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꿈을 실현할 것인가 ?

날짜: 
2003/01/26
설교: 

*제 목 : 어떻게 꿈을 실현할 것인가 ?
*본 문 ; 창 13:1-18

순복음 교회에는 오중 복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 성령 충만, 신유, 축복, 재림의 복음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 받아 지옥에 간다면 그 모든 것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만이 신앙생활 목적의 전부가 아니라 이 외국 땅에 살면서도 건강을 얻고, 축복도 얻고,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꿈을 이루어 가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고로 오늘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같이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l.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조카 롯을 데리고 살았는데 아브람 때문에 조카도 덩달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땅이 좁아서 아브람의 종과 롯의 종 사이에 서로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람이 제안을 합니다.
"자, 이제는 너에게 딸린 식구도 많고 나의 딸린 식구도 많아졌으니 이제 서로 떨어져 헤어져 살자. 네가 동쪽으로 가기를 원하면 내가 서쪽으로 가고 네가 서쪽으로 가기를 원하면 나는 동쪽으로 가겠다."
그랬더니 롯은 자기 아저씨 때문에 이렇게 큰 부자가 됐었으니 "형님 먼저 고르시지요 ?" 라고 양보를 했으면 좋으련만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먼저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에 풀도 많고 물도 많고 살기 좋은 소돔 고모라 성을 바라보고 자기가 그곳을 향하여 가겠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속으로는 좀 섭섭했겠지만 할 수 없이 조카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그 당시 좋지 못한 다른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밖에 없는 친척인 조카 롯이 훌쩍 떠나고 난 후에 아브람의 마음은 허전하고 섭섭하고 슬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쓸쓸해하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람아,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

여러분,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냥 아브람에게 땅을 주신다고 하시지 않고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 바라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꿈을 실현하려면 먼저 내가 꿈꾸고 소원하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꿈에 대한 영롱한 영상을 그리면서 마음의 눈으로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바라보는 것을 성취하게끔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눈으로 집중해서 꿈과 목표를 바라본다는 것은 위대한 기적을 나타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심리학자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가령 장래에 내가 어떤 인물이 되고 싶다고 끊임없이 바라보고 그 모습에 대한 영상을 그리면 훗날 실제로 그러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돋보기로 태양 빛을 받아 어떤 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흔들리지 않고 계속 집중하면 마침내 그 초점을 태우고 마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집중해서 꿈을 가지고 그 영상을 그리며 계속해서 바라보면 마침내 그 꿈이 성취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고로 장사하는 사람이면 그 장사가 날로 번창해 가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자꾸 바라보아야 되고,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되고, 부부간에도 거의 맨날 싸우는 사람들은 앞으로는 덜 싸우는 자신들의 모습, 그리고 좀 더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들은 보다 하나님께 칭찬 받는 착하고 충성스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든지 간에 그 바라보는 것과 거의 일치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요 하늘의 법칙입니다. 좋지 못한 것을 자꾸 바라보면 그것이 그대로 되기가 쉽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나 어른이나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잔인하고 끔직한 죄를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자라온 환경을 조사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그러한 죄를 너무나 많이 바라보았기 때문임이 드러나곤 합니다.
고로 우리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좋지 못한 것을 바라보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나쁜 모습을 자꾸 쳐다보고 바라보면 그 바라보는 것대로 결국 좋지 못한 인물이 되고 맙니다.

