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신부가 되라

날짜: 
2012/01/14
설교: 

엡5:31-32 예수님의 신부가 되라.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비유합니다. 먼저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이는 일을 위해서 맺은 관계입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충성하고 순종할 때에만 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종이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주인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칭찬을 들으려면 반드시 일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만 그치면 이는 너무나 삭막합니다. 마치 회사의 주인인 보스와 회사에서 일하는 사원과도 같습니다. 일을 못하면 잘립니다. 해고당합니다. 사원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사장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서 사원을 감원하려는 분위기가 나타나면 사원들은 긴장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캐나다에서 사원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한국의 경우 회사원으로 있으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사장의 눈치도 열심히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뇌물성 선물도 윗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회사원으로 일한다는 것이 여간 고생이 아닙니다. 물론 주인 중에는 좋은 주인이 있습니다. 종의 사정과 형편을 잘 알아주어 종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하도록 배려하는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주인입니다. 종에게 삯을 줄 때에도 인색하지 않고 넉넉하게 주십니다. 그러나 종이 악하고 게으르면 주인은 그 종에게 몇 번은 참아주지만 계속 끝까지 참지는 않습니다. 어느 순간 불러서 야단을 칩니다. 혹은 일한 것이 없다고 삯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인과 종의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비유하기에는 어쩐지 멀게만 느껴집니다. 때로는 타도해야할 부르주아적 계급의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혹 자기는 열심히 주인인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했는데 그에 대한 보수가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당장 보따리를 싸고 그 회사를 옮길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주인이 못됐다고, 회사가 나쁘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또한 주인은 능력 있는 종을 붙들기 위해서는 그에게 더욱 보수를 주어야 합니다. 종과 주인과의 관계는 일과 삯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하면 예쁜 것이고, 일을 못하면 미운 것입니다. 일을 잘하면 삯을 많이 주어야 하고, 일을 못하면 잘라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단지 주인과 종의 관계로만 본다면 하나님의 집은 너무도 황량하고 삭막해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사장이고 우리 모두는 그 사장 수하에 있는 월급쟁이처럼 느껴집니다. 일을 잘하는 종만 칭찬을 받고, 일을 잘해야만 귀히 여김을 받고, 일을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 속에서는 참다운 평안과 참다운 행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고 가문의 혈통을 존속시킵니다. 부자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는 아들은 아무 노력 없이 부자가 됩니다. 상당한 특권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고로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습니다. 즉 천국은 우리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떳떳이 주인의 아들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도 주어집니다. 우리들은 서자가 아니므로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인데, 즉 아들이 아니고 딸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 여자도, 딸도 특권을 누리고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는 비유하지만 아버지와 딸로는 비유하지 않던데..."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비유한 것은 우리에게 확실한 상속권과 특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여자는 상속받지 못한다고 남녀차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남자 즉 아들만 받고, 딸 즉 여자는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그는 확실한 이단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3:5-6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즉 하나님과 모세와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였고,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와 예수님 중에 누가 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당연히 종보다 아들인 예수님이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그 분의 아들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만약 누가 모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천국을 달라고 하면 안통합니다. 종에게는 상속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나아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처럼 일과 삯의 관계가 아닙니다. 신랑은 신부를 맞이할 때 그를 밥 짓고, 집안 청소하게 하고, 그에 따른 월급을 주려고 신부로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신부도 신랑을 맞이할 때 그에게서 자기의 일한 대가, 즉 밥 짓고, 청소하고, 애 낳고 기르는 데에 대한 보수를 신랑에게 받으려고 신랑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일과 삯의 관계로 전락한다면 병들어 집안일을 못하는 신부는 가치가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또한 신부는 열심히 집안일을 했는데 그에 따른 월급을 신랑이 가져다주지 않으면, 즉 신랑이 돈을 못 벌면 신부는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데모해야 합니다. "돈 못 버는 신랑은 물러가라. 돈 못 버는 아빠는 회개하라."
요즈음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가 혹은 결혼하신 남편과 아내가 이렇게 일과 삯의 관계로 전락하여 부부의 진짜 관계인 사랑의 관계가 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하지만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일과 삯의 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얻어야 할 것은 상속이 아니고, 유산이 아니고, 돈이 아니고 행복입니다.
요즘은 아주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노인네와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또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핸섬하고 젊은 남자가 할머니와 결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뒤에 있는 돈과 유산을 바라보고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별로 추천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돈과 유산이 빠지면 부부관계는 금방 깨지고, 부부의 사랑도 쉽게 깨지고 맙니다. 돈과 유산을 전제로 결혼했고, 돈과 유산을 담보로 부부의 행복을 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즉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돈 잘 벌어주는 능력 있는 남편이기에 그를 신랑으로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도 그를 사랑하고 그 분을 내 신랑으로 맞이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가 일을 잘해서 우리를 신부로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신부로 맞이한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너무나도 친숙하고 가까운 관계입니다. 종은 주인의 뜰 안에 있고, 아들은 집안에 있지만 신부는 안방에 있습니다. 종은 재산의 비밀을 알고, 아들은 상속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신부는 신랑의 마음의 비밀을 압니다. 종은 주인의 안방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인의 밥상에 앉지 못합니다. 반면 아들은 한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랑신부는 한 몸의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즉 가장 좋은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것만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여 같이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에게는 각종 좋은 과일과 환상적인 환경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웠습니다. 같이 행복을 나눌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랐는데, 그래서 모든 것을 주었는데, 아담은 여전히 외롭습니다. 허전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신부가 없으면 외롭습니다. 가장 좋은 성도는 착하고 충성되게 일만 잘하는 종이 아니라, 그 분의 신부가 되어서 그 분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그 분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신부와 같은 성도가 진짜 좋은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교회,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우리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심으로 그 분이 주는 돈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주는 좋은 환경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신부의 가장 큰 행복은 돈과 에덴동산이 아니라 바로 사랑의 연합입니다. 돈이 없어도, 환경이 어려워도, 성격이 달라도, 그 모습 그 대로 사랑하는 모습이 바로 신랑과 신부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동안 하나님을 위해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내 상속으로 얻을 집이 얼마나 멋있게 생겼는지 구경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신랑신부의 관계를 맺고 살아온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분과 허그(hug)하고 연합하는 일입니다.
진짜 행복은 연합에 있습니다. 완전한 연합은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이 완전하게 연합하여 즉 삼위일체하여 행복한 하나님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과 연합하십시오.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늘 같이 지내십시오.
제가 이곳 캘거리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지낸지 이제 14년이 지나고 15년째 되어갑니다. 여기 캘거리의 교회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이 잘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의 경우 어찌 보면 서로 경쟁 관계인데, 그래서 서로 시기 질투할 수 있는데... 그러나 성숙한 목사님들은 서로를 가족관계로 봅니다. 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의 불행은 나에게도 불행입니다. 그의 근심은 나에게도 근심입니다. 그래서 연합이 되고, 연합은 화목을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옵니다.
연합의 가장 긴밀한 연합은 부부간의 연합입니다. 어찌나 연합이 완벽한지 성경은 둘이 둘이 아니고 한 몸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부부가 둘이 한 몸이 되어, 연합하여 행복을 누리십시오. 가족 식구들이, 교회 식구들이 서로 연합하여 행복을 누리십시오.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아름답게 연합하여 행복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나이 드신 청년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여, 이제는 그만 외로워하시고, 짝을 만나 신랑신부로서 연합을 하십시오. 그리고 연합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로서 동고동락의 연합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