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치료(동영상)

날짜: 
2013/02/10
설교: 

사53:1-5 상처와 치료

멍멍 거리는 개는 참 충실한 동물입니다. 주인이 아무리 구박을 해도 계속 주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주인이 구박을 하면 발톱을 세우고 할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둘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합니까? 당연히 개를 더 좋아하고, 개가 더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개들 중에도 보면 아주 드물게 주인이나 주인의 어린 자녀들을 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주인에게 상처를 주는 개는 나중에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애완동물을 키웁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예쁘다. 귀엽다. 외로워서 키운다, 도둑을 막기 위해 키운다... 등등.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나 악어나 독사 같은 동물들은 애완동물로 키우지 못합니다. 왜 그럽니까? 주인을 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조그만 뱀을 애완동물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뱀이 자라면서 자꾸 그 집의 갓난아기 옆에서 고개를 쳐들면서 키를 재보는 겁니다. 그 주인이 하도 이상해서 동물들의 습성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전문가가 뱀을 빨리 치워버리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그 뱀이 아기 옆에서 키를 자꾸 재보는 것은 그 갓난아이를 자기가 먹을 수 있나, 자기 몸에 그 아기가 다 들어가나 체크해 보는 것이라는 겁니다. 아이쿠! 무섭지요.
여러분! 성경은 사람들을 종종 짐승으로 비유합니다. 예수님도 유대의 분봉왕 헤롯을 가리켜 '저 여우'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7년 대환난 때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각각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짓 선지자는 양처럼 순하게 생겼지만 용처럼 말을 한다고 합니다. 즉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을 말과 기적으로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 한국에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신천지의 집회 장면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신천지는 종말론을 잘못 풀므로 일어난 이단입니다. 그런데 이 이단 집회에 사람들이 구름떼와 같이 모였습니다. '아멘' 소리가 크게 나오며 대단히 은혜를 받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아니, 저게 어떻게 '아멘인가? 저것은 노멘이고, 저것은 미혹이고, 저것은 사기인데..."
그 집회에서 보니 신천지 이만희 씨를 비롯해 그곳 강사가 이런 말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여기 오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하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왜 오셨습니까? 여기는 말씀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은혜가 넘치는 곳이기 때문에 오신 줄 오신 줄 믿습니다." "아멘!" "아이쿠- 주여!"
그곳 이만희 씨나 강사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서서히 나중에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갑니다. 자기 나름대로 영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되지도 않는 말에 아멘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속을 수가 있는 지, 허- 참! 사단의 유혹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러분! 말세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많은 종말론 이단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부터 종말론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 미혹을 방지하는데 상당히 유익합니다. 어떤 분은 종말론에 대하여 공부하기를 원하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이에 대하여 듣기조차 싫어하는 분이 있습니다. 왜 그럽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수많은 환난이 일어나고, 그 환난을 당하는 대상에 내가 포함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우리를 두렵게 만들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도리어 그러한 환난을 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666의 경우도 보세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 표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에 절대로 이 표를 받지 않습니다. 고로 지옥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이 세상에 다가올 무시무시한 7년 대환난을 피하기 위해 휴거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망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고통에서, 환난에서 나를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고로 삶이 힘든 분들은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고통 중에 있는 분들에게 필요한 이름은 예수(구원자)입니다. 과거나 현재의 상처가 있는 분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므로 그 고통에서, 그 환난과 문제에서 구원받고 치료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4월 달에 우리 교회에서 아버지 학교가 있습니다. 이 아버지 학교에 오신 분들 중에 보면 심히 큰 소리로 통곡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의 아버지는 자녀에게 굉장히 엄격했습니다. 그때의 아버지는 그렇게 엄격한 것이 좋은 아버지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엄격하게 교육을 받으므로 방종하지 않는 자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엄격한 아버지에게 심한 욕을 듣고 매를 맞아서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상처가 내재해 있다가 아버지 학교의 치료 프로그램 속에서 그것이 치료되면서 통곡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에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과거의 상처가 치료가 되지 못한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당연히 얼굴이 어둡고, 풀이 죽거나, 사납거나, 불안합니다.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다가 언젠가 폭발하게 됩니다. 그에 따른 현상으로 우울증, 대인 기피증, 각종 중독에 빠짐, 자살 충동... 