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날짜: 
2007/06/17
설교: 

요4:23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사람들마다 이 세상에서 잘살고 성공하는 비결을 각각 다르게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워야 성공하고 잘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를 팔고 논을 팔고 나중에는 집까지 팔아서라도 자식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요즘 한국에는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많이 배워야 성공하고 잘 산다는 사상이 한국 사람들에게 깊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쉬지 않고 열심히 뛰어 다니면 잘살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이 과거 대우그룹 회장이었던 김우중씨입니다. 그는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외국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탈 때 밤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가 성공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얻기 위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함께 운동을 하고, 대로는 뇌물성 선물까지 주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이 세상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방법이고, 또 실제로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세상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 가지고는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잘살고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나, 세상적인 노력이나, 인간관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잘살고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1.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기뻐하신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누구를 찾으신다고 합니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는 장수로 말하면 1장이고, 절수로 말하면 총 31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위한 성막에 대한 말씀은 무려 7장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는 전체가 다 예배에 관한 기록입니다.
또 민수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다가 한 곳에 머무를 때에는 동쪽에 세 지파, 서쪽에 세 지파, 남쪽에 세 지파, 북쪽에 세 지파를 세우게 하고 가운데에 언약궤를 놓아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구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을 것인지 ‘예배’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예배하는 자를 축복해 주십니다.
2. 예배는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창세기4장 4-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여러분, 이 말씀은 아벨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가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장면입니다. 즉 이들을 구분 짓는 것은 학력이 아니었습니다. 돈도 아니었습니다.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아닌 예배가 그 구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린 아벨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반면,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한 가인은 버림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린 아벨은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닮아가고 싶어 하는 모델이 된 반면,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한 가인은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 바로 예배에서 구분되어집니다.
여러분,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돈만 많은 요즈음의 부자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진짜 부자였습니다. 그는 십일조 헌금을 관리하는 직원만 40명의 직원을 둘 만큼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록펠러재단,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하여 시카고 대학을 비롯한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 대학과 연구소를 지어 기증했습니다. 또 4,928개나 되는 교회를 건축하여 하나님께 바칠 만큼 돈을 쓸 줄 아는 부자였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당시 기자가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누릴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어머님이 물려주신 신앙교육의 결과입니다.”라고 대답하며 그의 어머니가 남긴 열 가지의 유언을 소개했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3. 오른쪽 주머니에는 항상 십일조를 준비해 두어라.(돈을 벌면 그때그때 떼어 두라는 것입니다.)
4. 원수를 만들지 말라
5. 예배드릴 때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앞자리는 특별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6. 항상 아침에는 그 날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를 드려라.(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8. 남을 도울 수 있다면 힘껏 도우라.
9. 주일날에는 꼭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라.
10. 아침에는 제일 먼저 말씀을 읽어라.
여러분, 사실 록펠러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르친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십일조 생활 하는 것이나, 항상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것이나, 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등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소한 것들을 귀하게 지켰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배에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의해 우리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우리 개인이나,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의 미래는 다름 아닌 예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의 미래는 밝습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집안은 가능성이 있는 집안입니다. 반면에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입니다. 예배가 사라진 가정은 쇠하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결혼시킬 때 그 무엇보다도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가정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 결혼을 앞둔 청년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예배 잘 드리는 배우자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돈이나, 학력이나, 외모, 등의 세상적인 모든 것은 다 양보한다 할지라도, 믿음과 예배드리는 것만큼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모든 것은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예배만큼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외국 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3.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이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벨과 가인은 똑같이 예배를 드렸지만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 반면, 가인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의심과 불신과 형식과 나쁜 태도로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2. 희생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구약 시대 때 예배를 제사라고 했는데, 이 제사를 영어로 Sacrifice, 희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희생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소를 끌고 오고, 양을 몰고 오고, 비둘기를 잡아와서, 그것을 죽여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희생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편한 것만을 추구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예배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생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말라기 1장 7절과 8절을 보면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떡도 가지고 왔고, 제사 드릴 짐승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러운 떡과 병든 소를 가져 온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시장에 내다 팔아도 제 값을 받지 못할, 다리를 저는 동물, 눈먼 동물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희생이 안 되는 것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희생 없이 예배드리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희생을 추구하기 보다는 편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희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날씨가 나쁘면 교회 오고, 날씨가 좋으면 그린처치(골프장, 공원, 야외)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말고사라고 해서 교회 대신 도서관교회로 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문제가 생겨서 한두 번 늦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항상 늦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예배는 곧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3)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시는 길에 ‘수가’라고 하는 한 동네의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한 여인을 만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여기서 신령의 예배란 형식적인 예배, 시간 때우는 예배, 딴 생각하고 드리는 예배가 아닌, 영과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님,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예배란 진리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요, 진리인 성경에서 가르쳐준 방법을 좇아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예수님을 한 쪽 구석에 몰아넣고 드리는 예배는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쳐준 방법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드리는 예배도 진리의 예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믿음과 희생으로 바르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한국에서든지, 이곳 캐나다에서든지, 어디서든지 간에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01명의 청교도들이 1620년 9월2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를 항구를 떠나, 100일이 훨씬 넘는 기나긴 고난의 항해 끝에, 그해 겨울 12월20일 미국동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청교도들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뭔지 아십니까?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그들은 예배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예배를 위해서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영국에서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청교도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예배의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호’와 비슷한 시기에 ‘매스터’라는 이름의 배는 남미로 갔습니다. 물론 그 배에도 영국의 청교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북미로 간 청교도들과 달리, 금을 찾아 갔습니다. God을 찾아서 북미로 간 청교도들과 달리, 그들은 Gold를 찾아 남미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Gold는커녕, God도 잃어버렸습니다. 물질도 벌지 못하고 신앙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은 페루나, 칠레나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남미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나라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믿음을 위해 북미로 간 청교도들처럼, 생명을 걸고 예배에 임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위해 목숨 걸고 북미로 간 청교도들처럼, 예배에 목숨 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벨과 같이 믿음을 드리고, 희생을 드리고, 삶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기뻐 찾으시는 예배의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