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3:14-22 미지근한 신앙
소아시아에는 7교회가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 등이 복음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들은 당시 번성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변이 모두 회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떤 교회는 칭찬하시고, 어떤 교회는 야단만 치시고 어떤 교회는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야단치실 것은 야단치셨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토해버리시겠다고 야단만 치셨습니다. 칭찬을 받지 못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본문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15-16절)
라오디게아 교회가 위치하여 있는 곳 맞은편에 하에라폴리스라는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은 온천수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온천수가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오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물이 되는 것을 주님은 아시고 이렇게 비유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폭염이 내려 쬘 때 시원한 물이 아닌 미지근한 물을 마셔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습니다. 미지근합니다. 중간입니다. 이를 정치적인 용어로는 회색분자라고 합니다. 이중간첩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양다리 신앙입니다. 좋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용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내용은 좋은 뜻이 아니라 왔다 갔다 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크리스천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도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식으로 미지근하게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토하여 내치리라고 무시무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훌러 신학교에 교회성장학에 관한 유명한 교수가 있습니다. 맥가브란 교수입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깨어서 활발하게 일하는 교인이 대개 10%입니다. 살짝 자고 있는 사람이 80%입니다. 그리고 푹 자고 있는 교인이 10%라는 것입니다. 목회가 무엇입니까? 10%의 깨어 움직이는 교인들과 활기차게 일하여야 합니다. 살짝 자고 있는 80%를 깨워야 합니다. 그리고 푹 자고 있는 10%는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푹 자고 있는 사람 10%를 깨우면 깨고 나서 신경질을 부린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살짝 자고 있는 교인 즉 미지근한 교인이 교회마다 80%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남군과 북군의 경계선에 란카스타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하였습니다. "우리는 비상시를 대비하자. 언제 북군이 들어올지, 언제 남군이 들어올지 모른다. 고로 우리가 살기 위해 위에는 북군의 옷을 입고 밑에는 남군의 옷을 입자. 갑자기 북군이 쳐들어오면 북군의 옷을 입었다고 우리들을 살릴 것이다. 그리고 남군이 갑자기 쳐들어오면 남군의 옷을 입었다고 우리들을 살릴 것이다."
그런데 북군이 쳐들어 와서는 남군의 아래옷을 입은 것을 보고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남군이 쳐들어 와서는 위에 북군의 옷을 입었다고 죽였습니다. 이래저래 다 죽였습니다. 여러분, 중간은 비극입니다. 미지근하면 토하여 낸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여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미지근하다고 책망했습니다. 무엇이 미지근하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5가지 면에서 미지근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 죄에 대하여 미지근하였습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15-17절)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곤고하였습니다. 죄의 결과는 곤고입니다. 곤고는 죄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죄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도 의롭게 산다고 하면서도 죄에 이끌려 살 때마다 곤고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죄에 이끌려 사는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4-25)
요즘 성도님들은 죄를 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죄를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안 짓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의 지리산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벼락을 13번 맞으면서도 끄떡없었던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강하였던 나무가 쓰러진 이유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조그만 딱정벌레들이 나무 밑을 파먹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렇지도 않은 것같이 사소하게 여겼던 죄로 인해 넘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하게 대처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죄를 지을 때 팔을 잘라 버릴 정도로, 또는 다리를 자를 정도로, 또는 눈을 뺄 정도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일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가련하였습니다. 가련하다는 말은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일을 하지 않고 파묻어 두었다가 빼앗기고 이를 갈며 슬피 울며 내쫓긴 것과 같은 언어입니다. 부요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가련하게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화끈하게 하나님께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닙니다. 미지근합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을 지낸 죤 워나메이커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얼마나 하나님께 봉사를 열심히 했는지 대통령이 체신부장관을 하여 달라고 불렀을 주일학교 교사를 하여야 하기에 장관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감동을 받고 주일은 안부를 테니 장관을 허락하여 달라고 오히려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본업은 주일학교 교사요 부업이 장관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하나님의 일에 불같이 뜨거운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3) 헌금 생활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헌금에 대하여도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라는 말은 <백성의 권리>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권리만 주장하였지 의무를 다 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는데 하늘나라 저금통장에 저금액이 적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는 부자인데 하늘에서는 가난하였습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데 가난하였습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았습니다. 물질에 미지근하였습니다. 자기는 부요하고 하나님은 가난하게 한 이들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이었습니다.
