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으라

날짜: 
2012/04/15
설교: 

요20:19-22 성령을 받으라.
제가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에 미아리 교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연세 드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점쟁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점쟁이들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철학관이라는 간판을 내건 집입니다. 그 분들은 사주팔자나 관상 같은 지식을 학문적으로 배워서 운세나 운명을 봐줍니다.
그리고 점쟁이의 또 한 부류는 학문적으로 배워서 점을 치지 않습니다. 오직 점치는 귀신의 힘으로 점을 쳐줍니다. 대개 철학관의 점쟁이는 고학력을 갖춘 분들이 많고 말투도 상당히 점잖습니다. 그러나 점치는 귀신에 들린 점쟁이들은 낮은 학력의 소유자가 많고, 말투도 대개 거칠고, 눈도 부리부리하여 눈빛에서 귀신의 영력이 나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예사인물이 아닌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관 점쟁이들은 점치러 오는 손님들의 과거나 현재의 상태를 잘 맞추지 못합니다. 단지 손님들이 자신들의 사정을 알려주면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러나 점치는 귀신이 들린 점쟁이들은 손님들의 과거도 맞추고 현재도 족집게처럼 잘 맞춥니다. 그리고 미래도 제법 맞춥니다. 여러분, 철학관 점쟁이와 귀신들린 점쟁이 중에 누가 진짜 점쟁이일까요? 귀신들린 점쟁이가 진짜 점쟁이입니다.
기독교인들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성경을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그 배운 지식을 삶에 적용하며 사는 분들입니다. 반면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실제 하나님의 신, 또 다른 말로 예수의 신, 혹은 성신 또는 성령)이 임하여 성령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진짜 기독교인들일까요? 이에 대하여 성경 로마서 8:9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이 세상에는 사람의 힘과 사람의 지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고 신의 능력으로만이 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옛날 한국 무당의 경우에 작두춤을 추는 무당이 있습니다. 시퍼런 칼날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는데 전혀 그 발이 칼날에 베이지 않습니다. 마치 칼날 위를 나비처럼 날듯이 사뿐사뿐 춤을 춥니다. 그런 힘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신의 세계에서 가능합니다.
그렇게 작두춤을 추는 무당은 일류무당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 무당이 작두춤을 추다가 그만 귀신이 떠나거나 부정이 타서 귀신의 힘이 빠져나가면 작두날에 발이 베여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 그 자리에 예수의 신이 강하게 임한 기독교인이 있어 그 무당 귀신의 집중력을 떨어트릴 때에도 무당은 작두춤을 추지 못하게 됩니다. 즉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신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삼손이라는 장사가 나옵니다.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칼과 창으로 무장한 블레셋 군인들을 나귀 턱뼈 하나로 1000명을 물리쳤습니다. 그의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습니까?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신에서 그 힘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고, 하나님의 신이 떠나자 그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숙4:6)
여러분, 요즘은 말세중의 말세라고 합니다. 이때가 되면 귀신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최후의 발악을 할 때입니다. 아시다시피 귀신은 우리의 삶을 파괴시킵니다. 불행으로 빠트리려고 합니다. 귀신이 사랑하는 가족 중에 들어가서 가족을 힘들게 하고 교인들 중에 들어가서 교회를 힘들게 하고, 귀신이 세상 사람들에 들어가 사회를 힘들게 합니다. 이때 이러한 귀신의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신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 이런 말씀이 연결됩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
이 상황을 좀더 리얼하게 제가 예수님처럼 재현을 해보겠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휴---- 성령을 받으라.”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 두 말씀 사이에 한숨을 크게 쉬셨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 왜 성령을 받으라고 했을까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부모님이 자기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늘 말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공부하는 재능이 없는 겁니다. 부모 보기에 공부는 하라고 하지만 휴---- 한숨이 나옵니다. 안타깝잖아요. 너무 딱해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을 했지만 제자들이 그냥 가면 안되요. 너무 힘이 달려요. 안타까워요. 그래서 휴---- 한숨을 내쉰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냥 한숨만 쉬시고 만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즉 지금 제자들이 연약하지만, 그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가면 또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성령을 받고 가면 능히 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겁니다. 여러분, 무당이 자기 힘으로 작두춤을 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당 신이 세게 임하면 가능합니다.
마찬가지에요.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믿고 사명을 감당할 때에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요. 그 결과는 보나마나 휴--- 한숨만 나와요. 안타까워요. 쓰러져요. 그러나 성령(성신)이 세게 임하면 가능해요. 전도의 경우도 그래요. 아무리 전도하라고 해도 잘 안되요. 그때뿐이에요.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안되는 것이 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여러분, 부활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휴--- 성령을 받으라.”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휴--- 성령을 받으라.” 자녀 학생 여러분, 부모님이 만날 공부 잘하라고 하면 짜증이 나지요. 생각해 보세요. 학생 중에 공부 못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공부가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겁니까? 공부의 재능, 공부의 신이 임해야 되잖아요.
