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

날짜: 
2005/10/30
설교: 

시127:3-5 자녀 교육
오늘의 본문 시편 127:3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존재는 우리의 자녀일 것입니다. 고로 본문 시편 127:4-5에는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믿음으로 잘 양육했을 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반면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녀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근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아마 한국의 어머니들만큼 극성스런 사람들도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조기유학 열풍이 불어 이곳 캘거리에도 상당한 어린 자녀들이 유학생의 신분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귀한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모님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은 자녀 교육을 제법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곳 외국 땅에서 살다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내 자녀를 캐나다 식으로 자유롭게 키울까? 아니면 전통적인 한국식으로 엄하게 키울까? 그것도 아니면 캐나다 식과 한국식을 섞어서 키울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음이 있는 부모님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목사님, 한국식으로도 말고 캐나다 식으로도 말고 성격적으로 자녀들을 키워야지요.” “아 네, 맞습니다. 딩동댕!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성경적으로 키우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자녀교육에 대하여 같이 생각하므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기업인 자녀들을 잘 길러서 우리의 자녀들과 부모님들이 하나님 안에서 같이 기뻐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 중 ‘엄마 아빠’ 빼고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아주 신앙이 좋으신 부모님들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란 단어를 ‘엄마 아빠’ 보다 먼저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 부모님들이나 믿지 않는 부모님들이나 다 같이 가르치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맘마’와 ‘지지’입니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때는 ‘맘마’라고 합니다. 입을 벌리고 먹으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아이들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손으로 집거나, 입에 넣으려고 할 때는 ‘지지’라고 하면서 못하도록 막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렇게 ‘맘마’라는 말속에서 은연중에 부모님의 사랑과 애정을 느끼면서 자라가게 됩니다. 반대로 ‘지지’라는 말속에서 아이들은 가장 기초적인 도덕과 규범을 익히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자녀를 키울 때는 이렇게 ‘맘마’와 ‘지지’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인격이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너무 강조하면 안됩니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맘마’만 강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지지’만 너무 강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티 없이 맑게 자라야 할 아이는 애정결핍증에 걸려서 위축이 되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맘마’와 ‘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 자녀들이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 한국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의 경우 어머니는 ‘맘마’ 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녀가 버릇이 없어지고 사회의 좋은 일원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반면 아버지의 경우에는 ‘지지’ 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먼 당신‘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인기 관리하느라고 ‘지지’를 하지 않고 ‘맘마’를 해보면 자녀들은 “어- 우리 아버지, 요즘 이상하다! 뭔가 잘못 잡수신 모양이다.“ 하고 아버지의 ‘맘마’ 즉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늘 ‘맘마’만 하던 어머니가 무게 잡고 자녀에게 ‘지지’를 하면 자녀들이 ”어- 엄마가 ‘지지’라고 하네! 엄마 요즘 이상하다!“ 하고 엄마의 ‘지지’ 즉 교훈과 징계를 싹-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들에게 ‘지지’를 하지 못하고 ‘맘마’만 하다가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엘리 제사장의 가정입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위해 가져온 제물들을 자기들이 먼저 도적질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겁탈하고 못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엘리 제사장은 불량한 두 아들들에게 따끔하게 ‘지지’를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두 아들에게 “야, 너희들 때문에 내가 창피해 죽겠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체면손상만 염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에게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해서 너의 두 아들을 나보다도 더 중히 여기느냐?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느니라."(삼상2:29-30)
여러분,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우상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 우상을 키우느라고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에게 만날 ‘맘마’만 했지 ‘지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법궤를 들고 나가서 싸우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그들마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은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자식을 잘못 키우니까 복이 아니라 화가 되고 만 것입니다.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산에는 조상들의 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조상들의 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는 흐느끼면서 자기가 조상들 앞에서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백배 사죄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자기의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미리 준비한 회초리로 자기 자신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자기의 잘못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의 종아리를 내려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아들은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면서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하소연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물론 그 아들은 두 번 다시 나쁜 짓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아들이 자라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그의 아들 역시 개구쟁이였습니다. 밤낮 사고를 치면서 부모의 속을 썩였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자기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썼던 방법을 그도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미 매서운 회초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 앞에서 자기의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정없이 자기의 종아리를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들은 곧장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더니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엄마, 빨리 나오세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미치신 것 같아요!" 여러분,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이 상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를 너무 귀여워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뒤 늦게 깨닫고 부모님이 자녀에게 아무리 ‘지지’를 해도 들어 먹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지지’를 하는 부모에게 자녀가 되래 협박을 합니다. “아버지, 자꾸 그러시면 나 가출합니다. 확 죽어 버리겠어요. 경찰에 신고합니다.”
