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평가하는가?

날짜: 
2020/05/03
말씀: 
마16:13-20
말씀구절: 

13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다(막 8:27-30; 눅 9:18-21)>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설교: 

최근 국제적으로나 한국 국내적으로 톱뉴스 중 하나가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이가 죽었느냐 살았느냐 하는 뉴스입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주류를 이루는 뉴스는 김정은이 심장 수술을 받다가 그만 의료사고가 일어나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김일성도,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도 심장병으로 죽었는데 김정은도 심장이 안 좋은 것이 집안의 내력인 것 같습니다.

하기야 170cm 정도 키에 140kg의 몸무게가 나간다면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거기다가 술과 담배까지 많이 하고 운동도 안했으니 나이 36세가 되어서 쓰러지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김정은이가 인터넷을 하면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민들에게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 국가입니다.

그러나 최고 존엄인 김정은이는 예외이겠지요. 한국의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북한의 김정은이가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무엇일까요?” 하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 질문에 어떤 분이 정답을 맞혔습니다. 무엇이지요? ‘김정은’입니다. 즉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아- 물론 북한의 세뇌된 사람들이나 종북주의자들에게는 ‘위대한 김정은 수령 동지’입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 진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궁금하시면 인터넷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쳐보십시오.

저의 경우는 인터넷에 ‘김원효’ 하고 치면 한국의 코미디언인 ‘김원효 심진화’ 부부의 기사와 사진들이 뜹니다. 그래서 다시 ‘김원효 목사’라고 치면 그제야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담임목사’라고 나오고 제가 한 설교들이 주르르 나옵니다.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은 인터넷에 치면 모두 나옵니다.

이게 좋은 점도 있지만 당사자의 경우에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어 안 좋은 경우가 참 많습니다. 더욱이 인터넷 댓글에 보면 악성 댓글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고 우울증이 걸리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심하면 이것으로 인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때로는 지치고 피곤합니다. 더욱이 사회성이 부족한 분들이나 대인 기피증이 있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자체가 너무도 힘듭니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속세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런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억지로 웃음을 띠어야 하고, 자기 성질을 누르고 살아야 합니다. 아- 더 스트레스가 쌓여갑니다. 그렇다고 내 성질대로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합니다. 욕을 얻어먹습니다. 나쁜 평가가 주어집니다. 아- 그러니 이것도 스트레스가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와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고, 내가 그 자리에 없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앞에서는 나를 좋다고 그렇게 칭찬하는 사람도 뒤에서는 나를 욕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면 기분이 더욱 안 좋아지고 때로는 분노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때 그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을 이런 말씀으로 다스리면 좋습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의 전도서 7:21-22 말씀입니다.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즉 너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비난하는 뒷담화를 했지 않느냐? 그것도 자주, 아주 많이요. 고로 너만 희생자가 아니고 너도 알게 모르게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그런 일을 통하여 회개할 기회를 삼아야지 열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의 평가에 대하여 신경 쓰는 사람은 자연히 사람의 종이 됩니다. 아내의 마음에 신경 쓰는 남편은 애처가가 되고, 더욱 심하면 공처가가 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평가에 신경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평가나 하나님의 평가나 도무지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못 말리는 사람이 되던지 독재자가 됩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17:15) 그러면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자에게 자공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모든 사람은 양면으로 평가가 됩니다. 한 사람을 놓고도 한 쪽 사람들은 그 사람은 아주 선(善)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다른 한 쪽 사람들은 아주 악(惡)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때에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바른 평가일까요?”

이 질문에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평가하는 사람을 보고 평가하라.” 그리고 선한 사람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악한 사람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보라며 세 가지 유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첫째,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칭찬 받는 사람은 지극히 악한 사람이고 나라에 크게 해가 될 사람이니 조심하고, 멀리하고, 절대 벼슬을 주지 말라.

둘째, 선한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악한 사람에게는 욕을 먹는 사람이라야 지극히 선하고 바른 사람이니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고, 나라 일을 맡기면 나라가 평안해지고 발전한다. 셋째,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욕을 먹는 사람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 속에는 반드시 세상을 구할 큰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을 찾아 일을 맡기면 나라는 발전하고 세상은 평안해진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지금 이 땅에 계시면 김정은처럼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쳐보아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평가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당시는 인터넷이 없고 한국에서 만날 하는 여론 조사도 마땅히 없으니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바르게 평가한 베드로를 크게 복이 있다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평가하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가진 사람들 위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고 그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평가하고 고백하면 천국의 열쇠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른 교회를 세우고 바른 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하여 평가를 잘못하면 이단이 되고 천국 열쇠는커녕 지옥에 빠지고 맙니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을 바르게 평가하고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 평가를 받는 것이 인생의 최종적인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좌우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하여 평가할 때에도 하나님의 시각, 성경이 가르치는 시각으로 바르게 평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악하다고 하는데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잘나서 “하나님, 그러면 못써요. 남을 그렇게 나쁘다고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서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그 악인을 더 사랑하고 가까이 하면 그대의 이름은 뭡니까? “잘났어. 정말!” “똑똑해. 정말!”

그리고 결혼 배우자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평가 기준을 가지고 이리저리 재봅니다. 옛날 사람들의 평가 기준과 오늘날의 사람들의 평가 기준은 좀 다릅니다. 외모를 평가하는 기준도 다르고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기준도 다릅니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이상적인 결혼 배우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인물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진짜 잘 생긴 남자랑 결혼하는 겁니다. 뭐야 이거? 그리고 어떤 분은 말합니다. “저는 남자 재력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격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결혼할 때 보면 진짜 돈 많은 갑부하고 결혼을 하는 겁니다. 이건 또 뭐야?

그러나 남자들의 경우는 대체로 단순합니다. 솔직합니다. “이쁘냐?” “응- 이뻐!” 하면 거의 다 되는 겁니다. 저도 우리 집 사람이 이뻐서 결혼했습니다. 제 눈이 안경이지만.... 하여간 노처녀 노총각이 되어서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가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겁니다.

좀 눈을 낮추세요. “싫어요.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더 낫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이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할까요? 지혜의 왕인 솔로몬 왕은 전도서 4:9-12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서 보면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삼겹살이 아니라 삼겹줄입니다. 요즘 한국 부부들이 자녀를 잘 갖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혼율이 높아집니다. 자녀가 있어서 아빠와 엄마를 묶어주어 삼겹살이 되면 잘 끊어지지 않는데 두겹줄이다 보니 아무래도 삼겹살 보다는 잘 끊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로 싱글이냐 더블이냐에 대하여 이렇게도 말씀합니다. 이번에는 신약 성경의 반을 쓴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보다 전혀 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8)

아니 왜 같은 성경인데 한쪽은 더블이 좋다. 또 한쪽은 싱글이 좋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원칙은 있는데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예외적으로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21:4) 즉 평가 기준이 쓸데없이 높은 것은 교만이요 죄라는 겁니다.

결론을 지어야 될 것 같습니다. 누가 나를 평가하는가? 내 인생이 끝나는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분의 평가만이 참 평가입니다. 그리고 그 날 그분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평가와 함께 주인의 즐거움과 행복에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