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퍼센트 신자입니까?(동영상)

날짜: 
2013/10/06
말씀: 
요한복음 21:15-22
말씀구절: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설교: 

오늘의 설교 제목에 스스로 생각해보시고 주님 앞에 솔직히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대답들이 나올 겁니다. ①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시간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10% 신자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② 주님, 제가 믿는다고 하지만 스스로 평가할 때 50% 신자는 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반쪽짜리 신자인 것 같아요. 죄송해요.

③ 주님, 지금 노력 중에 있습니다. 열심히 믿어보려고 합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70-80% 신자 밖에 안되는 것 같네요. 주님, 죄송합니다.

④ 주님, 이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99% 신자였습니다. 그때는 만날 주님만 생각하고, 늘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말해 믿음이 좀 식어졌습니다. 예전만큼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다시 열심을 내겠습니다.

⑤ 오- 주여, 할렐루야! 충만충만! 주님, 사랑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100%, 아니 그 이상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여,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옵소서.

혹시 이 자리에 사랑하는 애인, 혹은 신혼부부, 혹은 남편과 아내가 같이 앉아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한번 서로 얼굴을 보시고 이렇게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자기) 나 몇 퍼센트나 사랑해?"

이 질문에 갑자기 마음이 뜨끔해지거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까? 빨리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질문을 보통 여자 분들이 많이 하는데, 제가 남성분들에게 지혜를 주겠습니다.

이런 질문에는 먼저 대답하지 마시고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난 후에 대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어떨까요? "응-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퍼센트 정도 사랑하는 것 같아." "어- 요것 봐라. 머리 굴리네."

여러분! 혹시 이 자리에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청년들 중에 서로 사귀는 분이 있습니까? 상대방이 당신을 얼마나, 몇 퍼센트나 사랑해주기를 원합니까? 혹시 그 사랑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하다가 괜히 시험만 더 들 수 있으니까 그냥 포기하고 지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런 식의 질문을 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의를 기울이고 잘 살펴보십시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우리가 가진 한글 성경으로는 본문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제가 성경의 원어에 입각하여 다시 재해석해주겠습니다. 15절에 주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아가페(예를 들면 100%)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저는 주님을 필레오(예를 들면 80% 정도) 사랑합니다.

그러자 16절에 다시 한 번 주님이 똑같이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아가페(100%)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저는 주님을 필레오(80% 정도만) 사랑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17절에 새롭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필레오(80%) 정도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님이 그렇게 질문하는 것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대답합니다. "주여, 제가 주님을 필레오 사랑 정도는 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여러분! 그러잖아요. 베드로는 얼마 전에 예수님을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가 "주여, 나는 주님을 100%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뻔뻔스럽고, 안면에 철판 깔은 것이잖아요. 아니, 이것은 위선이잖아요.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자기가 "나는 주님을 100%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과연 베드로가 자기를 얼마만큼 사랑하는 줄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셨겠습니까? 주님은 다 아신다고요. 내가 과연 주님을 몇 퍼센트 사랑하는지 주님은 잘 아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줄을 주님은 다 아시고 있고, 그렇지만 베드로는 아가페 사랑 정도는 못하는 것도 잘 아시고 있습니다.

보통 남녀의 경우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가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라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상대방의 대답이 자기가 만족할만한 대답이 안 나오면 토라지기 쉽습니다. 등 돌리기 쉽습니다. 성격이 아주 까다로운 여성은 그 순간에 그냥 관계가 끝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아가페(100%)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위해,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너와 나는 예수님을 100%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언급한대로 어떤 분은 10%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50%만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조차도 항상 배신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 너와 나를 향해 주님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토라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여러분! 우리는 각자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 중에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만큼 귀하고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오늘 각자 주일 예배에 나오기 위해 아침 몇 시에 일어나셨습니까? 그리고 여성분들의 경우, 한번 집을 나서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주일예배는 한 시간 드리는데 준비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됩니다. 특히 얼굴 화장에 정성이 참 많이 들어갑니다. 고로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 향한 사랑이 1%라도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니, 이 시간만큼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만 이 자리에 앉아서 올바르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 47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생수가 나옵니다. 그 물이 흘러서 처음에는 발목에 이르렀습니다. 나중에는 물이 무릎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물이 허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또 나중에는 물이 창일하여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하는 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나무가 번성하고, 생물이 살고, 물고기가 심히 많아졌습니다. 즉 신앙에도 발목까지만, 무릎까지만, 허리까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아주 많이 주님을 사랑하는 분이 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다름 아닌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신앙생활의 목적을 돈에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면 아멘 소리가 크게 나오며 갑자기 생기가 돋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돈을 주십니다.

독생자를 주신 분이 어찌 돈을 안주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신앙생활의 목적이 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아픈 몸을 치료해주시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결국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늙어서 병들어 죽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치료하지 않으시고, 나를 살려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죽으나 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혹 식어지지 않을까, 그 사랑이 혹 변질되지 않을까,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주님과의 사랑을 하늘나라 갈 때가지 이루며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즉 이 말씀은 베드로가 늙어서 사형장으로 끌려가 두 팔을 벌리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것을 예언하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예언은 참으로 끔찍하고 재수 없는 예언입니다. 예수님 믿다가 밥맛 떨어지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한편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러잖아요. 가끔 영화를 보면 남녀 간에 무척 사랑하여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 우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자- 베드로는 앞으로 그렇게 주님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을 겁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도 요한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남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좇으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를 비롯해 모든 사도들이 앞으로 순교를 당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사도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살며 순교를 당하지 않고 평안히 죽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자기를 비교해봅니다. 자기는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데,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데 나중에 순교를 당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기만큼 주님의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주님이 오래도록 살려줍니다. 한 마디로 억울할 수 있습니다. 괜히 섭섭합니다. 옆에 사람 보니까 시험에 들겠습니다.

여러분!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옆에 사람이 나보다 돈 더 많이 벌고, 나 보다 더 잘 살고, 나 보다 더 잘 생겼다고 괜히 시험 들지 말고 자기에게 맡겨준 일이나 끝까지 잘 완수하며 주님을 따르라는 겁니다.

여러분! 영어 단어 중에 서로 상반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increasing 과 decreasing입니다. increasing은 점점 늘어나는 것이고 decreasing은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한번 두 단어로 자신의 신앙을 체크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사랑, 소망, 열정이 increasing 하고 있습니까? decreasing 하고 있습니까?

결론입니다. 주님을 많이 사랑하십시오. 이전보다 더 사랑하도록 애를 쓰십시오. 옆에 사람보고 시험 들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끝까지 잘 따르십시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