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유브라데강

날짜: 
2017/07/30
말씀: 
창2:10-14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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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덴에서 발원한 강은 거기서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강으로부터 줄기가 갈라지면서 네 강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네 강의 이름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비손(뛰다)과 기혼(은혜)과 힛데겔(결실)과 유브라데(풍요)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강이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지형의 변화를 비롯하여 강이 처음 있던 위치까지도 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아의 홍수 후에는 에덴동산이 처음 만들어진 때의 지형하고는 아주 많이 다를 것입니다. 설령 강의 이름이 오늘날에 현존하는 강과 같다 해도 그것을 지금과 똑같은 위치와 모습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모습만을 근거로 네 강의 위치를 추정하다보면 자칫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의 히브리어 원어를 근거로 영적인 의미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네 번째 풍요의 뜻을 가진 유브라데 강에 대한 교훈입니다. '유브라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페라트'로 '솟아나오다. 돌진하다.'에서 유래하여 '좋고 비옥한 땅' 즉 '풍요'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강에 왜 풍요라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이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유브라데 강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입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싹트고 꽃을 피우며 발전해 갔습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교해 인구가 증가하게 되고 부가 축적되어 갔으며 도시의 형성과 거대한 건축물의 건설 등이 이루어짐으로 풍요롭고 발달된 문명의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곳 이외에도 문명이 발생하게 되는 다른 강들 주변에서는 모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지만 특별히 네 번째 강인 이 유브라데 강의 이름에 이처럼 풍요라는 의미를 담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유브라데 강을 통하여 풍요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마음의 풍요로움이 생깁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의 여유, 마음의 평화, 마음의 기쁨, 마음의 행복을 놓치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마음의 풍요로움이 있었습니다. 부부간에도, 동물 간에도 너그러움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마음에 풍요로움이 들어옵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이고 희생적이 됩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풍요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풍요의 유브라데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요'라는 의미를 가진 유브라데 강이 마르면 기근이 다가옵니다. 마음의 풍요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수의 강을 흐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좁고 답답한 마음을 넓고 풍요로운 마음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상처의 가시와 엉겅퀴가 들어찬 마음을 풍요의 옥토 밭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화목을 주십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라고 하는 동네의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다가옵니다. 인생을 살면서 쓴 맛, 단 맛을 다보며 살면서 이리저리 상처를 입고 산 여인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고 사는 여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입에 늘 오르내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렵습니다. 사람들이 늘 자기 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이 점차 고립되어갔습니다. 아무도 우물가에 나오지 않은 시간에 목이 말라서 할 수 없이 우물물을 길으러 나온 여인입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마음의 상황과 처한 형편을 아시고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여인아, 내게 물을 좀 다오." 그러나 이 여인은 남에게 물을 줄만한 마음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늘 차갑고 공격적으로 대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그러자 주님이 여인에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0, 13-14)
이 여인은 예수님께 생수를 구했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므로 마음이 변했습니다. 삶이 변했습니다. 옹졸하고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마음이 변하여 오픈 마인드가 되어서 자기의 옛날의 좋지 못한 과거까지 스스로 밝히면서 전도를 하는 여인으로 변했습니다. 옛날의 과거의 마음의 상처가 예수님이 주신 그 생수로 말미암아 완전히 치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유브라데 강이 흘러 풍요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마음이 폐쇄적이고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늘을 보고 땅을 바라보아서 완벽하게 떳떳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처럼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심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를 받고 떳떳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마음에 풍요로움이 생깁니다. 아무쪼록 풍요의 유브라데 강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풍요로운 마음을 가져다주기를 기원합니다.
2. 물질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각종 먹기에 좋은 실과가 열렸습니다. 그 나무들은 강에서 흐르는 수분을 통하여 풍성한 실과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강이 없다면 풍성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고로 문명은 항상 강을 끼고 발생했습니다. 에덴동산의 풍요로움도 네 개의 강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특히 유브라데 강은 이름도 '풍요'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들기 전부터 모든 물질세계를 풍요롭게 갖추어놓았습니다. 고로 에덴동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시의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맛보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자고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풍요로웠고, 그 아들 이삭이 역시 풍요로웠고, 또 그 아를 야곱 역시 풍요로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의 풍요로움을 주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저와 여러분에게도 풍요로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예수님 안에서 풍요로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가난해지므로 우리는 부요케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부요함을 받아서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에덴의 강들이 회복됩니다. 그 중 풍요로움이 회복됩니다. 저주가 바뀌어 축복이 됩니다. 이러한 풍요로움이 이 외국 땅에서도 저와 여러분에게 마침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3. 건강의 풍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질병이 없었습니다. 아픔이 없었습니다. 죽음이 없었습니다. 유브라데 강에서 흐르는 물은 넉넉한 건강도 주는 생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니 물도 썩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에 오염이 되니 강의 물도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썩은 물이 다시 정화됩니다. 깨끗해집니다. 정화된 강물을 마시면 몸이 소생합니다. 마음이 소생합니다. 동물도 식물도 소생합니다. 그리고 번성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많은 부분을 병든 자를 고치는데 보내셨습니다. 예수님만큼 병든 자를 많이 고치신 분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병이 치료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그 공로로 병이 낫게 된다고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합니다. 즉 오늘날도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는 사역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5-16)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솟아나오는 물이 강을 이루었습니다. 그 강의 물로 인하여 죽었던 주위의 생물이 소생되고 번성했습니다. 우리는 건강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건강을 잃으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혹 질병에 걸렸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성령의 생수로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치료의 말씀을 수없이 많이 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제가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30:26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할렐루야!
최종 결론입니다. 에덴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비손강(뛴다), 기혼강(은혜), 힛데겔강(결실), 유브라데강(풍요)입니다. 아무쪼록 이 네 강의 축복이 고국을 떠나 캐나다 땅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각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