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사람

날짜: 
2014/12/06
말씀: 
아2:15
말씀구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설교: 

성경을 좀 안다고 하는 분들도 때때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여섯째 날에는 땅의 짐승들과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일단 인간의 경우는 흙으로 빗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에는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물어보겠습니다. 잘 듣고 대답해 보십시오. 사람을 만드셨을 때에는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물고기와 새는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첫째, 새와 물고기도 흙으로 빗어서 만드셨다. 둘째, 새와 물고기는 말씀으로만 만드셨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둘 다 틀렸습니다.

엥- 그러면 답이 뭐야? 창세기 2:19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즉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과 새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흙으로 만드셨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물고기를 흙으로 빗어서 만들면 물에 금방 풀어져서 물고기는 흙으로 만들지 않으셨나? 아마 물고기는 물에 쉽게 풀어지지 않는 어떤 특수한 물질로 만드셨나?”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제가 질문을 할 테니 한번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남자와 여자가 목욕탕에 갔습니다. 누가 더 오래 있을까요? 예- 대부분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자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목욕탕에 오래 있으면 풀어질까봐 빨리 나오는 것이고,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다섯째 날에 만드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드신 땅의 짐승들을 가리켜 통틀어서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이나 짐승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동물들과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이 없는 동물들과 구별하여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하여 사람으로서의 영성과 인성, 윤리성, 도덕성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 동물과 같다. 그 사람 짐승과 같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도 어떤 사람을 가리켜 짐승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보면 7년 대환난 때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를 가리켜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 짐승을 옆에서 옹호하고 받들어주는 거짓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 역시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를 가리켜 ‘용처럼 말하는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뿐만 아니라 사단도 종종 짐승으로 표현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짐승이 무엇일까요?

첫째, 용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용꿈을 꾸면 굉장히 좋은 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용은 사단을 상징하기 때문에 굉장히 나쁜 꿈입니다. 둘째, 뱀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하와를 유혹하기 위해 나타나는 간교한 짐승이 바로 뱀입니다. 그런데 이 뱀이 하와에게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말하는 뱀, 이것이 바로 사단을 상징합니다.

셋째, 사자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먹잇감을 찾기 위해 으르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사자를 사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자는 동물의 왕이므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상징할 때도 사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소와 같이 충실하게 일하시므로 소로도 표현하기도 하고, 또한 예수님은 하늘의 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들의 왕인 독수리로도 표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기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표시할 때에는 비둘기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했습니다. 비둘기는 온유와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회 시절 때 전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에 꾼 꿈 중에 이런 꿈이 있습니다. 당시 저의 집에 서울 강서구 염창동이었습니다. 염창동은 한강 뚝 바로 옆 동네입니다. 그런데 홍수가 나서 한강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물들이 빠지면서 보니까 수많은 물고기들이 땅에 펄떡 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물고기를 그냥 손으로 큰 통에 마구 담았습니다. 즉 전도가 많이 되는 꿈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물고기 중에도 요상 야릇하고 괴상망측하게 생긴 것들도 있었습니다. 언뜻 느끼기에 그것은 먹지 못하는 부정한 물고기였습니다. 즉 사람들 중에도 천국 창고에 들어가는 좋은 신자도 있고, 나중에 골라서 버려지는 나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3장 비유장에 보면 ‘그물의 비유’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그물을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마13:47-48)

또한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하였습니다. 양은 좋은 신자를 가리키고 뿔이 나서 이리저리 받는 습관이 있는 염소는 못된 신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헤롯 안디바라는 분봉왕을 가리켜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13:32)

즉 교활한 헤롯 안디바를 여우라고 표현했습니다. 보통 우리가 ‘여우’라고 하면 여성에 대하여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저것 불여우 같다.”라고 말하면 ‘불란서 여배우’라는 뜻도 있지만 아주 교활하여 남자의 간을 송두리째 빼어먹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남자인 헤롯 왕을 여우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은 예수님도 알아주는 아주 교활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양의 탈을 쓴 이리’를 언급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양 같은데 속은 이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런 표현도 생각납니다. ‘여자는 여우, 남자는 늑대’. 하여간 이리, 늑대, 여우가 양의 탈을 쓰고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가 풍비박산이 나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님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 있었을 때 전도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조장님으로 있으면서 조 식구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연세가 들어 권사님이 되면서 교구 담당 전도사님이 후임 조장님 자리를 다른 동네에서 온 분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조장님으로 되면서 조 식구들이 하나 둘 계속 떨어져 나갑니다.

조장님과 싸워서 떨어지고, 조장님과 돈 문제가 얽혀서 떨어지고, 나중에는 그렇게 조 식구가 떨어지는 것을 전도사님에게 권사님 때문에 그렇다고 이간을 놓았습니다. 그러니 가장 많던 조 식구가 다 떨어지고, 전도사님은 권사님을 이상히 보고,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한번은 저의 어머님의 꿈을 꾸었는데 입에 하얀 횟가루 칠을 한 여우 한 마리가 입을 땅에 대고 있는데, 그것을 저희 어머님이 쫓아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후 그 분이 사건이 생겨 그 교구에 있지 못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희 어머님이 전도하여 조 식구들을 세워놓았습니다.

저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 교회에 여우, 늑대, 이리, 뱀, 용, 각종 더러운 짐승들이 틈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아2:15)

옛날에 당구 좀 치신 남성분들 중에 아시는 분은 좀 아실 것입니다. 당구장에 가면 종종 짐승들이 사람처럼 당구를 치는 모습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인간이 짐승으로 묘사가 되어 있는데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인간에게도 저런 짐승과 같은 마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종 보면 사람은 사람인데 짐승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만 짐승의 마음이 그 속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옵니다. 그가 심히 교만하여져서 자기 힘으로 이 큰 바벨론 도성을 세웠다고 뽐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짐승의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그가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머리털은 깍지를 않아서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결국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 7년간 짐승처럼 밖에서 지냈습니다. 성경에는 안 나왔지만 똥도 화장실에서 보지 않고 짐승처럼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7년 동안입니다. 참 안됐습니다.

그러나 그가 7년이 지나 하늘을 우러러 보고 겸손해지자 짐승의 마음이 떠나고 다시 인간의 총명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왕위를 회복했습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교만해지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짐승과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진짜 사람이고, 살아 있는 생령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람입니까? 짐승입니까? 사람 중에도 짐승 같은 사람이 있고, 짐승 중에도 사람보다 난 짐승도 있습니다. 짐승들 중에도 은혜를 받고 나서 그 은혜를 갚을 줄 알면 사람보다 낫다고 하고, 사람이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그는 짐승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전도서 12:13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더구나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는데 그런 분을 믿지 않고 그 분을 저버리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짐승임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은 결국 짐승이 거하는 곳에 가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짐승으로 태어나게 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요, 그래야 하나님 자녀입니다. 아무쪼록 어디를 가든지 사람으로서, 하나님 자녀로서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 같이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