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까지 채우니

날짜: 
2020/02/24
말씀: 
요2:1-11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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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리아의 친척 중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식 같은 큰 행사를 치르게 되면 보통 육 일간을 치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칠 일째 되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보통 큰 잔치를 치르기 위해서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했기에 먼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방 일을 도와주기 위해 결혼식장에 미리 도착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피로연이 베풀어지는 사흘째 되던 날에 제자들과 함께 초대되어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결혼을 축하합니다.” “어서 오세요. 시장하시지요? 이리 오셔서 음식 좀 드세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자리를 잡고 음식을 들고 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얼굴에 수심과 당황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다가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이구, 이거 어쩌면 좋으냐? 지금 이 큰 잔치를 베풀어 놓고 사람들은 계속 오는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구나!”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지역은 물이 귀한 곳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는 음료수처럼 쓰이기도 하고 더구나 잔치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입니다. 더구나 아직까지 계속 잔치를 치러야 되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고 “어머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말씀하시며 자신이 나서서 일하실 때가 오기를 조금 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는 남편인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나므로 아무래도 가정의 모든 일을 장남 되시는 예수님과 의논을 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예수님이 지혜롭게 일을 처리한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그 집의 하인들을 불러 당부를 합니다. “애들아, 너희들 저기 예수님이 혹시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 그리고 다시 일을 돕기 위해 주방에 가니까 주방에서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첫 출발인 결혼식에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그만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낭패도 보통 낭패가 아닙니다. 요즘 같으면 전화 한 통화로 주문만 하면 모든 음식이 다 갖추어지지만 그 당시에는 떨어진 포도주를 어디서 구하기가 막막했습니다. 그리고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먼 거리를 여행 온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이 큰 잔치를 치르기 위해 미리부터 계산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인생이 어디 수학 공식처럼 풀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큰 낭패와 실패를 앞두고 신랑신부 집 사람들은 마음이 타서 하나님께 더욱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그때 예수님이 음식을 다 드시고 집안을 둘러보시더니 저쪽 문 옆에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물 항아리는 멀리서 온 손님들이 음식을 들기 전 손과 발을 씻는데 쓰이는 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 집 하인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아니 바쁘고 할 일도 많은데 왜 귀찮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손님으로 왔으면 음식만 먹고 갈 일이지!” 하인들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너희들 예수님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기에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하여 물을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한술 더 떠 “이제는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지금 연회장이 포도주를 가지고 오라는데 맹물을 떠다 받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거 그대로 했다가 뼘을 맞을는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리아가 “예수님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기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인들은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벼락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연회장이 “어따, 이 포도주 참 맛이 좋다!” 하고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하인들이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우리가 맹물을 떠다 드렸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그 물을 자세히 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맹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이 포도주를 맛보더니 “햐, 내 평생에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신랑신부를 비롯해 잔치를 준비한 사람들을 크게 칭찬을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기쁨이 충만해졌다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하마터면 인생의 첫 출발부터 창피와 낭패를 당할 뻔했었는데 도리어 칭찬을 듣고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해진 것은 다름 아닌 맹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의 기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다급한 문제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슬픔은 여전히 슬픔이요, 불행은 여전히 불행으로 끝나고 말았을 텐데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탄식이 변하여 기쁨의 노래로, 답답함이 변하여 통쾌하도록 시원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이 문제를 풀어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예수님의 솜씨가 나타나 큰 기쁨과 행복의 노래가 마음껏 울려나오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적을 체험하고 이 기적이 일어나는 비밀을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요2:9)
