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주께서

날짜: 
2010/02/15
설교: 

요11:17-44 이제라도 주께서
잠이 있어야 꿈이 있습니다. 산이 있어야 골짜기가 있습니다. 어두움이 있어야 밝음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야 기적이 있습니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습니다. 본문은 가장 불행하였던 가정이 가장 축복된 가정으로 바뀐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가 당하였던 불행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 가정은 두 가지 불행이 있었습니다.
1. 고아의 불행
본문을 보면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 셋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 고아로 외롭게 살아야 하는 불행이 있었습니다.
2. 오빠의 불행
그렇게 고아로 살던 중 오빠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이제 그 가정은 여자 고아 둘만 남았습니다. 어른들은 차례로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얼마나 그들이 당한 슬픔이 불쌍하였던지 많은 유대인들이 와서 울면서 위로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이 말씀은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이 되었습니다. 지구상에 살다가 죽은 사람이 약 600억 명이라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의 무덤 묘비에는 이 말씀이 가장 많이 새기어져 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말씀이 나사로 가정에서 말해졌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부활 설교가 나사로 가정에서 나사로를 살리면서 주어졌습니다. 전 세계인이 아는 유명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불행이 가장 큰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를 살릴 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두 가지 잘못된 믿음이 나타났습니다.
1. 과거적 믿음이 잘못 되었습니다.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주님이 떠나지 않고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랬었더라면 하는 것은 과거적인 믿음입니다.
2. 미래적 믿음이 잘못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23절)라고 말씀하니까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24절) 미래적 믿음입니다. 내일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마르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3절)
마르다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빠까지 세상을 떠나자 정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였습니다. 과거적인 믿음을 말하다, 미래적 소망을 이야기하다가 현재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현재적인 믿음 즉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라도 주께서>라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아무리 늦었어도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열대에 속한 기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금방 썩게 됩니다. 그래서 죽으면 그 날로 장례지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본문도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절) 그러나 아무리 늦었어도 이제라도 주님이 하시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이제라도 주님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모세는 80세가 다 되고 입도 잘 움직이지 않아 이제는 양이나 치다가 광야에서 생을 마감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셔서 <이제라도>라고 하시면서 부르셨습니다. 사라는 89세가 되도록 아들 하나 낳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경수도 끊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여자라 이제는 아들을 갖기에는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라도>라고 말씀하시면서 9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늦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내가 네 나이만 되었어도....." 그러나 여러분을 여러분보다 10년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항상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즉 30세의 사람은 20세를 부러워하고, 40세의 사람은 30세를 부러워하고, 50세의 사람은 40세를 부러워하고, 60세의 사람은 50세를 부러워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이 늦은 날이 아니고 오늘이 가장 빠른 날이요, 오늘이 시작의 날입니다. 고로 오늘 시작하십시오. 오늘 공부하시고, 오늘 기도하시고, 오늘 사랑하시고, 오늘 행복을 만드십시오. 실패자는 오늘은 항상 늦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불평하고 오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성공자는 오늘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감사하고, 오늘 기뻐하고, 오늘 사랑하고, 오늘 소망과 행복을 만들어 나갑니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늦었어도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고 하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2. 아무리 불가능하여도
이제 나사로는 나흘이 지나서 썩은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살아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불가능하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제라도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성경은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가능으로 바뀐 사건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전히 늘 입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그것은 불가능해. 나는 못해. 이제 절망이야. 끝장났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살 수 있다는 진리를 부인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뀔 수 있다.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이제라도 주께서>라는 믿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와라!"고 부르시면 없는 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외치시니까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오늘날도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이름입니다.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고로 아무리 불가능하여도 이제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가능케 된다는 믿음으로 희망의 전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3. 아무리 끝장 난 것 같아도
이제는 나사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끝난 사람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 사람입니다. 세포가 다시 살아날 가망성이 의학적으로, 상식적으로 보면 전무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끝났어도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비행 항공술의 선구자인 핸드리 페이지가 수많은 관중들에게 비행기로 에어 쑈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고난도 기술을 순간순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알고 보니 생쥐 한 마리가 전선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선이 끊어지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는 공중 폭발할지도 모를 긴박한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명예는 물론 국가의 명예가 추락됩니다.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박한 것은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끝장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끝났어도 기도하면 된다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는 비행기 기수를 높여 더 높이 날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비행기가 높이 오르자 생쥐가 산소부족으로 질식하여 죽어 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즉 문제가 있을수록 더 높이 날라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미국 전쟁이 한 창일 때였습니다. 멤브란트 장군의 군대가 적들에게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이제 모두가 사살되거나 포로가 될 위기였습니다. 멤브란트 장군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끝난 것입니까? 우리 모두가 죽거나 포로가 되는 것입니까?" 이때 그의 마음속에 벼락치는듯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방 포위는 사방 공격의 절호의 기회다."
이런 음성을 들은 장군은 자기가 엎드려 기도하던 바위 위에 서서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여러 병사들이여! 우리는 지금 사방으로 포위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사방으로 포위된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공격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신다. 고로 사방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공격하라."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용기가 났습니다. 아무 곳으로나 공격을 하였습니다. 어디서든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모든 무기를 다 동원했습니다. 그러자 약한 곳이 뚫렸습니다. 모두가 살아났습니다. 이후부터 이런 전법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방 포위는 사방 공격의 절호의 기회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즉 세상 말로 끝장이 났어도 우리는 그때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남보다 잘나서도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보배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이 되어 몸이 썩으므로 이미 끝장이 난 것 같지만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을 옮겨놓으니 예수님이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오빠가 살아났으니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문제의 돌을 옮겨 놓고 출발하십시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