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일로 하나님의 일까지 망치지 마라(동영상)

날짜: 
2013/08/11
말씀: 
삼하3:22-30
말씀구절: 

(삼하 3: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삼하 3:23)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삼하 3: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삼하 3: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삼하 3:26)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하 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삼하 3: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삼하 3: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삼하 3:30)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설교: 

삼하3:22-30 인간적인 일로 하나님의 일까지 망치지 마라.

설교 제목을 통해서 오늘 말씀의 주제를 대충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이와 비슷한 제목의 글을 보면 이렇습니다. "작은 일 때문에 행복을 깨지 마라. 사소한 일에 생명을 걸지 마라.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마라.(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지 마라.) 교각살우(矯角殺牛)하지 마라.(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고 소를 죽이지 마라.) 빈대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산간 태우지 마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아시지요? 그리고 그의 아내 힐러리 여사도 아시지요? 그들 부부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여사는 차를 타고 여행을 갔습니다. 가는 도중 차에 가스가 떨어져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주유소 사장이 힐러리 여사의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였습니다.

클린턴 부부는 그 주유소 사장과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몰고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차안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힐러리에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결혼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금 주유소 사모님이 되어있겠군." 그러자 힐러리 여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내가 저 사람과 결혼 했으면 저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걸요."

이랬던 이들 부부에게 인생의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바로 르윈스키 스캔들입니다. 남편 클린턴이 백악관 임시직원인 르윈스키란 젊은 여인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온 세계가 얼마나 요란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당시 자존심이 강한 힐러리 여사의 태도였습니다.

분명히 아내로서, 여자로서, 남편의 적나라한 불륜 사실이 폭로될 때에 가장 화가 나고 가장 힘이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 부부는 이혼을 안했습니다. 이 이유를 제 삼자인 우리가 어찌 다 자세히 알겠습니까? 사면초가에 빠진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였었는지, 아니면 자기도 나중에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 상처를 봉합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이혼을 안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런 면에 있어서 힐러리 여사를 대단히 좋게 봅니다. 성경은 말라기 2:16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요즘 이혼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에는 요즘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목사로서 결혼주례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주례 시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분명히 선포를 했고, 신랑 신부도 아멘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여오는 소문에 의하면 이혼을 했습니다. 아- 참으로 안타깝고 씁쓰름합니다. "괜히 그들 주례 서줬네."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당사자인 그들에게는 이혼할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한국의 드라마 중에 '사랑과 전쟁'이란 프로에 보면 참 세상 요지경입니다. "저런 경우에는 참 살기가 힘들겠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 프로가 좋은 것은 항상 가정을 지키려고 하고, 이혼을 막으려고 애를 쓴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니, 이혼을 미워합니다.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고로 괜히 이런 기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저 사람과 이혼할까요? 말까요?" "이놈! 하나님을 공범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여러분!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싫은 사람과 평생을 산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겠지요. 그렇다고 이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혼에는 리펀드(refund)가 없습니다. 체인지(change)도 없습니다. 이혼이란 말은 원래 하나님의 사전에 없었습니다. 이혼은 죄를 지은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부산물입니다. 남들 다 이혼했다고, 이혼해서 그들은 행복하게 산다고 스스로 이혼을 합리화 시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귀한 뜻을 어기려고 인간적인 감정을 갖다 붙이지 마십시오. 도리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당신께서 짝지어준 사람이 저를 힘들게 해요. 저 그 사람이 자꾸 미워지려고 해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어떡해요. 저에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할렐루야!

여러분! 사람이 밉다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하나님의 일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같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더구나 좁은 한인 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서로 간에 참 힘이 듭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교회를 떠날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못살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했을까요? 아닙니다.

대부분이 사람과의 감정의 문제입니다. 살다 보면 미운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큰 뜻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미운 친구가 있다고 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젊은 여자가 돈이 필요하다고 자기 몸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됩니다. 화가 난다고 홧김에 서방질하면 안 됩니다.

