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날짜: 
2003/03/03
설교: 

제 목 ;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본 문 ; 욥 1:13-22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창녀 생활을 해오던 한 부인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딸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곁에서 또렷하게 보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떠나 각각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큰딸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큰딸은 가슴 아프게도 자기와 똑같이 창녀가 되어 있었고 더욱이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딸에게 물었습니다. "애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
그러자 그 딸이 어머니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대답합니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에요."
그 어머니는 이윽고 둘째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훌륭한 가정의 착실한 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딸에게 물었습니다. "애야, 어떻게 이렇게 되었니 ?"
그러자 그 딸이 대답합니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똑같은 시대에,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는데 한 사람은 어머니와 같이 알코올 중독자요 창녀가 되었고, 또 한사람은 훌륭한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딸의 대답은 이렇게 똑같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에요."
즉 큰딸은 어머니의 잘못된 사고 방식, 잘못된 행동, 잘못된 습관, 잘못된 말을 따라서 그렇게 닮아갔고 결국 자신도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작은딸은 어머니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다짐하며 좋은 생각, 좋은 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며 늘 자신을 바르게 가꾸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작은 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훌륭한 사람, 훌륭한 아내,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너무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잘못된 것은 누구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혹은 나쁜 환경이나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어떤 특정인을 향하여 이를 갈며 원한에 사무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잃고 복수를 하겠다고 물불을 안 가리고 덤비다가 큰 사건과 사고를 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 대구에서는 지하철 방화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불붙은 전동차에 갇힌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외치는 절규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비참한 마음과 함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안타까운 심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화를 저지른 사람은 장애인으로서 아주 큰 원한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병이 들었을 때 의사가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장애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에 대해 깊은 원한에 사무쳤고 그 의사가 있는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늘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한의 불똥은 급기야 무고한 사람들에게 튀어 너무나도 많은 생명을 파괴했고, 너무나도 많은 가정을 깨트리고, 그들의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큰 시련과 역경에 처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환경을 잘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산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헤롤드 럿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2차 대전 중 공수부대 대원으로 유럽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한동안 참혹한 좌절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하고 스스로 절망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팔이 없는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잃은 것보다는 아직도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차츰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찾게되고 그 힘든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자 마침내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실패가 따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인간 승리의 주역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이 이야기는 마침내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이 영화에 불구의 몸으로 직접 출연하여 마침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이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고 하는 영화입니다.
그 상을 받자 한 기자가 찾아와 그에게 물었습니다.“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도리어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남은 것을 잘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음악가 베토벤은 말년에 청각이 마비되고 말았었습니다. 음악가가 청각이 마비되었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역경 속에서도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마침내 그의 지휘로 합창 교향곡이 수많은 청중들에게 연주되었습니다.
그의 지휘가 끝났을 때 장내는 박수 소리와 환호로 떠나갈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그 환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안타까이 여긴 동료가 베토벤을 청중을 향해 돌려 세웠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는 청중의 열광적인 환호에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음악가 헨델은 전신이 마비상태에 빠진 불구자이면서 메시아를 작곡하였고, 밀톤은 시각장애 상태에서 저 유명한 실락원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 최고의 천체물리학자 호킹은 전신마비가 오히려 그로 하여금 위대한 천체 물리학자가 되게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였다면 그는 인생을 즐기는 일에 몰두하느라 위대한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없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삶에서 차이를 가져오는 요소는 무엇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느냐하는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당신이 그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 당신이 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
자신에게 그러한 나쁜 환경을 가져다 준 사람을 원망하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시겠습니까 ? 아니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찾으며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

오늘 본문에 보면 욥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를 사단에게 떳떳이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하나님께 이렇게 참소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 하나님이 그와 그의 집과 그 모든 소유물에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 이제 하나님이 그의 소유물을 한번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욥도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사단에게 말을 합니다.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내 손에 붙이노라. 그러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아라."
이 일이 있고 난 후 사단이 땅으로 내려와 욥의 소유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먼저 소 500마리와 나귀 500마리가 스바 사람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7000마리의 양을 태워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 3000천 마리를 약탈해 갔습니다. 이 와중에 종들도 거의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마침내 욥에게 있어 가장 귀한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손을 댑니다. 그래서 욥의 자녀 7남 3녀가 맏형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에 갑자기 대풍이 일어나 집 모퉁이를 치매 집이 무너져 7남 3녀의 자녀가 모두 압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한 자녀가 죽어도 부모의 가슴이 찢어지게 되는데 다 키워 논 자녀 7남 3녀가 돌무더기에 깔려 아름다운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아주 형편없는 시체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슬픔이겠습니까 ?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환경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욥1:21)

여러분,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상황이 당신에게도 다가왔다면 당신도 과연 욥처럼 이런 훌륭한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 욥이 이렇게 훌륭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부자라도 결국 갈 때는 모든 것을 다 놓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해도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내가 가지고 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내 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나에게 맡겨놓은 것을 뜻이 있어 다시 가져가신 것뿐입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는다면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할지라도 결코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일 센트라도 자신의 주머니에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고, 비록 몸이 병이 들었을지라도 아직 호흡이 붙어있다면 그것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호흡이 끊어져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원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그렇게 가는 것이 진리이게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을 잃고, 명예를 잃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은 나만이 당하는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런 환경에 처하게 되고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죽어서도 천국에 가니 죽음의 순간에도 찬송과 감사를 드리며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어떤 슬프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습니까 ? 혹시 당신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이것저것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이때 당신의 취하는 태도에 따라 당신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삶에서 차이를 가져오는 요소는 무엇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느냐하는 환경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당신이 그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