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중요한 것

날짜: 
2011/06/19
설교: 

눅14:15-24 더 중요한 것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서 누가 결혼을 한다거나 회갑을 맞이하면 그것은 온 동네 잔치였습니다. 그럴 때 보면 거지들까지도 다 그 잔치에 와서 얻어먹고 가는데 누구하나도 거지를 못 오게 막거나 박대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인심이 후했었습니다. 물론 초청장을 발송하는 일도 없고 거기에 대해 참석, 불참석 통보를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잔칫집에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먹고 남을 만큼 음식을 충분히 했고, 평소에 아무리 사이가 나빴어도 잔칫날은 가서 축하를 해 주고 맘껏 먹었습니다. 그게 도리였습니다. 그렇고 보면 우리나라의 잔치풍습은 참 복음적입니다. 거기에는 누구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다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의 잔치풍습은 우리나라와는 좀 달랐습니다. 어느 집에서 잔치를 한다고 하면 그 집에서는 오래 전에 초청할 사람들을 정해서 통보를 하고 참석여부를 미리 받아둡니다. 또 날짜는 정하지만 시간은 미리 정하지 않고, 잔치 당일 준비가 다되면 종들을 보내서 잔치에 오라고 통보를 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참석을 한다고 해 놓고 당일 날 참석하지 않으면 그것은 잔치집 주인에게는 대단한 모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잔칫집에서 있음직한 일을 비유로 예수님께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계시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마련하고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잔치할 시간에 종들을 보내서 "이제 준비가 다 됐으니 오십시오." 했더니 하나같이 다 거절하더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2000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유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초청받은 사람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제일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그 밭을 보러 나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밭은 중요합니다. 삶의 터전입니다. 땅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려서 소출을 내야만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일 먼저 이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다른 어떤 것을 희생하고라도 이 터전을 마련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집터든 직장이든 사업체든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터전,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도 삶의 터전이 없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지 모릅니다. 반면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 사람들은 안심합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땅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무엇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고 했나요? 소를 사서 시험을 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소가 없어도 못 삽니다. 인간은 원래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괭이, 절구, 지게에서부터 전화, 전기, 자동차,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삶의 온갖 수단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도구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것도 도구로 쓰고 지금까지 전승시켜 왔던 것입니다.
당시에 소라는 도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땅이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터전이라면, 소는 필수불가결의 도구입니다. 사람들의 땅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삶의 터전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소, 즉 도구들을 필요로 합니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서 자동차가 필요하고, 더 멀리 가기 위해서 비행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고로 도구인 소를 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시험해 본다는 것, 즉 더 좋은 도구를 갖는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장가를 갔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단호하게 못가겠다고 통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은 인생 최대의 즐거움입니다. 특별히 유대 지방에서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황금의 시간이었습니다. 식민지 치하에서 살고 있던 유대 남자로서 결혼을 하게 되면 모든 부역이나 군복무가 면제되어 그 일 년 동안 가장 안락한 날을 보낼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이 생기고, 도구가 생기면 그 다음은 필연적으로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게 사람입니다. 인생은 즐길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여가와 취미생활, 쾌락, 즐거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문화생활이 있어야만 합니다. 문화생활을 얼마나 즐기느냐가 풍요함과 여유의 척도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골프를 치고 등산을 합니다. 그런 풍요가 또 계급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인 밭이든, 삶의 도구인 소든, 인생의 즐거움을 얻는 결혼이든 다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사람들은 더 중요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겁니다. 뭡니까? 하나님의 초청을 사양합니다. 영생의 길을 포기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순간이 영원보다 귀했습니다. 육체가 영원보다 소중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복되고 귀한 줄을 알지만, 실제 그것을 위해서 결단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밭을 위해서, 소를 위해서,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 귀중한 초청을 사양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의 터전 때문에, 보다 더 좋은 삶의 수단을 마련하는 것 때문에, 그리고 서로 어울려 여가와 쾌락을 즐기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외면해 버립니다. 그들은 천국의 그 아름답고 귀한 잔치자리를 포기합니다. 오늘날 편리한 주택과, 편리한 시설들과, 편리한 환경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 가운데 영혼과 정신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팔아 이것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천국과 영생의 문제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포기된 지 오래입니다. 관심 밖의 문제입니다. 한 마디로 천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땅, 기계기술, 문명의 도구들 그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쾌락 그런 것들뿐입니다. 그들은 땅의 것을 얻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영생과 천국을 거부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마지막 닥칠 운명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욕구불만과 메울 수 없는 공허와 좌절과 불안, 그리고 그렇게 쾌락을 추구하는데도 더 목말라 가는 악순환의 현실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새벽부터 밤까지 피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모든 것은 이 세 가지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차라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더 중요한, 천국의 자리를 얻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형수가 좋은 집, 좋은 차, 쾌락 추구 보다 먼저 사형을 당하는 데서 구원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종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세요.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실 때 완벽한 준비를 해 놓으시고 부르십니다. 뒤에 가서 또 종들이 얘기하지요?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아직도 우리들을 위한 자리는 남아 있다는 겁니다. 오늘 이 잔치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잔칫상을 봐 놓으시고 사람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가 막상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시자 그것을 거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도다."(마23:37)
오늘 이 얘기는 모두 2000년 전에 있었던 얘깁니다. 그러나 지금도 예수님의 이 탄식과 안타까움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전혀 진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밭과 소와 즐거움은 무한대로 커졌지만 거꾸로 사람들의 영혼은 그때보다 훨씬 더 심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잔칫상을 차려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종들이 우리를 부르러 왔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안합니다. 잔치에 갈 수 없습니다. 밭에 가야하고, 소도 사야하고, 장가도 가야 합니다." 그렇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천국을 소유할 만할 때에 소유하지 못하면, 나중에 천국을 소유하고자 할 때에는 정작 소유하지 못하게 됩니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찾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에 초청에 응하시기 바랍니다.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잠시 사는 것보다는 영원히 사는 것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잔칫집 문 앞에서 서성거리지 마시고, 주님이 기다리시는 잔치 집 안으로 용감하고 당당하게 들어가서, 그 천국의 잔치를 맛보고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