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리그에서 사는 법

날짜: 
2012/06/30
설교: 

삼상21:1-6 마이너 리그에서 사는 법
혹시 야구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야구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 야구 선수 중에 미국에서 활동 중인 추신수 선수나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대호 선수의 경기 결과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 야구 선수 중에는 1군 선수와 2군 선수로 나뉩니다.
영어로 말하면 1군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메이저 리그'라고 하고, 2군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마이너 리그'라고 합니다. 이 두 리그의 격차는 엄청납니다. 미국의 경우 메이저 리그 선수들은 이동할 때 비행기로 이동하지만, 마이너 리그 선수들은 버스로 이동합니다. 급여 차이도 엄청나서 메이저 리그 선수들은 최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지만, 마이너 리그 선수들은 고작 몇 불 되지 않은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가 많습니다.
관중수도 메이저 리그는 수만 명이 모이지만, 마이너 리그는 고작해야 몇 백 명입니다. 그래서 마이너 리그 선수들은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네 인생도 야구경기처럼 메이저와 마이너로 갈려서 그들만의 리그를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 갈라놓은 것도 아닌데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이 어떠냐에 따라 본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마도 마이너 리그를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 중에도 굳이 이런 식으로, "당신은 메이저 리그에서 살고 있습니까? 마이너 리그에서 살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자기 스스로 메이저 리거라고 말 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기가 지금은 메이저 리거라고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도 슬럼프에 빠지거나 성적이 계속 부진하면 마이너 리그로 보내집니다. 사실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나 일상을 사는 우리들이나 메이저 리그에서 사는 시간은 있다 해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마이너 리그에서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이너 리그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승승장구하던 메이저 리그에서 마이너 리그로 뚝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골리앗을 죽이면서 화려하게 데뷔를 했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는 로고송을 들으면서 온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전쟁에서 계속 이겨서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기까지 그의 인기는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본문에 와서는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 되는 상황까지 추락하고 맙니다. 그런 어려운 처지 가운데서도 평소의 그의 모습처럼 하나님만 바라는 굳은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그런 믿음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지금 다윗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든 자기의 힘과 자기의 방법으로 모면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거짓말이요, 둘째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지금 다윗에게 주어진 최선은 그 두 가지 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두 가지가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먼저 그는 거짓말로서 자기의 꼬인 인생을 풀어 나가려고 합니다. 오늘 다윗은 사무엘상 21장에서만 세 번씩이나 거짓말을 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어떻게 혼자 왔냐고 물었을 때, 왕의 특수 임무를 띠고 혼자 왔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사장에게 떡 몇 덩이를 얻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한데 혹 창이나 칼 가진 게 있냐고 묻습니다. 물론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다윗은 지금 어떤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몸 하나 지키기 위해서 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서는 거짓으로 미치광이 짓을 해서 목숨을 간신히 구걸합니다. 사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배제한 인간적 처세술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게 바로 이겁니다. 마이너 시대에서 살 수 있는 법이란 정말 거짓말 밖에, 인간적인 처세 밖에 없을까요? 만약 다윗이 거짓말을 안 했다면 하나님은 다윗을 굶기셨을까요? 다윗을 죽이셨을까요? 지금 다윗이 가장 잘못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방법을 수시기 전에 자기가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앞서서 뭔가를 먼저 해 버리면 하나님은 그걸 그냥 놔두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열매를 맛보게 합니다. 오늘 다윗이 거짓말 한 결과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나중에 도엑이라는 사람이 이 모든 일, 즉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 온 것과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과 칼을 준 것을 사울 왕에게 밀고합니다.
그 결과로 제사장 아히멜렉과 다른 제사장 85명이 몰살을 당합니다. 이런 경우는 좀 극단적인 예지만, 우리 삶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우리 식의 인간적인 해법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나름대로 좋은 방법이라고 하고, 좋은 지혜라고 하는 것들이 실제는 좋지 못한 방법과 좋지 못한 지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뭐겠습니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알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상황도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어려울 때, 즉 마이너 리그를 살아갈 때에 가장 조심해야 될 것은 바로 거짓말, 또는 인간적인 처세로 사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그것이 매혹적인 것 같지만 그 뒷감당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 방법은 버려져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사람의 도움은 진정한 도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마이너 리그를 살아갈 때 또 하나 조심해야 될 게 사람들의 도움이라는 겁니다. 당장은 가장 좋고, 빠른 길 같지만 그게 진짜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속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도움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 헨리의 작품 중에 '마녀의 빵'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미쓰 마더는 40세 된 여성으로서 조그만 빵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정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빵집에 한 중년 남자가 들어오지요. 그 손님은 가장 싸고 맛없는 딱딱한 빵을 사가는 남자였는데, 어느 날 보니 그의 손가락 사이에 물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아주 가난한 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그 가난한 화가를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자존심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돕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여느 때처럼 또 빵을 사러 왔습니다. 그때 미쓰 마더에게는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식빵 안에 갓 배달된 버터를 듬뿍 발라 주기로 한 겁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버터를 바른 빵을 화가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두 사나이가 가게로 들어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버터 바른 빵을 가져간 화가였는데, 그는 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미스 마더를 향해 소리칩니다. "이 할망구야!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 당신이 내 일을 망쳐놓았다고! 이 주제넘은 할망구야!" 탁자까지 탕 탕 내리치면서 소리치는 그 화가를 같이 온 다른 남자가 겨우 밖으로 끌어내더니 다시 들어와서 설명을 하는데 이랬습니다.