예수님도 제자들을 3년 동안 제자 훈련 시켰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잡히고 어려움에 처하니까 아- 요것들이 다 도망가는 겁니다. 제자는 무슨 얼어 죽을 제자에요. 그리고 베드로 너- 니가 무슨 수제자야? 예수님과 같이 죽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실제 예수님이 잡히실 때 너 예수님 보고 뭐라고 했어? “I don't know Jesus." 예수님 모른다고 했잖아? 그것도 예수님 저주했잖아? 그래 안 그래?(괜히 내가 열 받네!)
여러분, 이게 성령이 임하지 않는 제자 훈련, 성령이 임하지 않는 성경 공부의 결과입니다. 보통 때는 다들 좋아 보여요. 뭐가 된 줄 알아요. 그러나 진짜 어려울 때가 되면 인간의 지식은 별 힘이 안되요. 즉 성경공부, 제자 훈련, 각종 세미나를 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식입니다.
몇 년 전에 천국 가신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 강사로 오신 적이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아시다시피 제자훈련의 대가입니다. 그때 옥한흠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님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그 동안 수십 년간 제자훈련을 가지고 성도님들을 훈련시켜 보았지만 결론은 성령이 임해야 그들이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옥한흠 목사님은 한 동안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성도님들이 신앙의 열심은 있지만 제대로 열매를 못 맺는다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사님이 수십 년간 제자훈련을 강조하며 성도님들을 훈련시켜 본 결과 그들이 신앙의 아는 지식은 많아지고, 신앙의 바른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분별은 하지만, 그것들을 실천하고 변화되는 삶은 미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서도 성령이 임한 성도님들은 그렇게 많은 성경지식은 없었고, 믿은 지 오래 되지도 않았고, 제자 훈련 과정을 많이 받지 않았어도, 그들의 삶이 실제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제대로 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아니라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한 채 자꾸 인간의 노력만 앞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인간의 노력과 지식으로 철학관 점쟁이는 될 수 있어도 진짜 점쟁이는 못됩니다. 진짜 점쟁이는 점치는 귀신이 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에요. 바른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성신이 임하고, 성신의 인도를 받아, 성신의 힘으로 봉사하고, 성신의 힘으로 기도하고, 성신의 힘으로 전도하고, 성신의 힘으로 바르게 사는 겁니다.
여러분, 깡패에게 아무리 착하게 살라고 하면 뭐해요. 착하게 살 힘이 없는데.... 그리고 공부의 재능이 없는 학생에게 아무리 공부하라고 하면 뭐해요. 공부의 신이 임하지 않았는데... 휴--- 한 숨만 나오잖아요. 여러분, 이런 표현 알지요. 안꼬 없는 찐빵, 불 꺼진 항고, 김빠진 맥주.... 기타 등등... 즉 성령 없는 신자, 안꼬 없는 찐빵이에요. 날개 부러진 독수리에요. 안타까워요. 휴--- 한숨이 나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한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성령 어떻게 받느냐고요? 부활의 예수님 말씀을 따라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8-39)
즉 회개기도 열심히 하면 성령이 임한다는 겁니다. 글자 그대로 성령은 거룩한 영, 깨끗한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그릇이 더러우면 어찌 그 안에 귀한 것을 담아줄 수가 있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을 “주님, 제가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회개로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면 성령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 캐나다 캘거리에서 15년 간 이민 목회를 하면서 이상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왜 성령이 임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 해답을 스스로 내려 보세요. 여러분,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무당 귀신이나 점치는 귀신의 임하기 위해 목욕재개 하고 정성을 쏟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신 내리는 굿을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신이 임하면 그 신이 떠나지 않기 위해 그 신에게 절대 순종을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부탁하신 것이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12명의 제자를 포함해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무슨 기도에요?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삼손에게 임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신을 말세에는 남종과 여종들에게조차 부어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장점은 금요철야예배입니다. 주일에는 제가 이렇게 성령을 받으라고 설교는 하지만 성령을 받기 위해 전혀 기도에 힘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금요일 철야예배 때에는 기도에 힘쓸 수 있습니다. 같이 부르짖어 세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세에 왜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합니까? 말세에는 귀신의 역사가 하도 세서 성령의 힘이 없으면 그들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귀신이 나와 나의 가족들을 파괴하려고 할 때에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울고 불며 매달려도 안됩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신이요, 예수님의 신인 성령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고로 말세에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성령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도록 간구하십시오. 그렇게 세게 기도할 수 있는 철야예배에 반드시 나오십시오. 혹 어떤 분은 성령 받으면 광신자처럼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기를 꺼려합니다. 철야예배 나오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성령이 없으면 예수님은 휴--- 한숨짓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대로는 바른 크리스천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나침반이 없이 조그만 돛단배 하나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휴--- 딱합니다. 여러분, 저는 고등학교 때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왔다리 갔다리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를 제대한 후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후 목사가 되었습니다.
점쟁이로 치면 저는 철학관 점쟁이가 아닙니다. 신이 임한 점쟁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저를 빙자해 말씀합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목사가 된지 이제 25년이나 되었습니다. 65세가 되면 은퇴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65세로 은퇴하기에는 너무 인생이 안타깝습니다. 좀 더 쓰임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나 지식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성령을 받은 각자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뭔가 큰일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말씀을 맺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