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小貪大失)

날짜: 
2004/02/09
설교: 

제 목 ; 소탐대실(小貪大失)
본 문 ; 야고보서 1:15

옛날 중국의 전국시대에 촉나라는 넓은 평야에 농사가 잘되어 곳곳에 창고가 많았고,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촉나라 국왕은 욕심이 많아 금은보화와 각종 재물을 거두어 들이고 아름다운 미인들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으나 만족함이 없는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그때 이웃한 진나라의 혜왕은 촉나라의 부유함을 보고 일찍부터 그 나라를 빼앗으려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촉나라를 공격하기에는 국경이 너무 험난해서 쉽게 군대를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나라 혜왕은 한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촉나라 국왕의 탐욕스러운 성격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나라 혜왕은 조각하는 사람에게 대리석으로 큰 황소를 한 마리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의 등에는 붉은 비단으로 덮고 붉은 꽃송이로 장식을 해서 힘센 장정들을 뽑아 촉나라로 가는 큰길로 밀고 가게 했습니다.

진나라 왕은 또 다른 사람을 시켜 그 대리석 소를 따라가면서 길가에 주먹 크기만큼의 황금을 곳곳에 떨어뜨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가 황금 똥을 누었다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사신을 보내어 촉나라 국왕에게 두 나라가 서로 우호조약을 맺고 험난한 국경에 대로를 뚫는다면 그 대로를 따라 황금 똥을 누는 소를 촉나라 국왕에게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촉나라 국왕은 정말로 황금 똥을 누는 소가 있는 줄 알고 힘센 백성들을 불러 모아서 산을 뚫고 계곡을 메워 황금 똥을 누는 소가 지나갈 수 있는 큰길을 개통시켰습니다.
드디어 개통식이 벌어지고 황금 똥을 누는 소가 수많은 진나라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촉나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탐욕스런 촉나라 왕은 황금 똥을 누는 소를 맞이하고자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몸소 마중 나갔습니다.
그러나 진나라 군사는 갑자기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들고 촉나라 신하들과 왕을 모두 포로로 잡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대로를 따라 촉나라를 공격하여 촉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즉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를 잡는 방법입니다. 먼저 단단히 매여 있는 둥근 통에 원숭이의 작은 손이 들어가 먹이를 하나 간신히 꺼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뚫습니다. 그리고 그 통 안에는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많이 넣어 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둥근 통 가까이 와서 먹이 냄새를 맡고 구멍 안에 가득 들어있는 맛있는 먹이를 보고는 그 통 주변을 한없이 뺑뺑 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손을 그 구멍으로 넣어서 적은 부스러기 먹이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어 보고는 그만 환장을 합니다. 그리고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손을 더욱 깊숙이 넣어 자기 손을 가지고 잡을 수 있는 만큼 먹이를 잡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손을 빼려니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자기 손이 왜 통에서 빠지지 않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손을 먹이통에 넣은 채 뱅글뱅글 돕니다. 덫을 놓았던 사람이 이것을 보고 걸렸다 생각하고 좇아오면 원숭이는 도망을 쳐야겠는데 손이 걸려서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이 원숭이는 그냥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원숭이가 도망칠 수 있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손에 잡고 있는 먹이를 포기하면 쉽게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숭이는 욕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손을 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뺑뺑 돌다가 눈이 말똥말똥한 채로 잡히고 만다고 합니다. 욕심을 좇다가 생기는 결과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이런 원숭이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적은 것을 움켜쥐다가, 그리고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뺑뺑 돌다가 그만 마귀에게 붙잡혀 영혼을 도적질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마귀가 던져 놓은 미끼를 물어서 그만 육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통째로 빼앗기는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은 소탐대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탐전실(小貪全失)의 상황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미혹과 술수의 천재입니다. 마귀는 우리 크리스천들의 생명과 축복을 빼앗기 위해서 마치 낚시꾼이 고기를 잡기 위해 미끼를 쓰는 것처럼 각 사람에 맞게 그럴듯한 미끼를 던집니다. 돈에 약하거나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미끼로 삼기도 하고, 이성에 약하면 이성으로, 그리고 명예에 약하면 명예로 미끼를 삼기도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조차 그럴듯한 미끼를 주어 예수님을 쓰러트리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8-9절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미끼를 던져 유혹을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다 갖고 싶어하는 이 모든 것을 미끼로 던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욕심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경배하면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자격이 상실되고 권세가 무너져서 마귀의 졸병으로 전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예수님에게 준다고 하는 모든 것도 예수님이 죽는 날 모두 다시 빼앗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으시고 "사단아 물러가라" 하고 단호히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적은 것을 탐하다가 그만 큰 것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들릴라라는 기생에 정신이 팔려 그만 두 눈이 뽑히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 그리고 가룟 유다도 은 30냥과 명예에 눈이 멀어 그만 예수님을 배신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비극이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
여러분, 도대체 돈은 무엇이고, 이성은 무엇이고, 명예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을 얻으면 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시기에, 하나님이 원치 않는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만큼을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면 그것은 죄가 되고 결국은 사망을 낳게 되고 맙니다.
고로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고 이 외국 땅에 살면서 어느 때에, 무엇이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잘 아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룰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나아가다가 그만 소탐대실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한 사람의 적은 욕심이 도리어 큰 것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특히 믿는 사람들 중에도 조그만 돈을 벌기 위해서 신앙을 포기하고 나아가다가 그만 자신의 건강을 잃게 되고, 혹은 가족을 돌아보지 않아 남편이나 아내와 이혼하게 되고, 자녀들이 신앙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 즉 돈을 좇아가다가 건강이나 명예를 잃으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지도자들 중에는 훌륭하신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만 돈에 욕심을 부리다가 명예를 잃어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평생 사는데 수백 억이나 수천의 돈이 필요하지 않은데 그러한 돈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움키려고 하다가 그만 발각이 되어 평생 쌓아놓은 명예와 물질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가 한 농부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네가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온 땅을 내가 네게 주겠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서 돌아오면 이 약속은 무효다."
이 약속을 들은 농부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자기의 땅을 한 평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뛰기도 했습니다. 조반도 안먹고 점심때도 넘기며, 쉴 생각도 잊고, 피곤도 무릅쓰고, 오직 뛰는 데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가기 위해 아쉽지만 반환점을 돌아, 다시 기를 쓰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멀리 간지라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입에서 단김이 올라오고, 앞이 가물가물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가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서산에 넘어가는 순간 이 농부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와 약속한 부자의 집앞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집 앞에 이르자 너무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부자가 문에 나와 그 농부를 일으켜 보았더니 그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하인을 시켜서 그 농부의 키를 재게 하더니 그 키만큼의 땅을 파고 그 속에다 묻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경우는 소탐대실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욕심에 이끌리면 소탐대실 합니다.
안식일 즉 주일을 지키지 않고 세상일을 하면 소탐대실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예배드리지 않고, 주의 일 할 때에 다른 일하면 소탐대실합니다.
십일조 띠어먹으면 소탐대실합니다.

반면에 먼저 기도하고, 먼저 예배드리고,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손해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 이 모든 것을 더하여 받는 축복이 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항은 이곳 캐나다 땅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소탐대실의 인생을 살겠습니까 ? 아니면 적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겠습니까 ? 부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소탐대실의 인생은 버리고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가운데 더욱 큰 축복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