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면서 하는 신앙생활

날짜: 
2007/10/27
설교: 

고전9:7 즐기면서 하는 신앙생활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즐겁습니까? 괴롭습니까? 요즘 교회에 오는 것이 즐겁습니까? 괴롭습니까? 기도를 하는 것이 즐겁습니까? 괴롭습니까? 그리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는 것이 즐겁습니까? 괴롭습니까? 물론 이 물음에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이 많이 나오겠지요. “물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즐거워야 하는 데요. 요즘 저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는 것도 그저 체면상, 억지로, 마지못해 가는 편입니다.”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 야단맞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봐 무서워서 마지못해 믿으려고 하는 경우는 올바른 신앙자세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 억지로 마지못해 하지 말고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하여 즐거움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하는 일을 즐거이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행복한 상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행복한 학생입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면서 즐겁게 피아노를 친다면 행복한 피아니스트입니다. 가정주부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하여 즐겁게 밥도 짓고, 즐겁게 설거지도 하고, 즐겁게 빨래도 한다면 역시 행복한 아내, 행복한 엄마입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혹은 사업을 하면서 즐겁게 일을 한다면 역시 행복한 남편, 행복한 아빠입니다.
여기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아 나는 참 행복하다. 나 같은 죄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외국 땅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니... 참 감사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성도입니다. 그러나 여기 성전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꾸 잡다한 세상 생각이 나고, 짜증이 나며, 성전에 오면 괜히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경우는 불행한 성도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반드시 즐겁게 해야만 합니다.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마음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교우들의 마음도 안좋아집니다. 물론 타락한 인간의 성품은 세상 죄를 짓는 일은 즐겨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은 즐겨하지 않고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은혜 받은 성도는 예배가 마냥 즐겁습니다. 교회에 오고 가는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가정의 일도 즐겁게 해야 하고, 학교의 일도 즐겁게 해야 하고, 직장의 일도 즐겁게 해야 하고, 더 나아가 교회의 일, 주님의 일도 즐겁게 해야 합니다. 저는 억지로 일하는 사장님보다 즐겁게 일하는 회사원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요, 건강의 비결이요, 이민 생활과 유학생활의 성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12)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어느 때에 신앙생활이 매우 즐겁게 느껴진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터닝 포인트가 언제입니까? 저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는 다니고, 자주 십일조도 드리고, 전도도 하려고 했지만 예수님 믿는 참 즐거움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서도 마치 도살장을 끌려가듯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하는 찬송을 부르면서 갔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 오산리 기도원, 지금은 최자실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하다가 성령을 받고 난 후에 그때부터 예수님 믿는 것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터닝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이 넘쳐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주된 찬송은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하는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을 때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너무나도 귀한 은혜를 주시고, 또한 귀한 직분을 주셔서 평생에 주님을 위해 일을 한다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후에 주님의 일은 저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요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는 즐거움, 기도의 즐거움, 찬양의 즐거움, 전도의 즐거움, 교회를 세우는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 매일매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곳 캐나다 땅에 보냄을 받아 외국 땅에서 여러분들과 같이 하늘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어디서든지 우리의 평생에 주의 일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고 그 얼마나 축복된 인생이겠습니까? 오늘날 주의 일을 하는 즐거움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합한 사람 다윗은 이렇게 간구합니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8, 12)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의 즐거움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세상을 살면서 100억의 빚을 지고 파산했습니다. 빚쟁이가 날마다 찾아와서 고통을 주고, 집도 잃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게 생각이 되어 자살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갑자기 나타나 나의 모든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돈도 주고, 더 나아가 100억이라는 돈도 아무 조건 없이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런 경우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도무지 이 사실이 꿈인지 사실인지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환호가 터지며 얼굴이 펴지고 큰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구원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즐거움은 이보다 더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와 여러분은 죄의 삯인 사망의 판결을 받아 이제 잠시 후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고통을 맛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지옥이란 장소의 고통의 의미를 잘 모르기에 대충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그 지옥의 장소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로서 마치 불로 소금 치듯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너무 고통스러워 팔짝팔짝 뛸 정도라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에 치통을 아주 심하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에도 심한 치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 진짜 팔짝하고 뛸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진통제로 가라앉힐 수 있었지만 만약 그 고통이 진통제 없이 계속 된다면 “야, 이런 곳이 바로 지옥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기쁩니까? 마치 오랫동안 외양간에 묶여있던 송아지가 자유를 얻어 기뻐서 뛰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다가 구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천국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천국이란 단어가 주는 기쁨이 잘 상상이 안되므로 세상의 기준으로 예를 들어 보십시다.
요즘 말로 하면 대저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 자가용 비행기도 있습니다. 나를 시중드는 무수한 천사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 가장 멋있으신 분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나의 신랑이십니다. 그 신랑 분은 온 우주의 통치자이십니다.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기의 목숨까지 나를 위하여 내어놓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바로 나의 신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의미요 천국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구원을 얻은 우리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우리는 이 구원의 즐거움 속에 마음에 전율을 느껴야 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할렐루야!’를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구원의 즐거움을 잘 모릅니다. 본인이 예수님을 믿어서 이렇게 통째로 굴러들어온 복을 받은 사람인 것을 잘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문제의 고통에 빠져서 스트레스와 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이런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시4:7)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8) "내가 여호와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61:10)
예수님을 믿어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의 의미를 아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516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리라”(빌3:1)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다가도 즐거워져야 합니다. 더구나 말씀을 보면서 즐거워해야 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즐거워해야 하고, 기도하면서 즐거워해야 하며, 봉사하면서, 예배드리면서, 전도하면서 즐거워해야 하고, 걸어 다니다가도, 자다가 일어나면 즐거워해야 합니다. 더구나 오늘의 본문에 보면 헌금을 하면서도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워하면서 하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순복음 교회 철야예배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보니 성도님들이 헌금을 하는 데에 박수를 치면서 헌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가 하고 알아보았더니 헌금을 하면서도 즐겁게 드리려고 박수를 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헌금을 하면서도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면 다른 모든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박수를 치고 즐거워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우리는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며, 주님의 일을 하는 큰 즐거움 속에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시32:12)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시100:1)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시81:1)
우리가 즐거워 할 때 하나님의 마음도 즐거워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즐거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 가시도다“(시47:5)
여러분, 부탁합니다. 이 외국 땅에서 주님과 더불어 즐거워하십시오. 주님을 즐겁게 만드십시오. 주님의 기쁨을 내 마음 속에 두고 솟아나는 기쁨 속에 큰 행복을 느끼십시오. 그것이 이민생활, 유학생활, 외국생활, 직장생활, 인생살이의 힘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큰 즐거움을 통하여 이 외국 땅에서의 행복을 가꾸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