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날짜: 
2011/11/21
설교: 

시127:2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저희 집사람이 나이가 50이 되어 폐경기가 되니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잠이 잘 조절이 안되는 겁니다. 특히 밤에 잠을 자야 하는데 밤에 잠이 잘 안옵니다. 어떤 때는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고 나서 새벽예배에 나오기도 합니다. 당연히 피곤하겠지요. 힘들겠지요. 옆에서 보는 저도 안쓰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을 못자는 저희 집 사람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희 집사람이 자칫 시험에 들 뻔했습니다. "내가 밤에 잠을 못자는 건 혹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인가? 우리 목사님은 얄밉도록 잠을 잘 자는데...."
여러분,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면 지금 설교 시간에도 눈을 지그시 감고 주무시고 계신 분들은 하나님이 굉장히 사랑하시고 계시는 분일 겁니다. 한번 옆에 둘러보세요? 누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인지... 옆을 둘러보라고 했는데도 눈을 감고 여전히 점잖게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이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어느 교회에 설교시간에 앞줄에 앉아서 매번 졸고 계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설교하다 보면 교인들의 부스럭거리는 동작까지 눈에 다 들어옵니다. 더욱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분이 눈에 띄면 신경이 굉장히 쓰입니다. 하루는 그 교회에 목사님이 예배 때마다 늘 졸고 있는 성도님 집에 심방을 가서 조심스레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성도님이 대답합니다. "목사님, 정말 뭐라고 말씀 드리기가 송구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불면증에 시달리는데요, 이상하게 예배시간, 특히 설교 시간만 되면 잠이 쏟아지네요. 죄송합니다." 그 후부터 그 목사님은 교인들 가운데 예배 중에 조는 분들이 눈에 띄면, "음, 하나님께서 불면증 환자를 치료하고 계시는 중이군!"이라고 여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설교를 하셨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잠이 많으신 분들에게는 가장 은혜로운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할 일은 많은데 자꾸만 잠이 몰려오면, '아- 하나님께서 나를 무척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으려고 일손을 놓고 슬며시 침대에 눕곤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보통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냅니다. 상당히 많이 잠을 자지요. 그래서인지 소위 처세를 강조하는 책들을 읽어보면 한 목소리로 잠을 줄일 것을 권면합니다. 잠꾸러기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몰아붙입니다. 특히 한국의 고3 학생들은 '하루 4시간 자면 합격이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은 게으름의 표본으로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들에게 성공을 포기하라는 말씀인지, 아니면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오늘은 이 구절의 뜻을 살피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사랑하시는 남자들을 위하여 그가 앞으로 잠을 주실 것이다." 이런 원문을 보다 보면 '하나님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많이 잠자는 은혜를 주시는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자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표시이구나!'라고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동화책에 나오는 '숲 속의 잠자는 공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보면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말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십니다." 즉 여기서의 뜻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숙면을 하게 하므로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유지하도록 해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25-26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즉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족의 모습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슬프고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앞으로 유다 민족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고 황폐해진 예루살렘이 다시 건설이 된다고 계시해주셨습니다. 그 소망의 예언의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는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이 중에 염려와 근심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못자는 분이 있습니까?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도 편안히 수면을 취하고 깨어 일어나도 상쾌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잠언 3:24의 말씀입니다.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그리고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 이 말씀은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에게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말씀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먹는 것에 한이 맺혀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잠잘 때에도 배부르게 하신다는 말은 굉장한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번역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깰 때에도 복을 주시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복을 날라다 주십니다. 고로 잠에서 깨어보면 어느덧 당신 앞에 복이 쌓여져 있습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 같습니다. 주인공이 여러 가지 집안일이 많아서 고민하며 피곤하여 지쳐서 잠을 자는 동안에 요정들이 나타나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놓았습니다. 깨어보니 집안이 번쩍번쩍합니다.
그리고 잠자는 동안에 다 무너질 듯한 초가집이 아름다운 궁궐로 바뀌어졌습니다. 거지같은 자신의 모습은 공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동화책에서 밤새 요정이 나타나 일을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셔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문제가 해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그의 아내 하와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했나요? 힘든 노동을 했나요? 밤새도록 컴퓨터 작업을 했나요? 심한 고생을 했나요? 아닙니다. 그가 한 것은 단지 잠을 자고 일어난 것뿐입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그곳에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과 축복이 그의 앞에 쟌- 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창세기 2장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마치 성탄절에 어린이가 잠자고 있는 동안 산타할아버지가 밤에 선물을 놓고 가는 것처럼 아담은 잠을 자는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잠을 자는 중에도 하나님의 복과 선물과 은혜를 풍성히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4장 26-17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즉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이 그 씨를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는 중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방법으로도 온갖 필요한 복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요셉과 다니엘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꿈으로 여러 가지 계시를 해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꿈이란 것은 잠을 잘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혹시 이 가운데 잠을 자지 않고도 꿈을 꾸는 아주 신령한 사람이 있습니까? 즉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잠자는 동안에도 나타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거의 매일 꿈을 꾸다시피 합니다. 그 가운데 어떤 복잡한 문제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잠을 자는 중에 꾸는 계시로 말미암아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는 구절이 성립이 됩니다.
그런데 성격이 아주 급하셔서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계시를 받고 복을 받겠다고 잠을 청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깨어 있을 때에도 복을 주시지만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이 오지 않는데 복을 받겠다고 억지로 이곳에서 잠을 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좀 더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잠을 잘 때에도 복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밥을 먹을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길을 걸어갈 때에도, 운전 중에도, 설거지 할 때에도,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에도, 매사에 복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구나!" 할렐루야!
시편 121:3-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종종 피곤하여 주무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무시고 있다는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안주무실까요? 우리에게는 잠을 주신 하나님이 왜 본인은 이렇게 좋은 잠을 취하지 않으실까요? 혹시 하나님이 불면증에 걸리지 않으셨나요?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와 같이 피곤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주무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40:28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그리고 하나님이 주무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지키시기 위함입니다. 마치 부모님이 어린 아기가 잠든 동안에도 옆에서 사랑스럽게 쳐다보면서 아기가 이불을 걷어차면 다시 덮어주고, 아기가 땀을 흘리면 부채로 바람도 일으켜주고, 잠자는 자세가 나쁘면 자세를 바르게 고쳐주기도 하고, 모기가 덤비면 모기를 쫓아주기도 하시고...
하여간 잠자는 동안에도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돌보시고 있고, 은혜를 베푸시고 있고, 축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안전합니다.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잠자는 동안에도 저와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고 축복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