마귀도 이 신비한 법칙을 알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킬 때 처음부터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지 않고 단지 바라보라고만 했습니다.
하와가 그 말을 듣고 선악과를 자꾸 쳐다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마침내 따먹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만약 하와가 선악과 옆에 가지도 않고 그 선악과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금단의 열매를 자꾸 바라본 것이 인류의 재앙을 초래하고 말은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에도 보면 롯의 가족이 불과 유황의 심판을 당하는 소돔성을 빠져나갈 때 천사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롯의 처는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좋지 못한 것을 마음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죄짓는 모습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자신이 망하는 모습, 불행해진 모습, 슬픈 모습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신의 행복해진 모습, 건강해진 모습, 축복 받은 모습, 좋은 일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남편이나 아내 혹은 가족 중 누가 예수님 믿게 되기를 바란다면 막연하게 예수님 믿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지말고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그 가족 식구가 교회에 이미 나온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며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되는 날이 결국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그것을 종이에 써서 넣고 다니면서 시시때때로 바라보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어떤 분이 이런 간증을 한 것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계속 집에 들어오지 않자 그 여자는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속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리고는 어쩌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술을 퍼마시고 들어와서 아내와 자녀에게 욕을 퍼부으며 때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남편이 이혼장을 가지고 와서 이혼하자고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를 하더랍니다.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고 아내가 아무리 간청을 해도 너무나도 못살게 구니까 그러면 앞으로 100일간 여유를 달라고 하면서 일단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 분은 남편의 문제로 목사님과 상의를 했더니 목사님이 이렇게 일러 주더랍니다.
"남편이 지금까지는 바람을 피우고 집에 안 들어왔지만 이제부터는 바람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먹고 일찍 집에 들어와 자리에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모습을 그리며 기도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 이 여자 분은 남편이 집에 돌아와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아주 좋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에 남편이 자주 들어오더니 나중에 완전히 들어 왔더랍니다. 그래서 100일 째가 되던 날에 그 여자 분이 "여보, 이제 우리가 이혼장에 도장 찍을 약속의 날이 다 되었으니 어서 이혼장을 가져오세요. 이혼장에 도장을 찍읍시다"라고 말을 했더니 남편이 "원 별소리를 다 한다."고 그러면서 그 후에 아주 재미있게 알콩달콩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도 축복 받고 성공하는 모습을 마음 속으로 자꾸 그리면서 쳐다보면 그렇게 되는 날이 결국 우리에게 올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가꾸기 위해 꿈과 목표를 세우고 바라보는 것도 결국 바라 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예부터 "벌레의 눈을 가진 백성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백성은 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새의 눈과 같이 높이 떠서 미래를 보고 멀리 바라보아야 발전이 있지 늘 땅만 바라보고 살면 땅에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망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여러분 꿈을 가지고 그 꿈에 대한 영상을 그리며 끊임없이 바라보십시오. 언젠가 바라보는 대로 그 꿈이 이루질 때가 올 줄을 믿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가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새로 태어나는 얼룩덜룩한 짐승을 자기 몫이라고 외삼촌과 약속한 다음 짐승들이 새끼를 밸 때에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껍데기를 벗겨서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새로 태어나는 새끼들이 모두 얼룩덜룩한 모습을 갖고 태어나게 되고 결국 그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면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 왜 하나님은 그 성을 단번에 와르르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일주일 동안 빙빙 돈후에 무너지게 했습니까 ?
그것은 바로 그 여리고성을 돌면서 믿음의 눈으로 성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튼튼하게 서 있는 성벽이지만 그 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엿새동안 그 성을 한 바퀴씩 돌다가 마지막 날에 일곱 바퀴를 돌자 결국 성이 와르르 무너졌던 것입니다.

2. 뜨거운 소원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목표한 바를 마음의 눈으로 계속 바라 볼 뿐 아니라 불타는 소원으로 자주 하나님 앞에 뜨겁게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어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재판장에게 가서 그것을 풀어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 재판장은 과부의 소송을 들은 척 만척 합니다. 왜냐하면 이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뇌물 먹기만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계속해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집에 있으면 집으로 찾아가고, 직장에 있으면 직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하면 출근길에 가서 붙잡고, 퇴근을 하면 퇴근길에 가서 붙잡고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재판관이 들은 척 만척 했지만 하도 번거롭게 졸라대니 할 수 없이 그 과부의 소원을 풀어 주었다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그러면서 "이 불의한 재판관도 자꾸 졸라대니까 그 소원을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끊임없이 매달리고 부르짖으면 왜 안 들어 주시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5 이하에도 보면 어떤 사람이 밤에 손님이 찾아 왔는데 대접할 떡이 없어 부자 친구 집에 가서 떡 세 덩어리를 빌려 달라고 대문을 두드리면 소리 소리쳤지만 부자 친구는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오히려 안에서 이런 소리가 납니다. "이봐 친구, 지금이 몇 시야 ? 잠 좀 자자. 지금 내 가족들과 함께 다 침상에 누웠으니 내일 아침에 와 !" 그러자 이 사람은 더 열심히 문짝을 부수듯이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부자 친구가 떡 세 덩이를 가지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이봐, 친구, 자네가 내 친구라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도 강청하기에 못 이겨 주는 것이네." 하고 떡 세 덩이를 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
얼마나 하나님께 간청했습니까 ? 꿈을 가지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 본 다음에는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처럼 혹은 누가복음 15장의 친구처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2에 보면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결국 비밀을 알려 주시고 마침내 이루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아 29:13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오늘 본문에도 아브람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 것은 그가 기도 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상달이 되어 결국 그도 외국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목표를 위한 희생과 행함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다시 말해 우리가 꿈을 꾸고 바라보기만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공상주의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 기도는 스스로를 속이는 신비주의자에 불과합니다. 즉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생과 행함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7)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되고, 더 나아가 희생이 요구됩니다. 비록 행하는 그 일이 귀찮더라도,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손해 보는 것이라도 행함과 희생이 없으면 우리의 꿈은 결코 성취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 외국 땅에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큰 희생과 함께 더욱 바른 행함이 따라야만 합니다. 비록 그 희생의 일이 힘들고 행함의 일이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꿈이 있기에 그 일들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 우리의 희생과 행함은 더욱 빛이 나고, 그에 따르는 보답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꿈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 계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