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날짜: 
2022/06/18
말씀: 
계2:1-7
말씀구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설교: 

요즘 여기 캘거리 담임목사님들끼리 만나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판데믹 COVID-19 때문에 인원제한이 생기고 그로 인해 근 2년 동안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 보니까 성도님들 중에 이제는 예배에 안 나와도 괜찮다는 생각과 습관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COVID-19 이전에는 주일예배 한 번만 빠져도 크게 죄를 짓는 것 같고,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실까봐 걱정이 돼서 예배에 빠지지 않았는데, COVID-19 2년을 지내면서 예배에 빠져도 하나님이 특별히 저주하지도 않고, 나쁜 일 생기는 것도 없고, 예배에 안 나와도 누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믿음 없다고 나를 판단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COVID-19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계속 드리다 보니 그게 너무 편하고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캘거리 몇몇 교회들은 아예 온라인 예배를 없앤 교회도 있습니다. 일단 모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는 계속 온라인 예배도 같이 병행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각각 사정이 있을 수 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온라인 예배만 참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COVID-19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독감에 걸린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직장의 경우 자기가 출근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말 못할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당분간은 계속 온라인 예배도 병행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지요. “주여, 저도 속히 이 질병이 치료되고, 이 문제가 해결이 되어서 교회 가서 성도님들과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과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면 따로 특별한 준비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컴퓨터 켜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려면 시간 맞춰 일찍 일어나야 되고, 씻고 닦고 준비해야 되고, 차타고 와야 합니다. 더구나 가족들 전부가 움직이려면 가족들 간의 팀워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려면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어느 것이 더 좋으실까요? 각자 판단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첫사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혹시 결혼하신 분들 중에 온라인상에서만 만나서 사랑이 불타고 결혼에 골인하신 분이 있습니까?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일단 사랑을 하게 되면 보다 가까이서 직접 만나려고 합니다. 자주 만나려고 합니다. 매일 만나고 싶습니다. 더구나 그게 첫사랑이면 만나기 전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두근두근 거립니다. 이상야릇하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하여간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정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기를 좋아하고, 또 사랑받기를 좋아합니다. 누구랑요? 바로 나랑이요.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누구를 사랑하신다고요? 이 세상에 속한 나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얼마 만큼이요? 이처럼 사랑하사! ‘이처럼‘이라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느 정도 느껴보셨나요? ‘첫사랑’에 대하여 한국의 어느 기관에서 미혼 남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첫사랑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응답자의 62%가 첫사랑이란 ‘가장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응답자의 25%는 첫사랑이란 ‘가장 처음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0%는 첫사랑이란 ‘가장 아프게 좋아한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뜻을 확실히 아는 분이 있으면 저에게 나중에 가르쳐주십시오. 제 생각에 이 뜻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이 수반되는 그런 사랑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억에 남는 첫사랑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9%가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즉 10명 중 8명은 첫사랑을 경험해보았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아- 이게 ’할렐루야!‘를 해야 될 것인지 ’예수의 피!‘를 해야 할 것인지 잘 모르지만 오늘의 설교를 잘 이해하기에는 좋은 것 같습니다.

한번 여기 앉아 있는 분들 중에 체크해볼까요? 솔직히 대답해보세요. 첫사랑을 해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다음은 첫사랑을 안 해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니- 뭐하느라고 아직까지 첫사랑을 안 해보았습니까? 아- 이러면 오늘 설교가 잘 이해가 안 되고, 잘 먹히지 않을 것 같은데...

하여간 첫사랑의 맛을 모르시는 분들이 있어서 제가 나름대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첫사랑은 레몬 향처럼 시큼 새큼합니다. 첫사랑은 나를 들뜨게 하고 매우 기분 좋게 합니다. 첫사랑은 꽃밭을 거니는 것 같이 행복하게 합니다. 첫사랑은 나를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줍니다. 첫사랑은 아름답고 애틋하고 꿈꾸듯 하게 합니다.

