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짐, 공동의 짐, 주님의 짐

날짜: 
2004/05/16
설교: 

갈6:2-5 자신의 짐, 공동의 짐, 주님의 짐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거리를 여행한 노인이 자신이 몹시 지쳐 있음을 깨닫고,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죽음의 신에게, 자기를 불행한 생활로부터 제발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노인의 이러한 부탁에 죽음의 신은 곧바로 찾아와서, 노인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발, 제가 이 무거운 짐을 다시 들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즉 자신은 지금 너무 늙으므로 힘이 달려 이 무거운 짐을 들어올릴 수조차 없다는 것이요, 무거운 짐을 들어올릴 수 있게끔 자신에게 젊음의 힘을 다시 달라는 것입니다. 즉 늙어서 힘이 없어 무거운 짐도 못 들고 죽는 것보다 차라리 무거운 짐을 들고 사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건강을 잃어 아무 일도 못하며 사는 것보다 건강을 가지고 힘든 일이라도 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짐을 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이 있다는 것이요, 또한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반면 짐을 질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늙었다는 것이요, 힘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 만약 여러분들이 건강을 잃어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면 오늘 교회에도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 즉 오늘 이렇게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건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 중 대부분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 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시간을 빼앗기고, 돈도 손해보고, 사람들하고 상대하려면 마음도 피곤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리고, 더구나 교회에 나와 일을 한다는 것은 끔찍한 비극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병원에서 한 노인 중환자 분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 분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나는 별명이
소년 시절부터 천하장사였습니다. 지금까지 나하고 팔씨름을 해서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60살이 되어 이렇게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60살을 사는 동안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았으니 됐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마음에 견디지 못하는 고통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을 보자고 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예, 내가 마지막으로 단 하루만 건강해 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그러면 뭘 하시려고요 ?” "목사님, 제가 다니던 교회가 지금 건축을 막 끝낸 상태예요. 하나님께서 과거에 나에게 60년 동안 주셨던 그 건강을 하루만 되돌려 주시면 내가 가서 새로 구입한 우리 교회, 저 주차장에서부터 목사님 사무실까지, 본당, 교실… 할 것 없이 내 손으로 깨끗하게 청소를 한번 다 마치고 그 이튿날 죽었으면 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목사님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럴 날이 60년이 있었는데… 어찌 그 하루를 지금까지 그렇게 봉사를 안하고 살으셨소 !" 여러분, 건강을 잃고 나서 후회하고, 늙어서 후회하고, 돈을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건강도 있고, 젊음도 있고, 물질도 있을 때 봉사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습니까 ?
그러나 초신자들 중에는 헌신과 봉사하는 것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남을 위해 봉사만 하다가 혹시 내 삶이 파괴되거나 제한이 되면 어쩌나 !" 하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한 생각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하나님께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한사람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즉 진실한 헌신은 기쁨과 재미와 즐거움과 축복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복을 아는 사람은 교회에서 오해도 당하고, 원치 않게 펼쳐지는 상황으로 큰 시험을 당해도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헌신을 하는 즐거움이
교회에서 시험 당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즉 헌신과 봉사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과 특권으로 생각할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부부가 행복합니까 ? 부부가 서로 헌신할 때 행복한 것이 아닙니까 ?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짐으로 생각하거나, 남편이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고통으로 여긴다면 그때부터 가정에는 슬픔과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거의 세계 정상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사람들이 결심은 했지만 헌신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Because people have made a decision. but have never made a commitment). 그들은 가정을 이루겠다고 결심하고 사람들 앞에 서서 고백도 하고, 반지도 교환하고, 서로 키스하고, 함께 축하객들 사이를 행진합니다. 그처럼 결심을 했지만 서로가 헌신하지 않으면 그 결혼생활은 금방 무너지게 됩니다.
