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사는 가족들

날짜: 
2011/08/01
설교: 

딤전5:8 떨어져 사는 가족들
하나님께 오늘의 말씀 제목을 받았습니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입니다. 그런데 말씀 제목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주일 설교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되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캐나다 땅에 세워진 이민교회라고 하지만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물론 좀 많이 있지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라는 제목은 좀 그렇습니다. 아니면 제목에서 '들'을 빼시는 것이 어때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첫째, 그냥 '들'을 붙여라. 둘째, 그래 네 말대로 '들'을 빼라. 셋째, 아무 응답도 없으셨다. 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응답은 '셋째 아무 응답도 없으셨다.'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냥 무엇을 하라고 하시고 난 후 우리가 '왜요?'라고 물으면 그 다음에는 자세히 안가르쳐 주시는 경우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니 100세에 아들을 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를 토막 살인하여 죽이라니 이게 무슨 얼토당토한 말입니까? 도저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불가능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우리는 수없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 왜요? 갑자기 식인종이 되셨습니까? 바비큐를 먹고 싶어도 소나 양으로 드시지 왜 인간고기를 먹으려고 합니까? 하나님 미쳤어요?" 이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내가 다 뜻이 있어서 그렇단다. 설마 내가 인간 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렇겠냐? 너는 나를 믿으라." 뭐 이런 힌트도 주시지 않습니다. 그냥 명령만 하시고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왜요?"라고 수없이 물어보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일일이 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이 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이 명령을 하셨고, 제가 "왜요? 이러면 어때요?" 하고 질문을 하는데도 하나님은 그에 대한 답변이 없습니다. 요즘 아빠들은 어린 자녀를 키울 때 아이들이 "왜요?" 하고 물으면 아주 자상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애들은 아빠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를 하던지 혹은 이해를 못했어도 아빠의 성의를 보아서 "아하- 그렇구나!" 하고 대충 안다는 척을 해줍니다. 그래야 아빠가 실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짜고짜 말씀만 하시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때 "에이, 하나님은 우리 아빠보다도 자상하지 못하구나! 설명도 안해 주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삐치면 안됩니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이큐가 턱없이 부족하여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가 못알아 들이니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실까? 하나님, 제가 못 알아들어도 하나님의 좋은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하나님이 일일이 설명을 안해줄 때는 성경을 통해서 스스로 그 답을 찾아보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기에 저는 성경에서 '떨어져 사는 가족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에서 태어난 한 가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 노아의 한 가족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노아시대를 홍수로 심판했을 때에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들이 8명입니다.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 그리고 이들의 세 아내들입니다. 이들 중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노아의 첫째 아들인 셈족입니다. 그런데 이들 가족들이 처음에는 다 같이 모여 살면서 바벨탑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는 교만의 바벨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번성하여 세상에 편만하게 살기를 원하셨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겠다고 하는 거역의 바벨탑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인간들이 저렇게 바벨탑을 만들며 사는 것이 장래에 좋지 않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를 각각 다르게 하셨습니다. 결국 뜻이 통하지 않자 바벨탑 공사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노아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바벨탑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하나님, 아니 하나님이 되어서 남의 공사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래 남의 공사를 그런 식으로 중단시키고 훼방을 놓으면 뭐가 좋겠습니까? 그러고도 하나님입니까?"
즉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의심이 드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에 대한 바른 답을 얻지 못하면 그만 하나님께 대하여 삐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이 별로 좋지 않게 됩니다. 혹시 이 가운데 이런 상황에 처한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주위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지요. "하나님, 정말 이러기입니까? 나를 사랑한다면서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늘 이런 식으로 나를 골탕 먹이는 겁니까? 정말 하나님 취미도 참 괴팍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시기에 바벨탑 공사를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 그 공사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더 큰 재앙이 다가올 수 있기에 하나님이 공사를 미리 중단시키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벨탑 공사의 목적은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인데 만약 그렇게 지면에서 흩어져 살지 않고 같이 살다가는 좋을 때는 좋지만 혹 나중에 땅 싸움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전쟁이라도 나면 아예 가족들의 씨가 말라버릴 수도 있겠다. 그럴 때 가족 간의 아픔은 얼마나 크겠는가?"
여러분, 매사에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탕에다가 깔고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괜히 시험에 들지도 않습니다. 고로 항상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생각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하여간 이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노아의 가족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로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흩어진 가족들입니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입니다.