뭐- 이 정도로 설명하면 대충 여러분들도 첫사랑에 대해서 ‘아하!’ 하고 감이 올 것입니다. 감이 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오늘 본문에 보면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가 나옵니다. 이 일곱 교회는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교회를 상징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이기에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게 쓴 편지는 바로 오늘날의 저와 여러분에게 쓴 편지라는 겁니다. 먼저 예수님은 나를 너를 이렇게 칭찬하시고 있습니다. “나는 너의 행함과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다. 나를 위해 잘 참고 견딘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섬긴 것도 잘 알고 있다.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애쓴 것도 잘 알고 있다.”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보다 저와 여러분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캐나다 땅까지 와서 하나님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인내하고 견딘 것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책망할 것이 있는데 바로 첫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주님을 배신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을 안 믿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다가 큰 시험에 들어서 교회 안 나오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고, 교회도 그런대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데 첫사랑의 애틋함이 사라졌습니다.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밍밍합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마지못해 일수 찍고, 출근 도장 찍는 것 같아졌다는 뜻입니다. 할 수 없이 교회 나온다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감정이 다 식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지만 감격이 전혀 없습니다.

교회는 나오고 예배는 드리지만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는 하지만 진정 원해서 자발적으로 행복으로 하는 봉사가 아닙니다. 한국 드라마에 보면 이때 여성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이럴 거면 헤어져. 우리 이럴 거면 이혼해. 앞으로 그만 만나자. 이제 우리 관계 정리하자.”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합니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신부되는 우리를 향해 “내 이러고는 같이 못산다.”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아니 왜요? 다름 아닌 네가 첫사랑을 버렸다는 겁니다. 너의 감정이 메마르고 메말라서 이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체인데, 하나님은 사랑을 하기 원하는데, 네가 나를 인격체로,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비인격체인 물질이나 돌멩이나 황금으로 본다는 겁니다. 아- 제가 지금 하나님과의 사랑을 인간의 첫사랑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게 좀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니-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다니? 그게 가능한 거야? 하나님이 어디 있는데?” 즉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들은 오늘의 이 설교와 이 말씀이 좀 이해가 안 될 텐데... 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표어가 이겁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아무쪼록 하나님을 직접 인격적으로 만나서 하나님과 첫사랑을 나누시기를 축원합니다. 때로는 “주님, 왜 이렇게 날 사랑하시는 거예요?” 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혹시 그 눈물과 감격이 식어지고, 첫사랑을 버린 분들은 도대체 나는 어디서 떨어졌나 생각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다 보니 늘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혹시 기도가 떨어져서 영감이 안 오면 새로운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영감을 계속 받고 살다 보니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목사로서 가장 좋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청년 때 은혜를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나님과의 감정의 교통함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눈물도 나오고 감정이 북받쳐 통곡을 하고 웁니다. 물론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첫사랑의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근 2년간 COVID-19으로 인해 정기 예배가 힘들어졌을 때에도 저는 성전에 혼자 나와서 100일 철야기도도 했고, 21일간 교회에서 혼자 다니엘 기도도 했습니다. 마치 오페라 가수처럼 혼자 신나게 몇 시간씩 찬송도 부르고, 스스로 감격에 겨워서 행복했습니다. 이곳저곳 교회 청소와 정리도 하고, 마음도 뿌듯하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 외국 땅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제가 목사가 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도 이렇게 감격하며 찬송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는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COVID-19으로 인해 믿음이 떨어지고 첫사랑이 식어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주님은 도대체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운동선수가 실력이 떨어지면 도대체 내가 왜 이런지,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그것을 발견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도 성적이 떨어지면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 각성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것처럼 우리도 돌이켜 반성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겁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는 겁니다. 아- 이거 굉장히 무시무시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끊겠다니... 세상에 이런 저주가 어디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과 내가 관계가 끊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세상 말로 완전 개밥의 도토리가 되는 겁니다. 처량한 신세, 비참한 존재,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아- 이러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결코 안 됩니다. 살기 힘든 말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나는 아주 망하고 마는 겁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져도 하나님과의 관계만 끊어지지 않으면 살 수가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성도가 성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계속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의 성경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도대체 주님과의 첫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언제부터 떨어졌는지, 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돌이키십시오. 그래서 인생 끝날 까지 하나님과 첫사랑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주님 안에서 더욱 복되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