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감사합니다!

날짜: 
2017/09/03
말씀: 
살전5:18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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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혀가 잘리기 전에 최후로 한마디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주위에 둘러 있던 사람들도 과연 마지막 한마디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혹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입술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이런 극한 환경이 혹 당신에게도 다가온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이러한 간증을 접하면서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과연 나도 이런 환경 속에서 이 환자처럼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혹 이런 환경이 내게 닥칠지라도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좋을 때 감사하는 것은 동물도 할 수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든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꼬리를 흔들고, 혹은 혀로 핥으면서 제법 감사의 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자못 눈을 지그시 감고 행복한 표정도 짓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를 돌보아주는 주인을 향하여 충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려워지고, 돈과 명예를 잃어버렸다든지, 질병이 들었다든지, 사고를 당했다든지, 혹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라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에 나오는 ‘범사에’라는 헬라어 ‘엔 판티(en panti)’는 영어로 말하면 in all circumstances 즉 모든 상황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인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사에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일이 잘 풀리고, 기도하는 것이 응답을 받을 때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요, 설사 매사가 꼬이고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은 좋은 날씨에 햇빛만 보고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궂은 날씨에 비 오는 것을 보고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질병가운데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장사가 잘되고 수입이 좋을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가 안 돼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려고 하고, 성공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중에서도, 역경 중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옛날 어떤 마을에 두 아들을 데리고 사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짚신 장사를 하였고, 또 다른 아들은 우산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의 어머니는 언제나 근심과 한숨이 떠날 날이 없었고 가정의 분위기는 늘 우울했습니다. 그 이유는 비가 오는 날이 되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돈을 못 벌게 되므로 근심 걱정을 하고, 반대로 날이 맑으면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이 돈을 못 벌게 되므로 걱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사람을 통해서 충고를 받았습니다. "여보시오, 기왕이면 그런 걱정 근심을 사서 할 것 없이 반대로 생각하면 될 것 아니요. 아- 날이 맑으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반대로 우산 장사하는 아들이 돈 잘 벌 것이니 감사하면 되지 않겠소?“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그 어머니는 마음과 생각을 고쳐서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그 가정에는 감사하는 어머니를 통하여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자리에 처녀 총각들이 많이 있는데 장차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합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원합니까? 아니면 환경에 따라, 감정에 따라, 이익에 따라, 감사도 하고 불평도 하는 사람입니까? 혹은 아무리 잘해줘도 매사에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감사하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자녀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감사하는 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부모님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당신이 사장이라면 감사하는 직원을 고용하기 원합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직원을 고용하기를 원합니까?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감사하는 성도를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성도를 원하겠습니까?
남아메리카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아주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들이 자기들을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 "아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참 많겠군요?"
그러자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예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더 많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러자 관광객들이 "아니 왜요?“ 하고 아주 의아한 표정을 짓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안내인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이곳 아낙네들은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는 것은 괜찮은데 빨래하기에 꼭 필요한 비누가 나오지 않아서 늘 불평이 많습니다."
여러분,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평의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바르게 영광을 돌릴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평의 말을 늘어놓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는 좋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래도 저래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위대한 성도입니다. 위대한 아버지, 위대한 어머니, 위대한 자녀, 위대한 성도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불평하고, 땅을 바라보며 원망하며, 이런 저런 일로 짜증을 내고 부정적이 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땅을 바라보고도 감사하고, 해가 뜨면 감사하고, 해가 져도 감사하며 이래도 저래도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불신자들은 불평촌에 살고 있으므로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불평하고, 여름이 오면 여름이 왔다고 불평을 하고, 가을이 오면 가을이 왔다고 불평을 하고, 겨울이 오면 겨울이 왔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에도 감사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어떤 마을에 예수님을 아주 잘 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사셨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늘 입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떠나지를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감사 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이 할아버지가 명절날이 되어 푸줏간에서 소고기 한 근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그만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마침 개 한 마리가 지나가다가 그 떨어진 고기를 물고 쏜살같이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그 달아나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허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목격한 한 젊은이가 그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할아버지, 그게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맛은 아직 잃어버리지 않고 그냥 있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할아버지는 또다시 “허허, 감사합니다.”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더랍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있으면서 이런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한 청년이 기분이 매우 좋았었습니다. 다름 아닌 누가 자기에게 금강제화 상품권을 주어서 아주 좋은 새 구두를 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께 감사도 할 겸 그 날 새 구두를 신고 철야예배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좋은 구두를 주어서 참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철야예배를 마치고 새벽예배가 있기 전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기에 신발을 벗고 교회의 긴 의자에 누워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일어나서 보니 새로 산 구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뒤지고 살펴보아도, 그리고 마이크로 광고를 해도 새로 산 구두는 찾지를 못했습니다. 이 청년은 너무도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도 이상했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양말만 신고 터벅터벅 길을 걷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상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이 되면 아마 이렇게 하나님께 따졌을는지 모릅니다. “아니 하나님, 이렇게 감사하며 철야예배를 드렸는데 수고했다고 좋은 것을 주지 못할망정 새 구두가 탐이 나서 그것을 뺏어갑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무정하고 매정한 분이십니까? 하나님,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 보세요. 아침부터 신발도 안 신고 길거리를 걸어가는 저를 바라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이고 창피해! 하나님, 신발 하나도 못 지켜 주시는 그런 하나님은 이제 안 믿으렵니다. 이제 그만 관계 끊읍시다.”
그리고 자기의 새 구두를 가지고 간 도둑에게 “에이, 그 신발 신고 평생 무좀이나 걸려 고생이나 해라.”하고 저주를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오히려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새로 산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 구두를 가지고 간 분이 반드시 예수님 믿고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청년은 맨 발로 차가운 아스팔트길을 걸으면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하고 감사의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게 누구 이야기일까요? 30년 전 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혹 무엇을 잃어버리지는 않으셨습니까? 돈, 명예, 건강, 사랑하는 자, 혹은 자신이 가장 귀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렸을지라도 당신이 그 순간 감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멋있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하고 멋있고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