그 남자는 화가가 아니라 건축설계사였는데, 지난 석 달 동안 새 시청 공모전에 낼 설계도를 그리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 날 마침내 잉크로 그리는 일까지 마쳤습니다. 처음 설계도를 그릴 때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다음에 잉크를 덧대서 그린 뒤에, 마지막엔 딱딱한 빵으로 연필 자국을 지워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날 미쓰 마더가 준, 버터가 잔뜩 든 빵 때문에 도면에 버터가 여기 저기 튀었습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잉크가 번져서 도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엉망이 됐다는 겁니다. 소설은 그렇게 끝납니다. 여기서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좀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당신 일이나 잘하세요."라는 말일 테고, 좋게 말하자면 "남을 도와줄 때 정확히 파악하고 도와줘라."는 말일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돕는다 해도 그게 도움이 안 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아히멜렉이 미쓰 마더 같습니다. 자기 딴에는 먹을 것을 주고 무기를 주면 다윗이 힘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은 다윗을 훈련시키려고 광야로 내 모신 겁니다. 죽이시든 살리시든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다윗에게 내놓고, 그에게 칼을 주며 그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혹하게 돌아왔습니다. 제사장 뿐 아니라 그 가족이 사는 놉이라는 성에 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제사장만 85명이라니까 그 가족까지 합치면 적어도 500명 이상이 희생됐을 겁니다. 그렇게 사람의 도움이란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이너 리그를 살아갈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사람들의 도움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도움은 그저 말 그대로 도움이 될 뿐이지 그게 해결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오늘 우리가 마이너 리그에서 인생을 사는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해도 안 된다.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잠깐 지루할 것 같아서 퀴즈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문제를 다 들으시고, 아시는 분은 손을 들고 말씀해 주세요. 맞추시는 분에겐 예배 후에 저에게 오십시오. 그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세븐 일레븐'에서 아이스크림, 또는 냉커피를 사드리겠습니다. 아마 젊은 세대들은 맞추시기 어려울 테지만 30대 이후의 분들은 쉽게 맞추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시대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살았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농토로 농사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의 논을 소작으로 붙여먹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언제나 모내기철이 되면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먼저 대려고 난리였는데, 그나마 그런 사람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우리 농지는 이것이기 때문에 그런 전쟁에서 일찌감치 물러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처지를 좋게 볼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대가 낮은 곳에 있는 논은 얼마나 좋은가? 비가 오지 않아도 그들은 여차하면 저수지나 수로를 통해서 물을 끓어 들일 수도 있고, 옆집 논물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논은 이것이기 때문에 물을 끌어드릴 재간이 없는 것이다. 산허리를 쑹덩 잘라 일구고 김매서 그나마 적은 소출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한 때에 비가 꼭꼭 와 준다는 전제 아래서다. 물이 꼭 필요할 때 우리는 저수지나 수로를 보는 게 아니라 오직 하늘만 바라본다. '이것을 가진 농부들의 한결 같은 비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 외에 우리에겐 아무런 길이 없는 것을. 자,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천수답'입니다.
제가 천수답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뭔지 이미 다들 아셨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의 결론도 벌써 다 나왔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살아갈수록 하나로 귀착되어 가는 진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다."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받아야 할 것, 내가 필요한 것, 그 모든 것은 결국 주님이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바로 이 사실을 믿을 때, 그때부터 우리는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저의 아버님이 연세가 60세 정도 되셨을 때, 사업을 하다가 부도수표 사건에 말려 사업이 쫄딱 망했습니다. 더구나 6개월의 감옥신세를 지고 나왔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보니 남은 것이 없습니다. 도저히 사업을 다시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때 저의 아버님이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돈 벌 힘이 없다."
그랬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60세를 살기까지 큰돈을 벌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아깝게 계속 스쳐가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나이도 60이 되어 머리가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예언 했습니다. "아버님, 낙심하지 마세요. 이제는 하나님이 평안과 함께 하는 물질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예언대로 저의 아버님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평안과 함께 오는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희한하게 역사하셔서 평안의 돈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쟁취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는 얘깁니다.
물질, 만남, 자리, 다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합니다. 내가 모으려고 한다 해서 모아집니까? 내가 건강 지키려고 한다 해서 지켜지나요? 내가 자리 하나 만들어 본다고 노력한들 만들어 지던가요? 여러분! 우리는 평소에 정말 많은 문제들을 품고 삽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부분의 문제가 천수답 같은 문제입니다. 우리의 논은 우리 스스로 물을 끌어들일 수 없는 논입니다. 모내기철에 비가 안 오면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안 오면 거둘 게 없는 밭입니다. 농부는 철저히 하늘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많은 문제가 천수답 같지 않습니까? 내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늘만 바라봐야 하고, 하늘에서 비를 내려줘야만 모내기 하고, 추수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천수답입니다. 그 천수답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바로 천수답의 상황이 되는 순간, 우리는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간절히 바라고 바랄 때, 그때 주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시면 그때의 그 감동과 기쁨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는 길은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져야 삽니다. 그래야 40년간 수백만 명이 굶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즉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인생의 힘든 시기가 올 때,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인생의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제대로 안될 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짓과 자기 처세술로는 안 됩니다. 남의 도움으로도 안 됩니다. 도리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겨운 마이너 리그를 살아갈 때 우리는 오직 천수답처럼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에게 은혜의 소낙비가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이 풀어지고, 기적도 일어나서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도약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