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은인과 함께

날짜: 
2003/10/20
설교: 

제 목 ; 생명의 은인과 함께
본 문 ; 시편 116:12

어떤 깡패 그룹이 한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그 부모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마침내 그 아이를 죽이려하는데 그 깡패들 중 하나가 그 유괴된 아이를 불쌍히 여겨 다른 깡패들 모르게 슬쩍 빼돌려내어 살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깡패들이 이것을 알아채고 이 배신한 깡패를 칼로 찔러 죽이려고 합니다. 동료 깡패들에 의해 옆구리에 칼에 찔린 이 깡패는 가까스로 도망하여 시골 병원에 숨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의 한 젊은 여의사로부터 치료를 받고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여의사 집에 숨어 지내면서 생명을 보존합니다. 이 여의사는 이 깡패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 깡패는 아픈 몸을 부여잡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 여의사를 위해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빨래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챈 다른 깡패들이 이 여의사를 납치해 사창가에 팔아 넘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의사의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돈을 뜯어내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이 여의사로부터 치료를 받고 생명을 건진 이 깡패가 여의사를 구출하려고 깡패의 소굴로 뛰어들려고 합니다.

물론 주위 사람이 그 깡패 소굴로 뛰어드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깡패는 여의사가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은인이므로 자신도 이 여의사를 구출하려고 깡패의 소굴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그러나 여의사를 구출하기는커녕 자신도 깡패들에게 붙들려 두 사람은 같이 생매장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때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 둘은 기적적으로 구출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여의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결혼할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니까 그 여의사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하면서 자기를 구출하려고 한 그 깡패를 가리킵니다.
그 깡패는 얼떨결에 "아니에요. 오히려 이 의사 선생님이 제 생명의 은인인 걸요." 하면서 결국 둘은 결혼에 골인해 오늘도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것이 지난 주 KBS 2 TV 결혼이야기의 스토리입니다.
이 결혼이야기를 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모두 이러한 스토리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예수님은 깡패와 같이 죄짓고 못된 짓 많이 하다가 영원히 심판 받아 지옥에 갈 저와 여러분을 치료시키시고 살려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살려주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인생들은 기껏해야 70-80의 짧은 기간을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심판을 당하는 모습이 허상이나 거짓이 아니라 실상이요 사실일진데, 이러한 심판에서 건져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었으니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 믿는 자들 모두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여의사를 위해 깡패가 자신의 아픈 몸을 부여잡고 각종 집안 허드렛일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여의사를 구출하려고 깡패의 소굴로 자진하여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이 맡기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반찬도 만들고, 잔디도 깎고, 울타리도 다듬고, 앞으로 겨울이 오면 눈도 많이 치우고,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예배에 빠짐없이 나오고,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에 와서 충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물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돈을 많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 어떤 이는 예수님이 내가 병들었을 때에 치료시켜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나를 살리려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버리신 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은인이시기에 우리는 변함 없이 이 외국 땅에서도 예수님을 위해 충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
크리스천이 꼭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되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는 늘 예수님께 감사할 수 있고, 늘 예수님을 위해 충성할 수 있고, 예수님을 위해 오래 인내하며 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은인에 대하여 보답하는 것을 전설이나 혹은 실화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도 아닌 한낱 미물인 짐승도 자신의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하는 것을 보면 많은 감동이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 신라 시대 때 선비 한 사람이 산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는데 별안간 꿩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 그 꿩을 칭칭 동여매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활을 들어 그 구렁이의 머리를 정확히 맞히어 그 꿩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 꿩은 고맙다는 표시를 하면서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꿩을 살려준 그 선비도 길을 행하다가 그만 날이 저물게 되자 어디 머무를 만한 민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멀리 불빛이 보여 찾아갔더니 숲 속에 집 한 채가 있는데 아주 어여쁜 젊은 여인 혼자 있었습니다. 그 선비는 부탁을 하여 방 한 칸을 빌려 잠을 자고 있는데 웬지 갑갑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깨어보니 구렁이가 자기의 몸을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 선비는 "대체 왜 이러느냐 ?" 하고 구렁이에게 물으니까 그 구렁이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는 당신이 낮에 죽인 구렁이의 아내인데 내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당신을 유혹했다." 하기에 그 선비가 제발 살려 살라고 하니까 그 구렁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산중에 빈 절이 하나 있는데 동이 트기 전에 이 종소리를 세 번 울리게 할 수 있는 재주가 있으면 살려주겠다." 하였답니다. 이때 난데없이 어디선가 종소리가 정확히 세 번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구렁이는 "에그,분하다 !" 하면서 사라지고 그 선비는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자 선비가 그 헌 절터의 종각에 가보니 꿩이 머리가 부서진 채 피를 흘리고 죽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려준 그 꿩이 보답을 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원주에 있는 적악산(赤岳山)이 치악산(雉岳山)으로 개명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에이레의 한 유명한 가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원숭이 모양의 아주 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쪽에는 "나는 그가 나를 위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세기 전, 그 집의 가장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어린 독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보호를 위해 하인들에게 "아들을 잘 보호하라."고 아주 엄한 훈령을 내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성에 화재가 발생하게 되자 하인들은 자기들만 살기 위해 어린 아이는 잊어버리고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이제 어린 아이는 타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원숭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원숭이는 불 속에 뛰어들어 어린 아이를 팔에 안고 성벽 위에서부터 벽을 타고 내려와 아이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기일이 지난후 그 집주인이 돌아와서는 이 사실을 알았고 그때로부터 그는 원숭이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밑에 "나는 그가 나를 위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라는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너무나도 귀중한 존재입니다. 만약 그 생명의 은인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고 말았을 텐데... 그 생명의 은인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
그리고 이렇게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너무도 소중하여 "나는 그가 나를 위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고 적어놓고 날마다 감사하며 그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모습으로 지내는 것은 어찌 보면 은혜를 보답할 줄 아는 바른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즉 은혜에 보답하는 삶,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을 위한 삶이 바른 크리스천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죽이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그 생명의 은인에게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바른 삶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만 실수로 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물살이 하도 빨라서 도저히 그 사람을 건지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고, 저 사람 죽네 !" 하고 해변 가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가 지나가면서 "쯧쯧쯧..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군 !" 하고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공자라는 분이 나타나 "아니 이 사람, 미리 주의를 하지 못하고 왜 그리 어리석게 행동을 했는고 ?" 하고 역시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런데 웬 사나이가 그 세찬 강물에 뛰어들더니 그 남자를 구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세찬 강물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 청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시므로 우리를 살리신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그렇게 생명을 구출 받은 사람은 그 생명의 은인을 위해 감사하며 충성하며 사는 것이 바른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
그런데 한국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말처럼 오히려 은혜를 악으로 갚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위해 악형을 당하고 각종 고난을 감수하는 것일까요 ?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나는 그 분을 위해 70-80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 하는 마음으로 순교까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리고 그 생명의 은인에게 충성도 하고, 봉사도 하며, 헌금도 바치고, 평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 그리고 장차 그 생명의 은인인 예수님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가 꿈꾸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여러분, 이 외국 땅에 살면서 우리에게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구해주신 생명의 은인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은인의 뜻을 받들어 사는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장차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함께 사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성취되기까지 오늘도 우리는 생명의 은인을 위하여 날마다 수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