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날짜: 
2011/02/20
설교: 

요일4:16-21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내어 쫓는 것처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기차 길로 아장아장 걷고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기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옵니다. 어머니가 달리는 기차에 달려들어 아이를 집어 던지고 자기는 기차에 100m 가량 질질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갈기갈기 찢겨 죽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는 자녀를 온전히 사랑하기에 죽음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 겁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도 그냥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온전히 사랑하여야 용감한 사람,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될까요? 오늘은 이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두려움의 종류는 75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사랑하고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개가 짖으며 달려들까요?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개는 두려움에 두근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듣고 달려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여 심장이 정상인 사람에게 개는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하여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점령하려고 쳐들어 왔습니다. 골리앗 블레셋 장수는 무패의 노장이었습니다. 사울왕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두려워서 이곳저곳에 숨어 버렸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17:11) 그러나 다윗만은 결코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담대히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그리고 다윗은 돌멩이 5개만 가지고 담대하게 골리앗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무모하리만큼 용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했기에 결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시고 모든 문제를 다 해결시켜 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당당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롬8:31)
옛날 소련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할 때 이야기입니다. 고리텐 붐 여인이 지하교회에서 몰래 숨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총을 든 두 명의 군인이 나타났습니다. 기관총을 성도들을 향하여 대면서 외쳤습니다. "앞으로 5분의 여유를 준다. 예수를 안 믿겠다고 나가는 자는 살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 믿기를 고집하는 자는 남아라. 이 자리에서 총살이다. 벌집이 될 것이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몇 몇 성도가 두려움을 참지 못하며 울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군인은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 몇 초 안 남았다. 마지막이다." 몇 명이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또 나갔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몇 명이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5분이 지났습니다. 두 명의 군인 중 한 명이 문을 철컥 잠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두 명이 모두 총을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기독교인입니다. 우리 둘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번 마음껏 진심으로 예배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짜들은 다 나갔습니다." 모두는 감격 속에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두려움도 내어 쫓을 수 있습니다.
2.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가 살았으니까 사는 사람이 있고, 일하려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사람은 생존하는 사람이고, 무엇인가 일하려고 사는 사람은 사명의 사람입니다. 카알 힐티가 말했습니다. "사명을 발견한 날은 생일보다 중요한 날이다." 사명을 발견하고 나면 그 날부터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천로역정'이란 유명한 책을 쓴 '존 번연'이 그랬습니다. 군대 생활할 때 보초로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세워놓고 일을 하고 왔습니다. 적이 몰래 들어와서 친구를 죽여 버렸습니다. 번연이 돌아와 보니 친구가 적에게 살해되어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번연은 그때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습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말대로 괴수 중에 괴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잡으려고 예루살렘에서 300K나 떨어진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도망갔으면 그냥 두어도 되는데 그 곳까지 따라가서 잡아 죽이려는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메섹에 사는 진실한 성도인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바울은 다메섹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때부터 사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행20:22-24)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맡겨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진 고생을 감수하였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
사도 바울은 곳곳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있기에 그 모진 역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역경을 이깁니다. 고생을 이깁니다. 수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마치고 마침내 로마에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 아이는 구두를 닦을 때마다 늘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닦았습니다. 그래서 구두를 닦을 때 사람들은 항상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손님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뭐가 그리 좋은 일이 있어서 늘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노래하니?"
이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아니에요. 희망을 닦고 있어요." 이 아이가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됐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입니다.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닭을 키우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닭이 요란스럽게 소리를 질러대서 나가 보았습니다. 너구리가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닭장에 들어 왔습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모두 날개 아래 품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너구리가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어 어미 닭을 뜯고 있었습니다. 자기 혼자는 능히 도망할 수 있는데 도망치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뜯어 먹힘을 당하면서도 날개로 병아리들을 감싸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았습니다. 여우가 굴속에 자기 새끼를 낳았습니다. 구렁이가 여우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굴로 들어갑니다. 여우 어미가 굴 입구를 막아서서 구렁이와 싸웁니다. 피가 낭자합니다. 혼자 뱀에 물려 뱀독으로 퉁퉁 부어가면서 싸웁니다. 처절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비켜주지 않습니다. 마침내 뱀은 물러나고 맙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옛날 한국의 형편을 보면 사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특히 일찍 남편이 죽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과부의 신세는 참으로 처량하고 불쌍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자녀들이 참으로 훌륭하게 성장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홀로된 어머니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진 고생과 수치를 참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희생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 자녀를 사랑하는 모성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4:18)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혹시 이 외국 땅에서 살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번 체크 하십시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맡겨준 사명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에게 사랑하는 이가 있는가? 아무쪼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이 나에게 맡겨준 사명을 사랑하고, 또한 그 분이 사랑하라고 하는 이들을 사랑하면서 두려움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