(4) 기도 생활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기도에 대하여도 미지근하였습니다. <눈 먼 것과>라는 말은 그들이 육적으로 장님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기도하지 아니하여 영적으로 장님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통로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그런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기도를 하기는 한다고 폼은 잡지만 진짜 기도다운 기도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장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데 미지근하면 안좋습니다.
(5) 판단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옷을 벗고 다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운데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부끄러운 말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남의 촛불을 훔쳐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성경을 읽으려고 남의 촛불을 훔치면서 그것이 잘못인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판단력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는 어느 할머니가 새벽기도에 가려고 일어나 보니 연탄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는 옆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잘 타는 연탄과 바꾸어 놓고 새벽기도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이같이 5가지 면에서 미지근하였습니다.
그러면 미지근한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미지근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8-19절) 본문에 2가지 해결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1. 예수님으로부터 3가지를 사야 합니다.
(1) 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우리가 미지근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금입니까? <불로 연단한 금>입니다. 라오디게아 지방은 금이 많이 나오는 지방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금은방에 가서 금을 사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내게서>라고 하셨
습니다. 예수님은 금장사이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금을 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금은방 주인이십니까? 아닙니다. 금은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김씨 성을 가진 이름이 많습니다. 저의 이름 '김원효'의 뜻은 이렇습니다. 금 같은 믿음으로, 으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효도한다. 금 같은 믿음을 가지면 미지근하던 신앙이 뜨겁게 됩니다.
(2) 흰 옷
예수님은 옷 장사이기도 하십니다. 미지근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흰 옷을 주님으로부터 사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지방에는 특별히 검은 옷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대조적으로 흰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흰 옷은 죄를 버린 성도들이 입는 깨끗한 성결의 옷입니다. 믿음의 주인도 주님이시지만 성결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 죄를 버리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뜨거운 믿음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미지근한 믿음에서 해방됩니다.
(3) 안약
라오디게아에는 의과대학이 있었고 많은 의약품이 있었다고 합니다. 온천 지대이기에 수많은 병자들이 치료하기 위하여 몰려들었습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약방을 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영안을 뜨면 영계가 보이고 그러면 미지근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은 만나기 전에는 가브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학력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당시 온 세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기에 로마 시민권이면 최고의 신분이었습니다. 히브인중에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는 가문이 그렇게 자부심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고나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나서는 그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
이 분토와 같이 버렸습니다.
보이던 것이 안 보이게 되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눈에 영적인 안약을 발라서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줄 알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에 안약을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미지근한 믿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사야할 것은 금과 흰 옷과 안약입니다. 주님의 영적 슈퍼마켓에는 이 세 가지 물건이 가득차 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사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2. 회개하고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8-19절) 무엇이나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이에게 뜨거움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미지근하다는 원어는 '클리아로세'인데 이는 열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회개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열심히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가장 열심히 다닌 사람 기록이 발표되었습니다. 1976년까지 통계입니다. 미국 아이오와주 케오쿡(Keokuk)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성도 린퀴스트 여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1888년부터 88년 동안 꾸준히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88년 동안 모든 예배에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88년 동안 그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15번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8,000번 이상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4,000번 이상 기도회에 참여하였습니다. 29,000번 이상 취침기도를 드렸습니다. 린퀴스트 여사는 50년 이상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습니다. 제자들 중에 목회자가 수없이 나왔습니다. 열심 있는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결론입니다. 미지근한 믿음에 빠지게 되면 주님은 토하여 버리고 내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일 년 중에 제일 무더운 여름 철 신앙이 미지근하여 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지근한 신앙
날짜:
201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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