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이 있으나(동영상)

날짜: 
2013/06/02
말씀: 
롬15:1
말씀구절: 

(롬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설교: 

롬15:1 약점이 있으나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점, 살기 좋은 나라와 살기 힘든 나라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그저 국민 일인당 소득이 높고, 자동차나 컴퓨터 같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력이 뛰어나면 그것이 선진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에서 살다 보니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곳 캐나다는 아시다시피 자동차 만들지 못합니다. 컴퓨터도 못 만듭니다. 그렇다고 배나 비행기를 만드느냐? 어림도 없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기술은 한국 사람들이 훨씬 뛰어납니다.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습니다. 여기 캐나다에서도 가전제품이나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것들은 한국 제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값도 비쌉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려고 합니다. 왜 그럽니까? 한 마디로 여기 캐나다가 한국보다 살기가 좋다는 겁니다. 물론 사람마다 시각의 차이가 다릅니다. 여기 캐나다에 오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은 돈이 많으면 살기가 좋은 동네다." 이 말은 역으로 "한국은 돈이 없으면 살기가 힘든 곳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돈이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는 곳이 캐나다입니다. 아픈 사람도 살 수 있는 곳이 캐나다입니다. 노인이 되어도 살 수 있는 곳이 캐나다입니다. 장애자도 살 수 있는 곳이 캐나다입니다. 실업자도 살 수 있는 곳이 캐나다입니다. 이 말은 약한 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순복음 목사님들 총회가 있어서 가보았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여기 캐나다는 모든 사람에게 의료보험이 모두 공짜다."라고 말을 하니까 잘 안 믿습니다. 미국에는 의료보험을 개인적으로 들어야합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진짜 아픈 사람은 의료보험 회사에서 잘 안 받아줍니다. 그래서 미국 목사님들이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캐나다로 이민가야 되겠네!" 물론 여기 캐나다도 단점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 비해 여기 캐나다 사람들이 약자를 위한 배려심이 더 깊습니다. 그래서 살기가 좋은 동네가 되고, 그래서 선진국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공동체, 좋은 사회, 좋은 가정,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반면 나쁜 사회, 나쁜 나라, 나쁜 가정, 나쁜 교회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이용하고 노립니다. 다시 말해 서로 약점을 보완하면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고, 약점 보완이 아닌 약점 이용을 하면 나쁜 관계가 형성이 되고 맙니다.

특히 사람들이 가까이 오래 지내다 보면 서로의 약점을 보게 됩니다. 부부의 경우도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같이 살다 보니 상대방에게 소소한 약점뿐만 아니라 이주 큰 약점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때는 아주 치명적이고 매우 중대한 약점이 있는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그 약점으로 인해 서로 실망하며 파멸로 가는 분들도 있고, 그 약점을 서로 감싸주고 담당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온전한 사람일지라도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약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이 있을 겁니다. 학벌, 경력, 외모, 나이, 외국어 실력, 건강상태, 말솜씨, 비만, 흡연, 낮은 지식, 사투리, 가정불화, 많은 부채, 도산, 실직, 주벽, 느슨한 성격, 괴팍한 성격, 수치, 낭비벽, 거절 못하는 것 그리고 장애인의 노출된 표면적인 약점... 등 수많은 종류의 약점들이 있습니다.

약점은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더운 나라, 추운 나라, 비가 잘 오지 않는 나라, 지진이 많은 나라 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네덜란드는 전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제방을 쌓고 간척지를 만들어 땅을 넓히기 위해 지난 50년 동안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제방을 쌓았으며 덕분에 세계 최고의 제방 쌓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역시 지진이 많은 풍토에 견디기 위해 터득한 세계 최고의 내진성 주택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약점은 있지만 그 약점을 어떻게 생각하고 처리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약점에 개의치 않고 전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약점에도 힘들어하며 그것 때문에 전진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헬렌 켈러라는 분을 아실 겁니다. 그녀는 시각과 청각장애에 벙어리라는 약점까지 지닌 최대의 약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의 약점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려 전 세계 장애인들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약점이 있을 겁니다. 어떤 책에 보니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는 네 가지 형태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약점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성공자 그룹). 둘째,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것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중산층 그룹). 셋째,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하지만, 게으름과 의지부족으로 실패상태에서 겨우 의식주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실패자나 저소득층 그룹). 넷째, 자신의 약점을 아예 극복하려 하지 않거나 포기한 채로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그룹(극빈층그룹).

여러분!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약점을 기회와 축복으로 삼아 성공하였습니다. 특히 가정이나 사회, 국가나 교회 같은 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서로 약점을 담당하느냐, 아니면 약점을 서로 들어내고, 그 약점을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시대가 어려워지고 환경이 어려워지면 약점은 더욱 들어나게 되고, 그 약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라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자신만이 아는 약점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누가 나의 그 약점을 들추어내고 소문을 퍼트리고 비난한다면 그 사람과 분명히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 겁니다. 반면 자신이 큰 약점이 있지만, 그리고 그 약점을 누가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의 약점을 들추어내서 비난하지 않고 감싸주고 기도해 준다면 "그 사람 참 괜찮다!"고 생각이 들 겁니다.

