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형통케 하소서!

날짜: 
2010/03/08
설교: 

시118:25 이제 형통케 하소서!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이 오랫동안 원수들의 핍박 가운데 있다가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유다의 왕위에 오르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시입니다. : 다윗은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5세에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세에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리치므로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사울왕이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자 10여년이나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었고 그의 나이 30세가 되자 유다의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성전에 올라가서 오늘의 본문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제 형통케 하소서!"
그 결과 하나님께서 다윗을 형통케 하셔서 그는 35세에 이스라엘을 통일했고 나라가 번영했습니다. 그리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며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다윗처럼 이런 기도를 해보면 어떤가 합니다. "이제 형통케 하소서!"
'형통'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영어 성경에서는 'success(성공)'이라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15세에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왕이 되기까지 죽음의 위협과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한 목숨 살기 위해 블레셋 사람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사람 흉내도 내며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30세가 되어 유다의 왕이 되어 과거의 고통의 순간을 회상합니다. "아-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구나!" 그러면서 오늘의 기도가 자연히 나옵니다. "주여, 이제 형통케 하소서!"
사람들이 각자 인생을 살다보면 처음에 형통하다가 나중에 불통하여 망하는 사람이 있고, 처음에는 고생을 하다가 나중에 형통하여 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나중까지 계속 형통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대부분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격 형성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의 성공적인 삶은 처음에는 고생하다가도 나중에 형통케 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도 다윗처럼 형통의 복을 구하게 하십니다. 성경에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하셨는데 형통의 복을 구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오늘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께 다윗처럼 형통을 구하므로 형통을 받고 형통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을 비롯해 또 다른 형통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느헤미야
남왕국 유다가 멸망을 당한 후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을 이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도 유다 백성으로서 페르시아 제국에서 관리직에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형통케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으로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느니라."(느1:11)
느헤미야가 이렇게 형통을 원하는 기도를 하자 하나님이 느헤미야를 페르시아 왕에게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의 신임받는 술관원이 되고, 왕으로부터 황폐한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그를 호위할 군대 장관과 마병들도 얻고, 또 예루살렘을 재건할 많은 건축 자재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만사형통입니다. 모든 일이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이 외국 땅에서 모든 일이 이렇게 형통하고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고 성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엘리에셀
창세기 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얻으려고 할 때에 자기의 종 엘리에셀을 고향 땅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때 믿음의 종 엘리에셀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창24:12)
이렇게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 종에게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 리브가를 순적히 만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이란 종은 리브가의 식구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게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창24:56)
여러분, 청춘 남녀가 백년해로할 자기의 짝을 단 한 번에 만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선을 열 번도 더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노처녀 노총각들이 많은데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뭐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겠지요? 그러나 아직도 대책이 안서시는 노처녀 노총각 분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어렵지 않게, 쉽게, 순적히, 형통하게 짝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3. 요셉
구약성경에서 형통의 사람 하면 요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요셉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급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39:2)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원래 요셉이란 사람은 형통의 사람이라기보다 불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17세에 배 다른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팔렸고, 강간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3년간 옥살이를 했으니 얼마나 불통의 사람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불통의 환경 속에서도 요셉을 결국 형통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기근에서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불통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이 생겼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것도 도리어 형통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이란 사람은 억세게 재수 없는 불통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니 결국 모든 것이 형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불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형통으로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누구를 형통케 하실까요?
① (시122:6) :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예배와 기도가 드려지는 곳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성전)입니다. 즉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와 기도를 사랑하면 형통케 됩니다.
② (신29:9) :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 (수1:7) :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 즉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면 어디에서든지(한국이나 캐나다나 어디서든지) 형통합니다.
③ (시1:3)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즉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형통합니다.
④ (잠28:13) :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를 잘하면 형통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식당 주방에서 물을 사용하여 일하다 보면 가끔 물이 막혀서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뚫어야 합니다. 막힌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는 막힌 것을 뚫는 행위입니다. 불통으로 인생이 막혔으면 회개로 뚫어야 형통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에는 어떤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지도 않고, 예배를 기뻐하지도 않고, 악하고 못된 사람인데 보니까 형통한데요?"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21:4)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잠24:1)
악인들도 때로는 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은 결국 불통입니다. 나중은 망하고 맙니다. 종말은 심판입니다. 고로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바른 모습으로 이 외국 땅에서 형통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종말이 더욱 형통으로 끝이 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