은 아니지만 집 한 채를 샀습니다. 그곳에 는 화장실이 있어서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이제 주인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아파트를 샀다고 해서 구경을 갔는데 “어- 이 집은 화장실이 두개네? 거실 옆에도 있고, 안방 뒤에도 화장실이 하나가 또 있네!“ 그것을 보니까 이 여인이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침에 아이들은 많은데 학교 가기 전에 자기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겠다고 싸우고 난리를 피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또 생각을 했습니다. “아- 화장실 두개 있는 집에 살면 진짜 좋겠다!”
그래서 이 여인 거기에 인생을 또 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도 화장실 두개 있는 아파트를 사리라.“ 하고 죽어라고 돈을 모아서 화장실 두개 있는 아파트를 샀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서로 눈치 볼 것도 없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 화장실 두 개 달린 집을 사느라고 너무나 고생하다가 그만 병들어 몇 달을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우리도 헛된 것을 위해서 내 인생을 낭비하고, 헛된 것에 끌려 다닌다면 결국 내 인생도 화장실을 위해 산 여인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거할 집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 인생을 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옷이요? 적당히 입을 것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꼭 명품을 걸쳐야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집이요? 적당한 집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꼭 호화로운 집이 있어야 인생이 아름답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런 곳에 인생을 걸고 살면 안됩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걸 수 있는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합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산다. 내 인생의 목표는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그 말을 똑똑히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어물대고 말을 못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유명한 다윗 왕이 썼습니다. 그는 부귀영화를 누렸던 왕입니다. 그가 왕이었을 때 이스라엘은 가장 번성했습니다.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본문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러분, 다윗이 위대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소망을 둔 것도 아니고, 세상 물질에 소망을 둔 것이 아니라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하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평가할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소망을 주님께 두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여러분, 다윗은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당장 오늘만 보고 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은 내 인생의 내일을 보고 삽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인생의 끝을 보고 삽니다. 왜냐? 인생의 성공 실패가 오늘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끝 날에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막이 내려온 후에 우리의 심판장 되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인생의 종말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종말은 어떻습니까? 이 땅의 모든 일생이 순식간에 마치는 날,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그 때의 모습이 과연 어떻습니까? “내가 왜 인생을 이렇게 살았는가?”하고 통곡을 하며 우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사는 기쁨에 가득 찬 모습입니까? 우리는 내 자신의 종말을 늘 그려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만이 인생을 바로 살수 있고, 하루하루를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윗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질그릇과 같습니다. 조금만 부딪히면 금이 가고 깨지는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내가 알면 얼마나 알고, 내가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인생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금이 가고 깨지고 맙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박살나고 맙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도 다윗처럼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또한 다윗은 5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다윗은 우리의 인생이 허무하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세상 부귀영화를 다 누리어 보니까 그것이 인생의 다가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권세와 명예와 물질과 세상적인 기쁨을 소유했지만 그것은 허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허무주의자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그 곳에 빠뜨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소망을 항상 주님께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다.” 여러분, 가끔 사람들 중에는 “나는 이제 나는 든든히 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모았으니 이제 내 인생쯤이야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실패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세상의 명예와 권력으로 아무리 든든한 성을 구축하고 있어도 그것은 헛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로 그는 주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6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여러분, 주님 없이 나 혼자 다니는 것은 그림자처럼 다니는 것입니다. 즉 헛되게 산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명예와 세상 쾌락을 쫓아다닙니까? 이것은 인생을 헛되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목표가 돈만 버는 것인 줄 알고 삽니까? 그 사람은 헛되게 그림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으니까 헛된 일에 분요하고, 헛된 일에 쓸데없이 바쁩니다. 주일날 교회에 안나온 여집사님에게 목사님이 주일날 왜 안 나왔냐고 물으니까 바빠서 안나왔다고 합니다. 뭐가 그렇게 바쁘냐고 물으니까 주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딸기축제 가느라고 바쁘다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그렇게 바쁜 일입니까? 그것은 헛된 일에 바쁜 것이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왜 인생을 낭비합니까? 헛된 일을 쫓아다니느라고 상당히 바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같이 바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교회에다 가두어놓고, 주님은 안방에다가 열쇠로 잠그고 가두어 놓고 “주님, 저는 지금 상당히 바쁘니까 절대로 따라오지 마세요.” 이런 삶은 그림자처럼 헛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헛된 일에 분요하다는 것은 헛된 욕심, 헛된 쾌락을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헛된 욕심과 헛된 쾌락의 끝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즉 망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좇아가는 것이요, 그 결국은 모래를 씹는 것과 같습니다.
가난하지만 결혼해서 30년을 같이 잘 살아온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 천사가 나타나더니 “너희들 어려운 가운데 30년을 잘 살았구나!” 그러면서 아내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아이들은 많은데 집은 작고, 우리아이들 공부방도 하나씩 주고, 집 앞에는 조그마하지만 꽃도 심을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집을 하나 주세요.”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자고 일어나면 너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것이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로 집이 변했는데 아이들에게 공부방도 하나씩 줄 수 있고, 집 앞에는 작지만 꽃도 심을 수 있는 정원도 있는 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천사가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남편에게 소원 하나를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렇게 좋은 집에서 한 30년 젊은 아내와 함께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못된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뜻밖에 대답을 합니다. “그래, 네 소원도 들어주마. 자고일어나면 그대로 될 것이다.” 이 남편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속히 자고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60살 먹은 남편이 90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말합니다. “애야, 네 소원대로 30살 젊은 아내와 잘 살아라.”
여러분, 쓸데없는 헛된 욕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주께 두어야합니다. 오늘의 본문 7절에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러분, 아무쪼록 이 땅에서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다가 인생이 마지막 날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