일단 여기 캘거리를 보십시오. 백만 명이 넘게 사는, 그래도 캐나다에서 제법 큰 도시인 외국 도시이지만, 한인 사회는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좁습니다. 소문도 뻔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그 소문에 자기의 좋지 못한 감정의 말까지 첨부하여 퍼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질이 안 좋은 사람입니다. 만약 성도가 이런 경우라면 참으로 근심스럽습니다.

더욱 근심스러운 것은 같은 교회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서로의 사생활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 딸이 여기 캐나다에서 제법 오래 살았습니다. 5살에 이곳에 와서 올해가 만 20살이니까 15년 이상을 이곳 캘거리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이곳에 살면서 남자 친구관계가 대단히 복잡하다고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아버지인 내가 기분이 좋습니까?

물론 이 이야기를 제가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제 딸이 그래도 여기 캘거리에서 스캔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바보처럼 살은 겁니까? 아마 남들 시선이 무서워서, 아빠 목회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캘거리에서는 스스로 몸조심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지금은 밴쿠버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밴쿠버에서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어쨌든 누가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 내 가정, 내 나라, 내 교회에 대하여 약점을 말하고 다니면 기분 상당히 안 좋습니다. 특히 여기 목사님들끼리 아무리 친하다고 하지만, 다른 교회 목사님이 내 교회 성도님 약점을 말하면 저는 기분이 매우 안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에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두둔해줍니다.

혹시 그게 사실이라도 그런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합니다. 제가 여기 캘거리에서 좋아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상대방이 없는 중에 남이 어떤 사람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말하는 분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해줍니다. "이봐요. 그렇게 남의 약점을 말하고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멘!

하물며 같이 하늘나라를 세우기 위해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많은 약점을 보아온 같은 교회 성도들이 서로 약점을 비난하고 들추어내면 그 사람은 인생 다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같은 공동체에서 있기가 어려워지고 맙니다. 특히 예수님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들을 비난하고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는 겁니다.

며칠 전 미국에 있는 제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큰 문제가 생겨서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자기 딸이 지금 16살인데 자기랑 친한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와 같이 잤다는 겁니다. 교회 수련회에서 여럿이 같이 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직장 나가고 집에 없는 중에 둘이서만 같이 잤다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사실을 친한 친구인 제 여동생의 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딸이 엄마인 제 여동생에게 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 여동생은 난감해졌습니다. 저에게 전화로 묻습니다. "오빠 목사님! 이런 경우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오늘의 제 설교를 듣는 사춘기인 청소년 여러분이여! 그리고 청년 여러분이여!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사고가 날 확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가 잘 압니다. 확률 많습니다. 특히 부모가 바람피우는 기질이 있으면 자녀도 그럴 확률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교회에서 발생했다고 합시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머, 누가 누구랑... 얼레꼴레리.." 이래야 합니까? 아니면 입을 굳게 다물고 비밀을 지켜주며, 상대방의 약점을 위해 남몰래 기도해 주어야 합니까?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

여러분! 만약 하나님이 전지하셔서, 즉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중에 저와 여러분의 비밀과 약점도 다 아시고 있는 중에, 그러한 약점을 폭로하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감히 누가 그 앞에 설 수가 있으며, 누가 하나님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약점을 비난하고 돌아다니는 '빅 마우스'라면 어찌 그 분이 존경을 받겠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즉 예수님은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러 오신 분이시지, 약점을 까발리고 폭로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에 대하여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즉 성령님도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시는 분이시지 약점을 비난하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어떤 사람을 세웠을까요? 히브리서 7:2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즉 제사장, 오늘날 목사님들을 세울 때에 하나님은 약점이 없는 천사들을 세운 것이 아니라, 약점이 많은 인간을 세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이유입니다. 히브리서 5:2입니다.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너도 약점이 있고, 나도 약점이 있습니다. 이 교회에도 약점이 있고, 저 교회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이 나라도 약점이 있고, 저 나라도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한 너와 나의 약점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남의 약점을 이야기하면서 쾌감을 느끼며 사는 질이 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 약점을 서로 보완해주며, 기도해 주며, 이끌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까?

시편 39:4에 이런 구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즉 나의 연약함을 보면서, 인생을 그리 오래 살지 못하는 나의 허무한 인생을 깨달으면서, 남의 약점을 보살필지언정, 남의 약점을 비난하고 퍼트리며 살지 말하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환경이 좋아지고, 사이가 좋아지고,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되는 호시절일 때에는 남의 약점도 감당하며 넘어갑니다. 그러나 환경이 안 좋아지고, 자기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있게 되면 남의 약점을 꺼내들고 공동체까지 무너트리게 됩니다. 고로 어려울 때 더욱 조심하십시오. 약점은 서로 담당하라고 있는 것이지, 서로 비난하라는 도구로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쪼록 서로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아름답게 하늘나라를 가꾸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