여기 캘거리 목사님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히 신학적인 이론이 서로 다릅니다. 그것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따지면 서로 감정이 상하고, 결국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과 화목이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목사님들 모이면 성경공부 안합니다. 괜히 싸움나기 쉽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어린 아이들처럼 먹고 마시면서 깔깔대고 놉니다. 그리고 운동을 합니다. 운동할 때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침례교 교단 별로 나누어서 시합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늙은 피와 젊은 피가 편을 갈라서 합니다. 즉 젊은 목사 팀과 나이 먹은 목사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합니다. 때로는 남쪽 동네에 사는 목사님과 북쪽 동네에 사는 목사님으로 나뉘어 시합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 된 영문인지 젊은 피와 늙은 피가 시합을 하면 거의 늙은 피가 이깁니다. 테니스도 그렇고, 배드민턴도 그렇고, 족구도 그렇고, 배구도 그렇고... 아- 요즘 젊은 사람들 잘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도 젊은 양반들은 컴퓨터 가지고 일하느라고 그런지, 늙은 목사님들에 비하여 잘 어울려 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됩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여러 부서가 있습니다. 성가대, 찬양팀, 남녀 선교회, 청년부, 중고등부... 이런 부서를 만드는 이유가 뭡니까?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들 부서의 멤버끼리 잘 협력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저 사람이 싫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임원을 맡고 있는 중에는 같이 조인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도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같이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일을 안 합니다. 괜히 김 빼기 작전을 합니다. 즉 감정이 상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까지 망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복도 못 받고 짧은 인생이 지나가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즉 인간적인 일로 하나님의 일까지 망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요압' 장군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가장 어려울 때서부터 그를 도와 나라를 세웠던 사람입니다. 일등공신입니다. 그런데 그런 요압이 '아브넬'이란 장군을 칼로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개인의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동생인 아사헬이 전쟁 중에 아브넬 장군에게 죽었습니다. 전쟁 중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 상황이 아닙니다. 적 장군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항복을 하러 온 겁니다. 그리고 다윗도 아브넬 장군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제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 간에는 자연스럽게 평화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을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아브넬을 간첩이라고 참소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 하는 척 하다가 칼로 배를 찔러 살해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항복하러 온 평화의 사람 아브넬을 요압 장군을 시켜서 죽인 못된 사람으로, 속 좁은 왕으로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요압 장군, 왜 그런 일을 저질렀소." 하고 책망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압 장군이 막강한 군대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왕인 다윗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윗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합니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지로다."(삼하3:39)

여러분! 요압 장군은 자기감정 때문에 나라의 큰일을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러잖아요. 군인이 전쟁에서 적을 죽이면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평화 시에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됩니다. 물론 지금은 요압 장군이 힘이 있어서 감정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보신 겁니다.

그리고 요압 장군은 나중에 솔로몬 왕에게 반역을 저지르다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즉 하나님은 이 사건을 기억하시고 있다가 그와 똑같은 칼의 형벌을 내리신 겁니다. 요압 장군이 인간적인 일로 나라의 일과, 하나님의 일까지 망쳐 버리고 나니, 그는 결국 나중이 좋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자기감정을 컨트롤하십시오. 감정이 상한다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한국 역사에 보면 이런 일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다름 아닌 자기의 심복이요, 중앙정보국장인 김재규 씨에게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조사한 가운데 이유를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박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차지철 씨와 중앙정보국장이었던 김재규 씨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박 대통령이 최근에 비서실장 편을 든 겁니다. 결국 김재규 씨가 "에이, 쌍- 모두 죽어라." 하고 총을 쏘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누구나 자기감정 상하면 그 다음의 행동은 그에 따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빈대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산간 다 태우면 안 됩니다. 자기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교회는 나와야 합니다. 오늘 교회 나오기 전에 부부싸움을 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부부싸움은 했어도 교회에 나왔다는 것, 하나님께 예배는 드려야 한다는 것, 아-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이야기 하나 더하고 오늘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와 동생 야곱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장자가 아버지의 기업을 잇게 되었습니다. 일명 '장자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장자권에는 아버지의 기업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특권까지 포함된 겁니다.

동생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형이 사냥을 하고 배가 고파서 돌아오는 시간에 맛있는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That is his most favorite food."입니다.

형 에서가 동생에게 말합니다. "동생아, 배가 고픈데 팥죽 한 그릇만 다오." 동생 야곱이 제안합니다. "팥죽 한 그릇 줄 테니까 형의 장자권을 나에게 넘겨줘." "그래, 그까짓 것 뭐, 장자권 너 가져." "그러면 새끼손가락 걸고 하나님께 맹세해."

자- 이렇게 그들의 딜(deal)이 성립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합니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12:16)

즉 인간의 작은 일로 인하여, 혹은 돈 때문에, 혹은 감정 때문에, 혹은 사소한 이해관계 때문에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망령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그런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대의를 놓치지 마십시오. 끝까지 중심을 지키시고, 하나님 바라보고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