등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조승희 학생의 총기 살인 사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외국 땅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습니다. 그 상처가 깊어졌습니다. 제때에 치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터진 것이 그 사건입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가고 예수님과 단 둘이 그 여인과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이 우물가에 아무도 없을 때에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대인기피증에 걸린 여인입니다. 왜 대인 기피증에 걸린 겁니까? 다름 아닌 이 여인의 행적을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5명이나 갈아 치운 여인입니다. 요즘 같아도 이혼을 5번 하면 남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 남자도 아닌 여자가 5번을 이혼했으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그 여인을 놓고 입방아를 찧습니다. 쑥덕쑥덕합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다른 여인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혹 어떤 분은 남편을 5명이나 바꿨으니 참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어 봅시다. 이 여인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여인입니다. 왜 그럽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남편을 5명이나 바꿨을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이유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여인을 성령의 생수로 치료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의 대인기피증이 사라졌습니다. 우울증도 사라졌습니다. 도리어 크게 기뻐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아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바른 신앙생활도 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고로 치료 프로그램인 아버지 학교도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상처를 받으신 분입니다. 이를 가리켜 대속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각종 상처가 있는 분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의지하여 치료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를(남편을, 아내를, 아들을, 딸을) 치료해 주세요."
여러분! 건강한 분은 질병에 쉽게 걸리지 않고 질병을 이깁니다. 반면 몸이 허약하신 분들은 질병에 쉽게 걸립니다. 저의 경우는 감기 두통이 거의 없습니다. 저의 집 사람이 저보고 '건강 체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육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으면 자주 시험이 들고, 자주 실족합니다. 이런 분들은 일단 과거의 상처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치료받느냐고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므로 가능합니다. 같이 한번 따라합시다. "주님, 남편(아내, 그 분을)을 용서합니다." 그런데 용서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어떡합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나 같은 죄인도 주님이 용서해(사랑해) 주었는데 나도 그를 용서(사랑)해야지!"
주님은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만 달란트를 빚졌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빚입니다. 채주가 그 사람이 불쌍해서 모든 빚을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서함을 받은 사람이 길에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밖에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의 멱살을 잡고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채주가 "아- 그 놈, 참 못됐다. 나는 그에게 큰 용서를 주었는데, 그는 남에게 조그만 용서도 베풀지 못하는가?" 하고 한탄을 했습니다. 여러분!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원한을 쉽게 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럽니까? 자기가 남에게 상처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남에게 상처받은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나도 너를 용서했으니 너도 그를 용서하라."
여러분! 권투 선수가 시합을 하다 보면 반드시 맞기도 하고 때리기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 살다보면 부부간에도, 친구 간에도, 교인 간에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권투 시합에서 더 많이 때린 사람이 있고, 더 많이 맞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한 사람이 심하게 맞고, 결정타를 맞아 다운이 되기도 합니다.그러나 시합이 끝나면 서로 부둥켜안습니다. 그런데 시합이 끝났는데도 "너 왜 나 때렸어?" 하고 계속 원한을 품고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죽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전에 한국에서 월드컵 축구시합 때였습니다. 안정한 선수가 이탈리아와 경기서 골든골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안정환 선수는 자신이 속한 이탈리아 축구 클럽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는 국가에 먹칠을 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이 나 때린 것, 남이 나 상처 준 것, 남이 나 비난한 것, 남이 나 못살게 군 것,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결합니까? 용서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용서와 사랑이 쉽지 않기에, 내 힘으로 안 되기에 주님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오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는데 내가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스데반 집사는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십자에 못 박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
결론입니다. 나의 과거의 상처, 현재의 상처는 용서와 사랑으로 치료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므로 치료하셨습니다. 이제 내 차례입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치료되고 그들도 치료됩니다. 그래야 나도 행복하고 그들도 행복합니다. 아무쪼록 짧은 인생, 주님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서로 용서와 사랑으로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