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당신이 열등감을 느낄 때
본 문 ; 고전 1:26-29
여러분, 다른 사람에 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 저의 경우에는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하다보니 공부에 대한 열등감을 아주 심하게 느꼈었습니다.
특히 수학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다 보니 수학 선생님은 자연히 싫어지게 되고, 수학 시간만 되면 어떻게든지 그 시간을 피해보려고 양호실에 가 있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사춘기라서 그런지 신체적인 열등감을 느낀 적이 많았었습니다. 특히 남자로서 뽀빠이처럼 팔뚝이 굵어야 되는데 그 당시 스스로 팔뚝이 가늘다고 생각이 들었던지 남에게 팔을 보이기가 굉장히 싫었습니다.
그래도 겨울이 되면 팔을 가릴 수 있는 학생복을 입기 때문에 괜찮았었는데, 여름이 되어 팔이 드러나는 반소매 학생복을 입을 때면 굉장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특히 남녀 학생들이 많은 버스를 타게 되면 누가 나의 가느다란 팔을 볼까봐 일부러 버스 위에 달린 손잡이를 잡지 않다가 그만 버스에서 넘어졌던 기억도 납니다.
대학교 다닐 때에는 우리 집이 그리 가난하지도 않았는데도 "우리 집은 가난하다"라는 쓸데없는 열등감에 빠져서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기가 싫어지고, 특히 여자 친구를 사귈 때에도 집에 데리고 올 정도로 가까워지게 되면 일부러 관계를 끊어버리는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진짜 사랑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 당시 저에게 있어서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존심의 상처는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제 딸 김주희 어린이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 주희 어린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뒤쪽에 있는 울타리 근처에서 주희 어린이와 그 친구들 목소리가 들립니다.
제 집 사람 생각에는 "아하,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하고 놀려고 집에 데리고 오는 모양이다 !" 하고 생각을 했는데 제 딸이 친구들과 같이 들어오지 않고 혼자 풀이 처지고 기분이 안 좋은 모습으로, 그리고 조금은 화가 난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집사람이 "왜 혼자 들어오니 ? 친구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들어오지 않고 ?" 하고 물으니까 딸 아이의 대답이 "우리 집은 가난하잖아 !"라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집사람이 대답을 해 줍니다. "아빠는 목사님이 되어서 그런 거야 ! 우리 집은 원래 부잔데 아빠는 헌금을 많이 해서 그런 거야 ! 그리고 이 세상에는 우리보다 너무도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어 ! 지금도 북한에 있는 어린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좋은 집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어서 굶고 있어 ! 그러니 우리는 감사하고 살아야 해 !"
그러나 김주희 어린이는 수긍이 가기는 하면서도 기분이 그렇게 좋아지거나 밝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김주희 어린이도 이전에 제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그러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김주희 어린이가 가난에 대한 더 깊은 열등감에 빠지기 전에 무언가 좀 갖추어 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주희 어린이를 위해 침대 받침도 사주고, 김주희 어린이 방도 그런 대로 꾸며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자기 방에서 잠도 잘 자고, 자기도 뭔가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이 오면 방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제 딸 방의 침대 받침을 사주면서도 "우리 교인 분들 중에는 아직도 자기 자녀 침대 받침이 없는 분이 있을 텐데 !" 하고 생각이 들며 상당히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제 딸 침대 받침을 사주고, 또 저의 부부가 쓰는 침대 매트리스도 가라지 세일에서 거금 140불을 들여 사자 저의 집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 요즘 웬일이세요 ? 혹시 천국 가기 전에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 그런 것 안 사줘도 괜찮으니까 지금 천국가면 안 돼 ?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 그래서 우리 부부가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자라가면서 여러 가지 열등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열등감에 대한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에 나온 열등감 상담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 한 고등학교 학생의 열등감에 대한 상담 사례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사촌형이 있는데여 사실상 외아들인 저에게는 친형이나 다름 없는데염.. 그게 공부를 엄청 잘해염... 어느 정도냐면 초딩 때두 올 수 랑 올백 맞구여 저는 우가 2개 있다구 어른들이 개쪽주구..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겨우 체면을 살렸는뎅.. 중딩되서 좀 놀다보니까 성적이 떨어져서여..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두 겨우 올라갔는뎅.. 그런데 그 형은 과학고 갔더군여.. 그래서 주위 어른이 니 형 반만 닮아라구 하구 개쪽줘여 어케하면 좋져 ?"