그런데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같이 사는 가족들이 행복할까요? 제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떨어져 살아야 행복하고, 어떤 가족은 같이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리고 어떤 가족은 떨어져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어떤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즉 케이스 바이 게이스(case by case)입니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을 가리켜 '기러기 가족'이라고 합니다. 궁금합니다. 왜 '기러기 가족'이라고 할까요? '참새 가족'은 어때요? 아니면 '철새 가족'? 제가 좀 찾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기러기 가족'이라고 하는 것은 기러기가 따로 떨어져 살아서가 아니라 기러기의 습성 때문입니다. 기러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 알을 품으면 수컷은 둥지 주위에서 암컷과 새끼를 지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물어오죠. 마치 아이들이 조기 유학을 가있는 동안 엄마는 아이들 옆에서 뒷바라지 하고, 아빠는 돈 벌어 대어 생활비 대고... 이런 점이 기러기와 유사하기 때문이죠.
흔히 부부애가 두터운 것을 원앙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만 사실 원앙은 바람둥이고 진짜 절개를 지키며 사랑하는 새는 기러기랍니다. 기러기는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로 가족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도 거기에서 유래했으니까요. 이와 같이 뜨거운 가족애 하나만으로 혼자 사는 수고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외로움과 싸우는 가장을 '기러기 아빠'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기러기 가족'들이 제법 있습니다. '기러기 가족'이 있다는 것은 '기러기 아빠'도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남자이고 아빠이다 보니 '기러기 아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아- 참 힘들겠다!"입니다. 특히 남자도 나이가 먹으면 외로움이 더 잘 듭니다. 그리고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이 필요합니다. 본능입니다. 그 본능을 외국에서 공부하는 자식 생각하고 뒷바라지 하는 아내 생각하며 참아냅니다.
그러나 너무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업무로 인해 지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옵니다. 집에는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내도 없고, 재롱떨며 매달리는 토끼 같은 자녀도 없습니다. 화장실에는 덩그러니 널려져 있는 뺄래감이 있습니다. 집안에 고독의 냄새가 오랫동안 배겨 있습니다. 문득 찬밥에 물 말아 먹으면서 그만 서러움이 북받치게 됩니다. 눈물이 떨어져 밥 속에 들어갑니다. 통곡을 하고 울게 됩니다.
그런대로 밥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화상채팅을 합니다. 아내가 묻습니다. "당신 밥 잘 챙겨 먹었어?" "응... 당신은? 애들하고 뭐 좀 먹었나?" "응... 애들이 오늘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방금 피자 먹고 오는 길이야. 그런데 어떡하지? 애들 학비가 모자라는데... 당신 돈 좀 더 붙여 줄 수 없어?" "...." 평상시 같으면 "아니, 얼마 전에 돈 붙여줬는데... 벌써 다 썼어? 이놈의 여편네가 바람을 피나?" 하고 농담을 할 텐데 그날은 아무 말도 없이 "알았어! 나 오늘 굉장히 피곤하네! 돈 내일 붙여 줄게." 하고 화상 채팅을 끝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들려온 소식입니다. '기러기 아빠 자살'
우리 교회에도 이렇게 떨어져 사는 가족들의 아픔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기러기 아빠들의 모임'이란 카페도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안내문입니다. "자녀교육 문제로 가족과 헤어져 힘들고 외롭게 고군분투 하시는 분들과 정을 나누고 싶군요.... 저도 가족과 헤어진 지 벌써 5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해봐도 가족의 빈자리는 메워지질 않더군요.... 가슴 아픈 일이지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생각할 때도 많구요.... 어쨌든 비슷한 분들이 모여서 가슴에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카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아픔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도 상의합니다. "하나님, 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떨어져 살아야만 합니까?" 이에 대한 답변을 쉽게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면 좋은데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즉 떨어져 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경우가 참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를 때에도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즉 가족들과의 떨어짐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니, 가족 제도를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는 떨어져서 살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야곱도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가족들과 떨어져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랫동안 지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셉도 배 다른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에 노예로 끌려가면서 가족들과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족들 간의 이별도 나중에 보면 다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이루는 방법으로 쓰였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모두 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뿐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숨겨놓은 제 2의 부인, 숨겨놓은 자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님 어머님을 천국으로 보내고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 사람만 가족이 아니고 주님 안에서 죽은 사람도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머님 아버님이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어머님 아버님을 보는 날은 제가 죽는 날입니다. 그러면 저는 천국에 가서 괜찮지만 또 제 아내와 제 딸이 떨어져 사는 가족이 되고 맙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와 떨어져 살고 있는 분이 참 많습니다. 보고 싶은 분이 있을 것이고, 아직도 보고 싶지 않을 분도 있을 것이고, 하여간 우리들은 모두 떨어져 사는 가족들입니다. 더욱이 태평양 건너 이 외국 땅에 와서 지내는 동안 떨어진 가족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군인이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여 고향에 가면 다시 그리운 부모님, 그리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마치는 날 우리 모두는 떨어진 가족에서 다시 만난 가족들이 됩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가족들과의 재회의 순간이 더욱 아름다운 순간이 되기를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떨어지고 헤어질 때가 있으면 반드시 다시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말씀도 함께 기억하십시오. "네 가족을 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