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날짜: 
2003/11/24
설교: 

제 목 ;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본 문 ; 고전 8:9-13

성경의 모든 계명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즉 첫째 계명은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 계명은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해야 하고 나아가 이웃 즉 남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을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남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에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고 대접을 해야지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잔뜩 차려놓고 "많이 드십시오."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고, 나아가 화가 나게 만들 수 있고, 더 나아가 시험에 빠트릴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 보면 음식에 대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고린도 시장에 나온 고기들은 당시 풍습에 따라 대부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난 후에 파는 것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믿음만 있으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라도 먹어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이 "하나님은 우리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허락하는 모양이다." 하고 자칫 진리를 잘못 이해하거나 혹은 "아니 사도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네 ! 저 사람 가짜 주의 종 아니야 !" 하고 형제가 판단하는 시험에 들게 하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즉 바울은 우상은 돌멩이나 나무, 혹은 금덩이나 쇳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을 받지 않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그런 바울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시험에 빠트리면 곧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로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경우도 그런 오해를 살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많은 교회가 성령의 은사 중 알아 듣지 못하는 말로 기도하는 것 즉 방언하는 것을 인정하고, 교회 안에서도 방언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방언을 하면 주의 종들이나 교회의 원로들이 제지를 시켰습니다.
왜 제지를 시켰느냐 ? 방언에 대해 이해력이 부족한 초신자가 교회에 들어와서 어떤 사람이 방언을 굉장히 큰 소리로 하는 것을 보면 "아이쿠, 여기 미친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 나도 저들처럼 미치기 전에 교회에 그만 다녀야겠다 !" 하고 초신자들이 시험에 들까봐 제지를 시킨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방언하는 성도는 교회에서 방언을 제지하면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고 계속 더 크게 방언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초신자는 시험에 들어 결국 믿음에 실족할 소지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형제를 실족시키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14:23, 26)
즉 너희가 하나님의 귀한 은사를 받아서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하여 그러한 하나님의 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제가 33살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기 전까지 원치 않는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무슨 죄냐 하면 그 당시 제 주위에 있는 목사님이 저에게 웃으면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봐, 김전도사, 그렇게 장가 늦게 가면서 처녀들 속태우고 시험 들게 하는 것도 큰 죄야 !"
여러분께서 믿으실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당시 교회 처녀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교회에서는 믿는 총각과 처녀의 비율을 보면 처녀가 훨씬 높기 때문에 웬만한 총각이면 처녀들이 먼저 프로포즈를 해서 미리미리 낚아채가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저같이 믿음 있는 총각이 33살이 되도록 장가를 안가고 주의 일만 열심히 하니까 주위에 있던 처녀들이 얼마나 안달이 나고 군침(?)을 흘렸겠습니까 ? 교회의 목사님들이 처녀들에게 부탁을 받아 저에게 선을 보자고 하고 또 여러 처녀들이 직접적으로 프로포즈를 했지만 제가 거절을 하니까 내심 시험에 들지 않았겠습니까 ?
그래서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이 "이봐, 김전도사, 그렇게 장가 늦게 가는 것도 죄야 !"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그 말씀을 들으면 "에이, 그게 뭐가 죈가 ?" 하고 가볍게 여겼지만 오늘날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좀더 쉽게 예를 들면 여성의 과다한 노출증도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 보면 여성 탤런트나 가수들 중에 누드 사진이나 남이 하지 못하는 파격적인 노출을 해야 인기가 올라가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노출로 말미암아 돈도 벌고 인기도 올라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고 의로운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에 올 때 그렇게 잘 생기지도 못한 배꼽을 남에게 보여주려고 배꼽티를 입고 온다거나, 하나님도 신경 쓰이는 아주 짧은 치마나 가슴이 심하게 파진 옷을 입고 와서 예배 때 남성들의 시선을 흐트러트리면 그것은 분명히 예배 방해죄요, 그래서 형제가 예배 때 은혜를 못 받게 되면 형제를 시험에 빠트리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에이, 우리 목사님, 보기보다는 너무 고리타분하네요. 나 옷 입는 것까지 그렇게 제약하면 나 교회 안다녀요." 하고 말을 할 정도로 시험에 들지는 마십시오. 목사의 이런 말로 여러분이 시험에 들면 목사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아무튼 우리의 옷차림도 남에게 혐오감이나 당황함을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센스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행동일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곳 캐나다에서 느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보다 이곳 사람들이 남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더욱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출입할 때 여기 사람들은 뒤에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경우가 한국 사람들보다 더욱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주인들도 소비자의 입장을 굉장히 많이 생각해주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월마트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물건을 1년 동안 warranty(보증)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비자를 생각해주고, 남을 배려해주는 제도가 잘 된 사회가 선진국이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이곳 캐나다에 와서 보니 장애나나 노약자에 대해 아주 세밀히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리고 가정과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 화목한 가정, 따듯한 가정은 가족 식구들끼리 서로를 배려해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정이요, 좋은 교회도 다른 성도들을 배려해주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훌륭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아름다운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싶습니다. 당신은 남의 사정을 세밀하게 배려해주는 성도, 아내, 남편입니까 ? 아니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독단적인 사람입니까 ?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교우들을 위해 세밀하게 배려하는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