이에 대한 카운슬러의 답변 내용이 이렇습니다.
"어른들이란 원래 다 그렇답니다. 자기 자식이 더 공부 잘 하게 하고 그러고 싶은 거죠. 부모의 마음이죠. '그냥 그렇게 비교하면 아들이 꿀리지 않게 더 열심히 하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사랑이라 생각하시는데 전혀 아니죠^^; 사람은 다 다른 거예요.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 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르고, 어떤 사람은 착하고... 그런 걸 공부라는 잣대에 두고 사람을 쪽팔리게 하는 건 어른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닌데요 뭘.. 그런 거에 너무 열등감 가지지 마시구.. 당당하게 사세요^-^"
그리고 이러한 답변 외에 이 글을 읽고 여러 사람이 이렇게 추가 답변한 것도 있었습니다. "저는 누나가 서울대 들어갔지만 열등감 안 느껴집니다. 저처럼 뻔뻔해지십쇼."
그리고 또 다른 열등감에 대한 고백입니다.
"저는 17살인데요. 남에 비해 얼굴도 못생겼구요. 손도 안 예쁘구요.(주름이 많아요) 털도 기준 이상으로 많이 났구요...(다리털 팔털 심지어 손가락에까지 털이.. 헉!) ㅠ.ㅠ 미치겠네요. 저는 왜 이렇게 미운 오리새끼.. 아니 미운 사람 XX일까요? 특히 같은 학교의, 17살인데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얇은, 초딩 목소리를 가진 아이가 있거든요. 그 아이 부러워 죽겠어요. 그런 귀여운 목소리를 가진 애들도 있는데 나는 이게 뭔가.. 게다가 그 애는 외모도 엄청 앳되고 순수하게 생겼어요.. 질투심+열등감 미치겠어요. 저는 공부도 별로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도 괴상하고..(그 아이처럼 귀여우면 얼마나 좋을까 !) 외모도 진짜 못생겼고.. (그 아이는 그렇게 귀엽게 생겼는데..) 노래는 -_- 목소리가 이런데 어떻게 잘 부르겠어요. 춤은 .. -_- 몸치임다. 운동? 체육점수 300몇 등 .. 아휴,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 이런 글을 통해서 우리 청소년들의 열등감으로 인해 고민하는 모습들을 엿볼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만사에 자신이 없어지게 되고, 소극적인 사람이 되며, 무능하고 무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외톨이가 되는 길을 가기가 쉽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은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 일에도 쉽게 섭섭해하고 토라지기를 잘합니다. 그리고 열등감에 빠지면 매사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할 일을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기가 쉽습니다.
더 나아가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자포자기하고 자살까지도 하는 비극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이 열등감조차 잘 활용하고 선용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에게는 아주 심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몸에 찌르는 가시 즉 흔히 안질병이라고 하는 병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병은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렸지만 자기는 안질로 늘 눈에 눈곱이 끼었으니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
그래서 그는 이 질병의 가시 때문에 고민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이것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응답하시기를 "네 은혜가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천국의 삼층천에도 올라가 보고, 낙원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고, 신약 성경의 절반이나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교만하고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찌르는 가시, 즉 열등감의 요소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찌르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열등감을 가졌지만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머물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도리어 이 열등감의 요소를 이렇게 자랑하고 기뻐했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여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9-10)
여러분, 열등감을 믿음으로 선용하면 겸손의 은혜도 받고 하나님의 능력도 받게 됩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보십시오.
그가 공주의 아들로 자라나 애굽의 모든 학문을 익히고 우월감에 빠졌을 때에는 교만해지므로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실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겸손해지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을 보이시면서 그에게 용기를 주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들어 쓰셨지 않았습니까 ?
선지자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는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l:6) 그러나 예레미야가 이렇게 열등감을 느끼고 겸손해지니까 하나님은 그를 도리어 위대한 선지자로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열등감을 가지고 자기의 약함과 무능함과 부족함을 깊이 깨닫는 자를 오히려 들어 쓰시고 크게 축복해 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구원받은 사람 중에는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고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열등감을 잘 선용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겸손의 은혜를 받게 되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내게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등감으로 인하여 남보다 더욱 더 노력하여 성공을 할 수 있고, 또 약함과 무능함과 비천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힘써 기도하게 됩니다.
고로 저와 여러분이 이 외국 땅에서 열등감을 느낄 때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좋은 기회로 삼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적과 은혜를 받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