“그래, 이 녀석아 너 죽고 나 죽자 어디 경찰에 신고해봐라.”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손을 댑니다. 그러자 자녀도 열이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경찰에 확 신고를 해버렸습니다. 물론 이 경우 한국 같으면 경찰이 오지를 않습니다. 만약 경찰이 와도 자녀에게 이 녀석아, 그렇다고 네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 이 불효자식아!“ 하며 자녀를 책망합니다.
그러나 여기 캐나다는 상황이 아주 다릅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하면 그것은 형사처벌이 됩니다. 부모님이 감방에 가야 합니다. 구치소에서 지내야 합니다. 전과자가 됩니다. 물론 신고한 아들이 “내가 그냥 전화 한번 한 것뿐이에요. 우리 아버지 처벌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해도 이미 아버지는 수갑이 채워져 끌려갑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보모님과 자녀간에 금이 가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설교를 하면서 여기 있는 자녀들에게 부탁합니다. 아버지가 혹시 심하게 여러분에게 ‘지지’를 해도 그것은 자녀를 위한 마음에서 한 것이므로 경찰에 신고할 제목이 안됩니다. 자녀들이여, 아멘 합시다. 아멘 안하는 자녀들은 두고 보자는 거여 뭐요. 허허허! 참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성경은 자녀 교육에 대해 이렇게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4)
그러나 이곳에서 자녀들에게 채찍을 대다간 안됩니다. 그렇다고 ‘지지’를 할 때 ‘지지’를 못하면 그것도 하나님에게 같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지지’와 ‘맘마’를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모님이 먼저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 먼저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고 해야 할 것은 하는 바른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은 무엇이 ‘지지’이고 무엇이 ‘맘마’인지를 즉 선과 악을 은연중에 깨닫게 됩니다. 혹 당장은 못 깨달아도 나중에 하나님이 철이 들게 하면 다 기억이 납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방에 들어가서 숨을 죽인 채 거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듣고 있습니다. 부부사이에 점점 더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옆에 있는 가스밸브를 틀었습니다. 그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 안에 불길이 크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방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아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까 거센 불길이 아파트 안에 가득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엉겁결에 창문을 열고서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무개야!"라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따라 창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아버지는 홧김에 불을 지르기는 했지만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세 사람이 다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다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첫째로 아버지는 제비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비처럼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머니는 날라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잘 날았겠습니까? 훨훨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습니다. 셋째로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비행기가 창공을 비행하듯이 날아서 땅에 사뿐히 착륙했습니다. 물론 지어낸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제비족이면서 자녀에게 너는 제비족이 되지 말라고 하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날라리이면서 자녀에게 너는 날라리가 되지 말라고 하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자녀가 비행 청소년이면서 나중에 자기 자녀는 비행 청소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야무진 생각을 하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부모로서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녀에게만 하나님을 잘 믿으라고 하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자신은 부모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자기 자녀들에게만 순종과 공경을 강요만 하면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교육은 한결 같이 모범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참교육이요, 참 사랑이요, 참 훈계요, 참다운 ‘맘마’요, 참다운 ‘지지입니다. 이민을 오신 부모님들이 중에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왔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캐나다나 부모님의 모범된 모습이 없이 말만 가지고는 교육의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민 생활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인간의 도리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모범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평생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바르게 헌신하는 모범을 보임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내일의 하늘나라를 이끌어 나갈 귀중한 신앙인이 되도록 내가 먼저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맘마’와 ‘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맘마와 지지 즉 선과 악을 정확히 분별하여 선을 실천할 만한 능력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습니다. 고로 우리는 선악을 분멸케 하며 교훈과 바르게 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좇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우리의 자녀들과 부모님들이 다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므로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