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는가?

날짜: 
2014/09/06
말씀: 
고후4:7-10
말씀구절: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설교: 

시대에 따라서 교회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도와 선교, 그리고 교육과 구제 사역은 시대에 상관없이 항상 교회의 관심 분야였습니다. 그리고 대략 30-40년 전부터는 교회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교회 성장에 관한 세미나가 열리고, 그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때 가장 유명하게 떴던 목사님이 바로 단일 교회 중 세계 최대의 성도수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략 20여 년 전부터는 가정 사역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갈등 해소 방법, 부모와 자녀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행복한 가정 만들기와 같은 것들이 인기 관심 분야였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전부터 일어난 또 한 가지 관심 분야는 상담과 치유 사역입니다. 즉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 받은 것들을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고, 또 매우 호응도가 높은 분야입니다.

이번 주에 있을 캘거리 연합 부흥 성회의 강사인 김의식 목사님도 치료와 상담 분야가 전공입니다. 상처가 많으신 분들은 이번 성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치료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치료 사역에 관한 세미나를 듣다 보면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처가 없으신 분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여 에덴동산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났습니다. 그 가시와 엉겅퀴가 사정없이 찌릅니다. 당연히 아픕니다. 상처가 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찌르는 가시와 엉겅퀴가 누구입니까? 가까이 있는 가족, 이웃, 친척, 친구, 그리고 교회 식구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가끔 보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일부러 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외국 땅에 이민이나 유학을 오신 분들은 외로워서라도 교회에 나옵니다. 청년들의 경우는 한국 음식을 먹으려고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외국 땅에 와서 일부러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겁니다. 한인 사회와 발을 끊고 살려고 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분들도 있고, 영어 문화가 맞아서 한인 사회에 안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분들이 한인 교회를 나오지 않고 외국인 교회를 다닙니다. 어찌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한국 사람들의 문화는 개인적인 것들을 꼬치꼬치 캐묻는 문화입니다.

그런 질문에 대답을 안 하기도 그렇고, 또 과거에 여러 가지 상처가 있고, 나쁜 추억들이 있는데 그것이 들어나는 것도 싫고, 도리어 상처를 받을 위함이 큽니다. 더구나 이미 한인 교회에서 상처를 입은 경우는 한인 교회가 당연히 싫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 서양 교회를 다니다 보니 어떻습니까?

뭔가 또 부족함을 느낍니다. 갈급함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김치를 먹어야 될 사람이 만날 치즈만 먹고 살려니 만족이 안 됩니다. 그래도 한인 교회에서 상처를 받는 것보다 나으므로 차선책으로 서양 교회를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혼자의 경우는 괜찮은데 가족들이 달린 경우는 일이 좀 복잡해집니다.

하여간 하나님은 믿어야 하고, 교회는 다녀야 되는데, 어디 좋은 교회 없습니까? “어떤 교회를 찾는데요?” “적어도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교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교회 다니면서 상처 안 받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1년에 성탄절에 한 번, 혹은 부활절까지 딱 두 번 교회에 오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교회에 오면 많은 분들이 아주 반갑게 맞이해 줄 겁니다. 상처 받는 일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혼자 열심히 성경 보고, 인터넷으로 설교 듣고 기도하면 되잖아요. 헌금은 내가 원하는 곳에 알아서 적당히 내고... 어때요? 좋은 방법입니까? 그럴듯하지만 그건 아니지요. 또 다른 아주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마저 가르쳐 줄까요? 잘 들으세요. “지구를 떠나거라.”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상처가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던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고로 내게 상처를 주지 않는 교회는 죄송하지만 이 땅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최근에 오신 분들에게 제가 목사로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우리 교회요. 마찬가지입니다.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여기도 상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처 없는 교회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 그래?“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혹은 아직 결혼하지 못한 처녀 총각 분들에게 제가 이미 결혼해 보았으니까 솔직하게 이야기 해줄게요. 결혼하면 누가 가장 많은 상처를 줍니까? 그 분입니까? 아니요. 그 새끼입니다. 그 자식이에요. 혹시 제가 목사로서 이렇게 속어를 써서 기분이 나쁜 분이 있습니까? 상처를 받았습니까? 시험 들었습니까?