교회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영적인 이혼이 일어나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결심은 있는데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조금 더 드려보세요. 애정이 그만큼 더 생깁니다. 설거지 한번 더 해보세요. 애정이 그만큼 더 생깁니다. 청소 한번 더 해보세요. 애정이 그만큼 더 생깁니다. 지금 예배에 참석하는 횟수보다 한번 더 참석해 보세요. 애정이 그만큼 더 생깁니다. 그렇게 축적된 애정이 교회생활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생활이 언제가 재미있습니까 ?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 때 재미있게 됩니다. 그러나 헌신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거나 스트레스로 생각하면 교회 생활에 쉽게 싫증이 나고 활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또한 언제 신앙의 맛을 알게 됩니까 ? 하나님께 헌신할 때 비로소 신앙의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받을까 ?" 하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할까 ?"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받을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더 받지도 못하고, 또 받아도 더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만족도 없고, 감사도 사라지고, 영혼이 말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할 일에 더 신경을 쓰면 반드시 더 받게 되고, 혹 조금만 받아도 만족하며, 감사하고, 영혼이 풍성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받을 일만 생각하는 사람'보다 '할 일을 생각하는 사람'을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짐을 짐으로만 생각지 말고 큰 기쁨과 특권으로 생각하며 헌신하는 즐거움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며칠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여동생에게 이런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 나 오빠에게 상담 좀 할 것이 있어 ! 나 교회 생활이 너무 힘들어 교회를 옮겨보려고 하는데 ?" "아니, 왜 그래 ? 무슨 일이 있니 ?" "응, 오빠도 아시다시피 나는 샌드위치 가게를 하느라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방 일하며 바쁘게 살잖아 ? 그런데 주일날 교회에 오면 또 하루 종일 식당에서 국 끓이고, 밥짓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하느라고 주일 예배도 못 들어가 ! 다른 집사님들은 내가 일 잘한다고 다 나만 시켜 ! 그런데 나는 너무 힘이 든다 말이야 !"
"아니, 그렇게 힘이 들면 짐을 서로 나누어지지 그래 ?" "그러면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 ? 나는 뼈가 빠지도록 두 시간 동안 설거지하느라고 애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 성경 공부한다고 다 들어가 버려 ! 그런데 목사님은 와서 설거지는 나중에 하고 성경 공부에 들어가라고 하잖아 ? 그러면 설거지는 언제 해 ? 성경 공부마치고 나서 설거지하면 오후 4시가 넘게 되는데 그러면 나는 더 피곤하단 말이야 ?"
여러분, 짐을 지게 될 때 각자가 져야할 짐이 있지만, 짐 중에는 공동으로 힘을 합쳐서 져야할 짐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한 사람에게 이 큰 교회를 매주 깨끗이 청소하고, 매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담당하게 하고, 매주 그 많은 설거지를 다하게 만든다면 참으로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
고로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목사 혼자, 혹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 짐을 지는 곳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공동으로 짐을 지는 것이 보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내가 먼저 지려고 할 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모세가 혼자서 백성들을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하자, 모세에게 충고하여 천부장, 백부장 등을 세워 협력하여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교회 때도 사도들이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즉 사도들의 업무가 너무 벅차므로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하고, 다른 일들은 집사들의 협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 수 있는 건강한 말을 뽑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서 1등을 한 말은 2,0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게 만들고, 2등을 한 말은 1,8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말의 주인이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두 말이 힘을 합하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을까 ?"
그래서 두 말을 묶어 함께 썰매를 끌도록 시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두 말이 각자가 끄는 무게를 합친 것보다 1700kg이 더 많은 5,5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 수가 있었습니다. 즉 혼자의 힘보다 힘을 합쳐 협동하는 힘이 더 큰 효과를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참으로 비능률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불어서 일하기를 권면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며,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협동하여 일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법인 사랑과 화목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이 맡겨준 자신의 짐과 공동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세상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만 시키시고, 무거운 짐만 지게 하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이 그만한 일을 시키실 때에는 그만한 기쁨과 축복이 반드시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즉 세상의 무거운 짐은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멍에, 주님의 짐을 질 때에 비로소 인생의 안식을 누리며 살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바로 너의 죄, 나의 죄,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 짐이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드셨든지 주님은 고통과 몸부림을 치며 십자가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으셨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져야할 무거운 심판의 짐이었는데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 그 무거운 짐을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가 너의 무거운 짐을 지었으니 너는 이제 내 안에서 쉼을 얻으라. 다시는 심판과 저주의 짐을 지고 괴로워하지 말고, 내가 주는 쉬운 짐을 지고 기쁨으로 살아라."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68:19)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아무쪼록 세상 짐을 주님께 맡기시고 주님이 맡기시는 각자의 짐, 그리고 공동의 짐을 지며 보람과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