여러분, 하늘의 비밀, 하늘의 기적을 누가 체험하고 누가 알 수 있는가 하면 바로 하인들처럼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순종하는 사람들, 즉 요령 피우지 않고 충성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알 수 있습니다. 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물을 채우라는 말씀은 잘 이해가 안 되고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물을 채우는 시늉만 하든지, 혹은 적당히 반쯤 정도 채우고 말수도 있었을 텐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인들은 오히려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충성스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하인들의 순종과 충성이 없었다면 맹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로 슬픔은 여전히 슬픔이요, 문제는 여전히 문제요, 답답함은 여전히 답답함이 되도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적의 한 가운데에는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너무도 헌신적인 하인들이 있었기에 슬픔은 기쁨으로, 불행은 행복으로, 저주는 축복으로 바꾸어 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요령 피우지 않고 아구까지 채우는, 즉 온전하게 순종하고, 온전하게 충성하고, 온전하게 봉사하며, 온전하게 기도하며, 온전하게 인내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보다 훨씬 강대국인 아람나라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를 큰 위기에서 구출한 위대한 장군이요, 왕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도 나아만 장군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너무나도 큰 문제, 너무나도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옷을 벗겨보면 온 몸에 저주받은 문둥병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용감한 장군으로서 왕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들어도, 그리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을지라도 자신의 몸에 문둥병이 들었으니 남몰래 탄식을 해야 하고 고통의 나날들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한 작은 여종이 주모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엘리사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이리다.”(왕하5:3)
이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은 왕에게 나아가 요청을 합니다. “왕이여, 이스라엘 땅에 가면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 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데 저를 그곳에 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말함.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은 왕의 편지와 함께 수많은 은금패물을 준비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람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이러합니다.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왕하5:6)
이 편지를 읽은 이스라엘 왕은 옷을 찢으며 크게 근심하여 신하에게 말을 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데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왕하5:7)
왕이 옷을 찢었다 함을 엘리사 선지자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합니다. “왕이여,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왕하5:8)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과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문에 이르자 엘리사가 하인을 보내 말을 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리하면 네 살이 깨끗하리라.”(왕하5:10)
엘리사의 하인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대국의 군대 장관이 왕의 편지를 갖고 많은 예물을 가지고 멀리서 찾아왔는데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얼굴도 내밀지 않고 하인을 시켜 더러운 문둥병에 걸렸으니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목욕이나 하라고 하니 큰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놈, 두고 보자.” 하고 돌아가는데 같이 수행한 나아만의 종이 말을 합니다. “장군님,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이보다 큰일을 행하라 하였어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니이까?”(왕하5:13)
그 말을 들은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나아가 몸을 담그게 됩니다. 한 번, 두 번... 여섯 번까지 요단강에 몸을 담가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포기하지 않고 일곱 번째 몸을 담그니 문둥병이 간곳 없이 사라지고 그 살이 어린 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만약 나아만이 일곱 번째 까지 요단강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나아만은 여전히 문둥병을 끼고 슬픔의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 번 까지 채우는 온전한 순종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고 그의 슬픔이 기쁨으로, 질병이 건강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아구까지 물을 채우니 맹물이 포도주가 되었고, 일곱 번까지 요단강에 들어가니 문둥병이 사라진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온전히 그 수와 양과 질이 채워질 때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나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분량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분량, 봉사의 분량, 사랑의 분량, 인내의 분량, 예배의 분량, 겸손의 분량이 온전히 채워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육일 동안 하루 한 번씩 돌고 칠일 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힘이 들어도 일곱 번을 도니까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처럼 조금 힘이 들어도 우리는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온전히 헌신하고, 온전히 충성해야 합니다.
성경은 적당히 했더니 하나님의 응답과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전히 순종하고, 온전히 충성하고,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인내하고, 온전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응답과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본문도 아구까지 물을 채우니 맹물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증거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수업일수를 채워야 하듯이, 적금을 타기 위해서는 약속한 금액을 온전히 부어야하듯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의 분량, 사랑의 분량, 인내의 분량을 온전히 채워야 합니다. 요즘 저는 하나님이 시켜서 밤에 성전에 와서 아침까지 철야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1일간을 마치고 또 다시 연장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소원이 성취되고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하려고 합니다.
물론 목사로서 이전에도 날마다 기도를 했지만 그 기도의 분량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도의 분량을 온전히 채우게 하므로 문제도 해결시켜주고, 기적도 일으켜 주는 계획인 줄 알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이 채우라고 하는 분량이 있을 것입니다.
외국 땅에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기도까지 하려니 상당히 힘이 들어도,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그 분량을 채우십시오. 적당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아구까지 채우십시오. 부족하게 채우지 말고 기왕이면 충만하게 채우십시오. 그 충만한 수와 양과 질이 차면 하나님의 응답과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슬픔과 답답함은 사라지고 우리는 기쁨과 상쾌함 속에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