오늘의 설교 제목이 뭐지요? “왜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는가?” 같이 따라해 볼까요. “왜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는가?” 이거 누구 이야기입니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제발 상처 좀 안 받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행복하잖아요. 그렇다고 지구를 떠날 수도 없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도 그렇고, 방법은 딱 한 가지, 결론이 나오잖아요.

무엇입니까? 상처를 쉽게 받지 않도록 내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내 마음에 기스를 내려고 쇠꼬챙이를 가지고 덤벼도 내가 금강석처럼 잘 단련이 되어 있으면 기스 안 납니다. 아무리 긁어 봐라. 내가 기스 나나? 같이 한 번 따라해 봅시다. “아무리 긁어 봐라. 내가 기스 나나?“

반면 쉽게 기스 나는 사람, 쉽게 상처 입고, 쉽게 시험이 드는 사람, 쉽게 삐치고 토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우선적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무엇을 치료받아야 합니까? 그렇게 쉽게 상처 입는 마음이 치료되어야 합니다. 즉 건강체질이 되어야 하는데 허약 체질이 된 것이 치료되어야 합니다.

옛날 한국에서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꾸중도 듣고 징계의 채찍도 맞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간에 먹을 것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강해졌습니다. 단련이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옛날에 비해 덩치는 좋은데, 때깔은 좋은데 허약체질입니다.

부모가 누가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쉽게 삐칩니다. 도리어 아빠나 엄마에게 막 신경질을 냅니다. 오야 오냐 해주다 보니 자기 뜻대로 안되면 막가파로 나갑니다. 이것 대단히 심각한 허약체질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좋은 사회인, 좋은 리더, 좋은 배우자, 좋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들짐승이나 맹수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가끔 몸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나 회복이 빠릅니까? 죽을 것 같지만 쉽게 죽지 않습니다. 얼마 있다가 거뜬히 일어납니다. 우리들의 경우도 상처를 입어도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상처에 대한 회복 능력이 상당히 강합니다. 과거의 큰 상처도 매우 잘 극복합니다. 일어나서 계속 전진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너무도 쉽게 상처를 입고, 회복도 잘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익군으로서 힘차게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도 쉽게 넘어지고, 너무도 쉽게 상처를 입고, 너무도 쉽게 시험에 들다 보니 교회도 허약체질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언제 마귀와 싸우고, 언제 주님의 일을 합니까?

여러분! 부탁합니다. 허약체질에서 탈피하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넘어졌으면 오뚝이처럼 또 다시 일어나십시오. 스스로 일어서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행26: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그런데 가끔 보면 어린 아이가 넘어져서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 엄마 아빠만 바라보고 계속 엎어져 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안됩니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교회 다닌 지 꽤나 되었는데도 계속 넘어지고 자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꺼꾸러트림을 당해도 계속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사람들입니다. 즉 보배 되신 예수님을 품은 우리 크리스천은 계속 일어난다는 겁니다.

심지어 죽음이란 상처를 입어도 그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으로, 부활로 다시 일어난다는 겁니다. 누가요? 크리스천인 너와 내가 우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험악한 세상에서 교회가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허약 체질로는 안 됩니다. 건강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부탁합니다. 쉽게 상처를 입지 마십시오. 쉽게 낙심하지 마십시오. 쉽게 시험 들지 마십시오. 혹 상처를 입었어도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십시오.

여기 캐나다 땅에 와서 보니 민들레를 아주 가까이서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 민들레가 잡초입니까? 약초입니까? 여기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잡초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초일 겁니다. 그런데 이 민들레가 어찌나 그리 생명력이 질깁니까? 진짜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 노래가 이해가 됩니다.

이 민들레는 꺾여도, 뽑아도, 밟아도 계속 나옵니다. 줄기차게 번집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끈질긴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힘이, 그 능력이 내게는 없습니다. 오늘 분문 7절에 말씀합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치료의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계속 일으킵니다. 마치 오뚝이가 그 안에 중심 추만 있으면 수만 번을 넘어져도 계속 일어나듯이 우리는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는 계속 치료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건강체질이 되어 쉽게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보배 되신 예수님 안에서 건강체질이 되시고, 인생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