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날짜: 
2008/12/07
설교: 

슥4:6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종종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에 부딪혀서 자신이 계속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낙심을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도 합니다. 혹은 술을 비롯해 여러 가지 좋지 못한 방법으로 현실을 탈피해 보려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에 또 다시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전에 IMF 환난 시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파탄이 되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경제적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또 다시 경제적 이유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실력파 남성보컬그룹 이서현 씨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자살의 원인은 주식투자 실패가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경제가 더욱 힘들어지면 인간의 한계로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여 발생되는 불행들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비단 경제적인 위기뿐만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커닝을 하다가 걸린 여학생이 그 수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버틸 수 있는 인간의 한계가 있는데 이 여학생도 자기가 버틸 수 있는 정신적인 한계를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때때로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도 냉정하고도 엄연한 현실은 우리 크리스천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인간의 한계에 부딪치는 큰 위기와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오늘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586년에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벨론은 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고레스는 이전에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해도 좋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때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란 사람이 5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1차로 고향 땅인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합쳐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고 기초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전건축은 곧 방해에 부딪혔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혼혈민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정치적인 세력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강력하게 방해했습니다. 그로 인해 성전 건축은 15년 동안이나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전 공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그들의 불신은 곧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순수함과 열정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직 예루살렘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야할 십일조도 자기가 우선이 되다보니 전혀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해야할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하나님 중심으로 생겨난 이스라엘 공동체가 세상적인 공동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신앙대로 없어지고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나중에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저주스런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이제 성전 건축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이 임했습니다. 환상 중에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슥4:6)
천사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증거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힘과 능으로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들도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우리는 내 자신을 비롯해 사람들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로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애들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니라.”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주님,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여러분, 성경은 우리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실지는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 전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무능한 하나님인 것 같지만 실지는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때때로 불신자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에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나약한 사람들이야. 세상에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다니... 쯧쯧쯧... 나는 나를 믿는다.” 여러분, 어찌 보면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나’라고 하는 인간의 무능함을 바르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나약한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에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참으로 강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믿고 살다가 자기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면 삶의 토대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믿었던 자기라는 존재가 무너지면 어디 기댈 때가 없습니다. 곧 바로 불행해지고 맙니다. 곧 바로 낭떠러지에 도달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내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기에 인간의 한계를 만나도 기댈 수 있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세상 말로 비빌 언덕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피할 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 품안입니다. 혹시 이 외국 땅에 살면서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도달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때에는 하나님께 나아와 비벼야 합니다. “하나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전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아주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을 통하여 성전 재건의 역사를 반드시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대로 성전 재건은 적들의 끈질긴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했지만 하나님이 하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세라는 세상이 되면 인간적으로 도저히 못 말리는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내가 낳은 자녀라도 도저히 못말릴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제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아무리 타일러도 진리를 버리고 불행의 길로 나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다가옵니다. 이렇게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지지난 주 저희 교회 수요예배에 한국에서 온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여기 캘거리에 와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 유학을 시키며, 자신은 일을 하면서 살려는 계획을 가지고 답사차 이곳에 왔습니다. 그때에 아주 알맞게 하나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 외국 땅에서 사람의 힘으로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내용의 설교가 들려졌습니다.
이 여집사님이 말씀을 듣고 한국에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이곳에 와서 사는 것은 내 힘으로, 사람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이 이곳에 오는 것을 하나님의 원하시는지 아닌지 먼저 하나님께 물어봐야 하겠군요.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곳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살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지도 않는데 이곳에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오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테니 오지 말아야 되겠군요.” “예, 정답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보면 한국에서 문의하는 분들 중에 “이곳에 오면 과연 살 수 있습니까?” 하는 문의가 많이 옵니다. 이때에 홈페이지 운영자이신 조집사님이 그 분에게 알맞은 정보를 찾아서 제공해줍니다. 그러나 그 뒤에 항상 따르는 권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권면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이런 권면을 항상 하는 것입니까? 다름 아닌 아무리 자신의 능력이 우수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곧 바로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 낙심과 절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곳 외국 땅에서 인간의 한계에 부딪힐 때에는 한국처럼 어디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곳 외국 땅은 부부 중에 혼자 벌어서 살기가 빠듯해 부부 모두 일을 하면서 사는 현실이기에 옆에 분의 상황도 만만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외국 땅에서 까딱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항상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안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결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도 하나님 없이는 결코 우리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넉넉히 살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들은 까딱없이 버틸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욱 크게 우리에게 임하므로 하나님의 솜씨를 직접 체험하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인간의 한계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끌어들이는 기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외국 땅에서 당신의 한계에 부딪힐 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 힘으로 안됩니다. 제 능력으로는 못합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가능하오니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이러한 기도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