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드려, 물질 드려 !

날짜: 
2004/07/05
설교: 

사58:13-14 시간 드려, 물질 드려 !
여러분, 혹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까 ? 저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당시 왠지 하나님을 믿으면 자유를 빼앗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세상 쾌락을 즐기는데 있어서 하나님이란 존재는 나에게 늘 "하지 마라 ! 하지 마라 !"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귀찮은 존재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상을 따라가자니 하나님이 마음에 걸리고, 하나님을 따라가자니 세상이 계속해서 손짓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러한 갈등이 있었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속에서 오늘날 세상 편에 서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섰다면 당신은 참으로 성공한 사람이요, 승리한 사람이요, 축복 받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말세라고 하는 요즘은 성경에서 미리 예언했듯이 자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해지는 시대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믿어도 내 생각, 내 방식, 내 경험, 내 지식, 내 기분, 내 유익을 따라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누가복음, 마가복음이 아니라 내가복음을 만들어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어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또 다른 우상숭배요, 또 다른 이단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끝은 결코 생명이 아니요, 축복이 아니요, 행복이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아무리 말세가 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바른 방법을 좇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을 가장 잘하는 비결이요, 궁극적인 성공과 축복의 비결인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른 신앙의 모습이 무엇일까요
1.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른 엉뚱한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또한 피아노나 바이올린이나 드럼이나 음악을 잘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수영이나 배구나 농구나 배드민턴이나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곳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시간을 내어서 예배에 참석하고,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고,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보고, 시간을 내어서 찬송하고, 시간을 내어서 봉사하는 것은 신앙이 자라나는 척도가 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한국에서보다 이곳 캐나다에서 더 많아졌다면 당신의 외국 생활은 성공의 길로, 축복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한국에서보다 더 적어졌다면 일단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그리고 지난날보다 현재나 미래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면 스스로 빨간 등을 켜고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 주일이라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반 달력에도 보면 주일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즉 이날은 예수님이 피 흘리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요, 경고의 표시입니다. 즉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면 사고가 나는 것처럼 이날을 무시하면 인생의 사고가 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사업을 해도, 직장을 선택해도, 무엇을 해도 주일이라는 시간을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경험적으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고 딴 일을 하면 항상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에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싶고, 그러한 진리가 꼭 100% 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이러한 진리에 동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일을 지키는 사상은 인간의 개인적인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 안식일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법칙이지 않습니까 ? 그리고 그러한 법칙은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이지 않습니까 ?
예를 들면 자동차를 운행하면서 엔진오일을 매 5000km마다 갈아주라고 하는 법칙은 자동차 주인을 귀찮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비공장을 돈 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의 수명을 높이고 보다 나은 자동차의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려는 하는 법칙이지 않습니까 ? 여러분 중에 혹시 자동차를 몰면서 돈이 들어간다고, 시간을 낭비하기 귀찮다고, 엔진오일을 안 갈아주는 바보는 없지 않습니까 ?
마찬가지로 주일을 지키라는 법칙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놓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무시하면 당장은 시간을 버는 것 같고, 당장은 몸이 덜 피곤한 것 같고, 당장은 돈도 더 잘 버는 것 같고, 당장은 유익을 얻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 더 큰 손해가 나고 맙니다. 언젠가 더 큰마음의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고로 주일이라는 시간만큼은 평생에 하나님께 드리며, 주일을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며 지내는 날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다시 말해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고 헌신하는 주일을 귀찮은 날, 부담이 되는 날, 피곤한 날로 여기지 않고, 행복한 날, 즐거운 날, 귀한 날로 여긴다면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을 주시고 친히 길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일을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과 데이트를 하는 가장 즐거운 날로 지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평생의 낙으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교를 하면 혹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마음이 중요하지 물질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생각은 그 자체가 모순이 되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내에게 물질을 공급해주지 않아 결국 아내를 굶어죽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사기이지 않습니까 ?
여기 캐나다에 보면 애완동물을 많이 키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수퍼스토아나 세이프웨이 혹은 다른 식품매장에 가보면 애완동물 코너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가끔 그곳에 적혀있는 가격표를 보고 저는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렇게 비싼 것을 개에게 사준단 말이야 !"
