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감사하자

날짜: 
2004/11/07
설교: 

살전5:18 또 다시 감사하자
현대인들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과 편리함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꼭 현재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내려보내시며, 오늘 하루 동안 드려지는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은 각각 커다란 바구니를 한 개씩 들고 성도들이 기도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찾아다녔습니다.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교회건, 학교건 간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기도를 마구 담았습니다.
저녁쯤 일을 마친 두 천사는 서로의 바구니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천사의 바구니는 들고 가기 힘들만큼 무거웠지만, 다른 한 천사의 바구니는 들어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벼운 바구니를 든 천사에게 어째서 바구니가 그렇게 가벼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는,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이 '이것을 해 달라, 저것을 해 달라.' 하는 기도만 드렸지, '이렇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래서 고맙습니다.' 하는 감사의 기도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구'를 담은 저 천사의 바구니는 가득 찼지만, '감사'를 담은 제 바구니는 이렇게 비어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가 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은 참으로 열심히 간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모두 고쳐 주자 오직 한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과 편리함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꼭 현재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내려보내시며, 오늘 하루 동안 드려지는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은 각각 커다란 바구니를 한 개씩 들고 성도들이 기도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찾아다녔습니다.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교회건, 학교건 간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기도를 마구 담았습니다.
저녁쯤 일을 마친 두 천사는 서로의 바구니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천사의 바구니는 들고 가기 힘들만큼 무거웠지만, 다른 한 천사의 바구니는 들어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벼운 바구니를 든 천사에게 어째서 바구니가 그렇게 가벼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는,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이 '이것을 해 달라, 저것을 해 달라.' 하는 기도만 드렸지, '이렇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래서 고맙습니다.' 하는 감사의 기도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구'를 담은 저 천사의 바구니는 가득 찼지만, '감사'를 담은 제 바구니는 이렇게 비어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가 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은 참으로 열심히 간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모두 고쳐 주자 오직 한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이 열 명의 문둥병자처럼 하나님께 이것을 해달라고 저것을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목청을 높여 소리지르며 부르짖습니다. 때로는 금식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감사는 그렇게 소리 높여 열심히 하는지 생각 좀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감사가 부족했다면, 혹시 불평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면 "아이고, 이거 내가 신앙 생활 잘못하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반성해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배를 타고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미국 땅에 도착한 사람의 수는 남자가 78명, 여자가 24명, 합계 102명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뉴욕의 맨하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02층으로 지어진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들 102명도 대부분 도시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농사짓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습니까? 그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 그들이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다시금 금식을 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이러한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힘들 때마다 금식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번쯤 우리의 생각을 고쳐볼 필요가 있는 줄 압니다. 물론 우리가 영국에서 살 때보다도 형편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조건들을 찾을 수 있는 줄 압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정치의 자유도 있습니다. 또 우리의 눈앞에는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금식을 선포하지 말고 차라리 감사를 선포하십시다. 우리가 감사의 주간을 정하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더 많은, 더 큰, 더 깊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보면 어떻겠습니까?”
그의 말에 그곳에 있는 모두가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주간을 선포하지 않고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그들이 감사주일을 지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작가 다니엘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탔던 배가 파손이 되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홀로 살아 남아서 무인도에 이르렀습니다. 그 무인도에서 그는 28년 동안이나 생존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극적으로 구조를 받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28년 동안이나 홀로 살 수가 있었습니까? 그의 정신력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한 마디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말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 그래도 자기는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였습니다. 그러나 따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아무데서도 옷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날씨가 따뜻하다는 사실에 그는 감사했습니다.
그에게는 총 한 자루 이외에는 변변한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섬 안에는 자기를 해칠만한 짐승이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그는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귀한 깨달음을 스스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무인도에 홀로 남은 사
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감사할 조건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감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감사의 경험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음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아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감사하는 데서 자라가고 완성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인의 영성을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은 감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안 좋은지 하는 평가는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 아닌지, 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믿음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기쁜 일이 있든지 슬픈 일이 있든지, 일이 잘 풀리든지 안 풀리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최고의 미덕이요 최고의 믿음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축복이 있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한 감사하는 영혼은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입니다.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상품에 질이 있는 것처럼 영혼에도 질이 있는데 그 영혼의 질 가운데 가장 탁월한 영혼은 감사하는 영혼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질 좋은 영혼을 만나면 우리의 영혼의 질도 같이 좋아집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감사로 가득 차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감사는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의외로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만 해도 하나님은 감동을 받으십니다. 죤 밀러는 말하기를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불평 원망을 일삼는 사람은 어떤 좋은 환경에서도 지옥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도 행복해지고 남도 행복하게 해 줍니다. 반면 불평하는 사람은 자신도 불행해지고 남도 불행에 빠트리고 맙니다.