저는 그렇게 비싼 것을 개에게 사준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싼 것을 아무렇지 않게 사들고 가는 캐나다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 그들은 개를 굉장히 사랑하고 저는 개를 덜 사랑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
여러분, 저는 개보다 사람을 더 사랑합니다. 특히 우리 북한 동포의 어린이들 중에는 여기의 개보다 훨씬 못 먹고 못 입는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 고로 저는 솔직히 말해 개에게 들어가는 돈을 쓰느니 차라리 우리 북한 동포 어린이들 우유를 먹이고 있는 김광수 선교사에게 선교비를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면 물질도 거기에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개를 사랑하면 개에게 물질이 따라가고, 세상 쾌락을 사랑하면 거기에 물질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처럼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면 물질 세계는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 중에 아무라도 손에 일 센트라도 손에 쥐고 태어난 분이 없습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학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요구할 때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가진 것을 뺏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이 주려하고, 그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세상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뜻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한인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나무를 베어 주고 돈을 받는 벌목공이었습니다. 하루는 부인이 "여보, 예수를 믿으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하네요 !" 라고 말하자 "십일조 안 내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 우리도 낼 필요 없어 !"라고 말하곤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교회에 다니는 친한 친구가 와서 "이 집은 돈도 많이 벌면서 왜 십일조를 안내나 ?" 하고 물으면 "이 사람아, 내고 싶은 사람만 내면 돼. 나는 안 내도 상관이 없어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벌목하는 일로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주로 교회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주변에 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나무를 베어 주고는 청구서를 내어 꼬박 꼬박 돈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영주권이 없어 돈을 은행에 넣지 못하고 처음에는 서랍에다 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들이 잠시 외출하고 돌아온 사이에 도둑이 들어와서는 서랍에 있는 돈을 죄다 가져 가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뼈빠지게 번 돈을 다 털린 부부는 더 꾀를 내어 이제는 부엌에 있는 접시 틈에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둑이 또 들어와 그것마저도 용케 찾아내어 다 가져 갔습니다. 어떤 때는 헌 양말에다 넣어 보고, 봉투에 넣어서 서랍 밑에다 스카치 테이프로 딱 붙여 놓았는데도 귀신같이 찾아서 다 가져 가는 것입니다. 생각다 못해 나중에는 쓰레기통에 넣어 놓으면 설마 못 가져갈 것이라는 생각에 쓰레기통을 하나 사서 밑에 신문지를 깐 다음, 그 위에 돈을 넣고 다시 그 위에 쓰레기 봉투를 씌우고 쓰레기를 담아 놓았습니다.
귀신같은 도둑들도 이것만은 찾아내지 못해서 그럭저럭 모은 돈이 2만 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정도면 그들의 소원이었던 풀 깎는 대리점을 하나 구할 수가 있는 액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멀리 출장을 나가 집에 못 들어오는 날이었습니다. 부인이 애를 재운 뒤에 혼자 집에 있자니 적적해서 좋아하는 연속극을 밤늦게까지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이 되어 쓰레기차가 왔습니다. 늦게 잠이 들어 피곤한 부인은 때맞추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차가 막 떠나려고 하는 순간 허겁지겁 일어나 쓰레기통을 비우고 들어 왔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부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뿔싸, 엉겁결에 그만 2만 불이 들어있는 쓰레기통을 내다 버리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곧 바로 쓰레기차를 정신 없이 부르며 쫓아갔지만 이미 소용이 없었습니다. 죽어라 모은 돈을 한순간에 다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것을 도둑질해 모은 돈을 도둑한테 매번 털리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또 하나님 것 도둑질해서 모은 돈 2만 불은 쓰레기차에 갖다 버렸습니다. 참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는 하지만 얼마나 미련한 일입니까 ?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외국 땅에서 돈이 없어 고통을 당하는 것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돈에 관한 한 하나님의 법칙을 끼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내는 물질은 오히려 더 큰 축복이지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면 당장은 없어지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을 확실히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여러분, 저는 목사의 입장에서 말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체험한 여러분과 똑같은 성도의 입장에서 십일조의 축복만큼은 너무나도 절실히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국 땅에서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이국 땅에서 아무리 물질이 필요해도 그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분명 사랑하는 자들을 챙기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과 행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행복을 이국 땅에서도 더욱 많이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