어느 날 사탄이 지금까지의 사업을 정리하고 그 동안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연장들을 모아 경매에 부치기로 했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사탄은 인간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했던 그리고 망하게 하며, 약하게 만들고 타락시켰던 연장들을 진열하였습니다.
시기심, 고집, 욕심, 보복심, 미움, 교만, 혈기, 열등의식 등 실로 다양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연장들이 놓여있는 맨 끝에 아주 비싼 가격에 나와 있는 잘 포장된 도구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비쌌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그것이 '낙심' 이라는 무기로써 얼마나 위력이 있었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히 훌륭히 일하던 사람도 이 낙심으로 공격하면 일을 멈추었으며, 교사도, 집사도, 임원도, 권사도, 장로도, 목사도 이 무기 앞에서 꼼짝 못하고 무기력한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더라는 것을 입에 거품을 토하며 신나게 설명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사탄에게 질문하였습니다. "혹시 그 연장을 사용하여도 넘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던가?"
그러자 사탄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 낙심이란 연장을 사용하여도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무기가 아무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항상 범사에 감사하면 사탄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분문에 보면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그 만큼 감사거리를 충분히 주셨다는 의미이며, 또 얼마든지 감사하도록 은총을 쏟아 주시겠다는 사랑의 약속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잠시 감사의 제목을 찾아봅시다. 여러분, 사람의 눈의 시력이 제일 좋은 경우가 2.0인데 만일 시력이 5.0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언젠가 TV를 통해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집은 깨끗하고 실내도 청소가 잘 되었으므로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수 카메라를 갖다 대니 얼마나 많은 세균들과 벌레들이 집 안 구석구석에 우글거리는지 모릅니다.
카페트 위를 들여다보자 사람의 몸에서 떨어진 피부 부스러기들을 먹느라고 얼마나 많은 세균과 벌레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여기 저기 알을 까놓기까지 했습니다. 소파와 침대 밑, 덮고 자는 이불 속은 세균들의 가장 좋은 번식처였습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지금의 상태보다 더 밝아져서, 이런 미세한 것도 보면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즉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눈을 조절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귀가 지금보다 두 배만 소리를 더 잘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마 사람들은 모두 신경쇠약증 환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시속 1,670Km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세 발 자전거만 타도 삐걱 소리가 나는데 어찌 이 큰 지구 땅 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소리가 나질 않겠습니까?
물론 어마 어마한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 커서 사람이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귀는 초당 20회에서 2만회로 사이에 진동하는 음파만 듣는 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큰소리나 너무 작은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범위 밖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너무 귀가 밝아 아주 작은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소리까지 듣고 산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듣게 된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박쥐는 5만 회로까지 듣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사람은 듣지 못하고 개만 듣고 달려올 수 있는 신호용 호루라기가 있답니다. 개가 듣는 청력의 범위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청력의 범위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 합니다.
또한 사람의 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질이 존재하는데 모든 물질은 고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려낼 수 있는 냄새는 10만가지 정도 된답니다. 그러나 개의 후각은 인간의 1백만 배라고 하는데 만약 우리가 진돗개나 세퍼트처럼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면 맡지 않아도 될 온갖 냄새로 악취와 역겨움에 정신을 못 차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도, 귀도, 코도 적당하게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만 듣고, 맡을 수 있는 것 만 맡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 인줄 모릅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도 행복해지기를 원합니까? 화목해지기를 원합니까?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를 원합니까? 진리가 충만해지기를 원합니까? 좋은 인격을 갖추기를 원합니까? 하나님께 바르게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까? 아름다운 영혼, 질이 좋은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까? 범사에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이 진리를 깜빡 까먹었다면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또 다시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내일도 또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천국 문에 들어가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