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초막에서 생각한다.

날짜: 
2009/10/13
설교: 

레23:33-43 추석에 초막에서 생각한다.
각 나라마다 한 해의 열매를 거두고 행사를 갖는 추수절기가 있습니다. 한국은 이번 주가 추석 연휴입니다. 캐나다는 다음 주가 추수감사절 연휴이고, 미국은 11월 넷째 주가 추수감사절 연휴입니다. 캐나다에 12년 간 꽤 오래 살다 보니 한국의 추석이 서서히 잊혀져가곤 합니다. 그러다 여기 한국 식품점의 '추석 연휴 세일'이란 광고를 보면서 "아- 한국이 지금 추석이구나!"라고 생각이 들며 고향생각도 납니다.
여러분, 한국의 '추석'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름달, 송편, 벌초, 제사, 민족 대이동, 배, 감, 사과, 밤... 같은 각종 과일들도 생각이 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추석 절기가 있습니다. 이를 '초막절'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41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초막절은 영원한 규례입니다. 지키다가 중단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금까지 계속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지킬 것입니다. 그들은 가을에 추수한 많은 열매들로 초막을 만들어 그 속에서 온 가족이 지냅니다. 때로는 지붕위에 만듭니다. 뜰 안에도 만듭니다. 성전에도 만듭니다. 현대적으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베란다에도 초막을 만듭니다.
심지어 초막절에 낙타를 타야만 하는 사람은 낙타위에도 만듭니다.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선원들은 배 위에 초막을 만들어 잘 때에는 그 곳에서 잡니다. 여행 중이라 호텔에서 지내야 할 때는 풀을 뜯어 호텔 지붕위에 조금이라고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모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적으로 추석에 추억하며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추석에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한국의 추석 명절이나 이스라엘의 초막절이나 다 같이 추수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풍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을의 풍성한 추수가 있기 전에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리며 가꾼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7-10)
1882년 윤치호 선생이 미국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국에는 단 한 명의 선교사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짐을 싸려다가 200불이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돈으로 마지막 귀국 선물을 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리교 남선교부를 찾아가서 부탁하였습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이 돈을 사용하여 주십시오."
이로 인해 미국 감리교에서는 1885년 4월 5일에 한국에 처음으로 아펜젤러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1882년에 윤치호 선생이 200불을 심은 것이 3년 후에 싹이 나고 100년 후인 오늘 날 한국에는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통하여 복음을 수출하는데 국가가 되었습니다.
초막절 즉 다른 말로 추수감사절 혹은 추석은 우리에게 심고 거두는 법칙을 생각나게 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땅의 법칙인 동시에 하늘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한국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 캐나다에 오시는 분들 중에 영어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들이 여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즉 잘 심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6-8)
어느 교회에 곳곳마다 "기도는 임신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 교회의 성도님 두 분이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애, '기도는 임신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니?" "나도 몰라. 기도하면 임신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그 기도하는 것이 임신이 되었다가 언젠가는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즉 거두게 됩니다. 추석은 심은 것을 추수하는 계절입니다. 심지 않으면 추석은 없습니다. 심지 않으면 추석이 오히려 비참한 날이 되고 맙니다. 심어야 풍성한 추석을 맞이하게 됩니다. 추석은 우리에게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하는 절기입니다.
2.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추석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절기입니다. 초막은 한국의 원두막 같은 것입니다. 원두막인 초막에는 알곡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쭉정이는 밖에서 불태워 버립니다. 이것이 초막절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심판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소개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0-11)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치료를 주시고, 축복과 자비를 베푸시는 구원자로 일하시고 있지만 그날이 오면 예수님은 심판주로 재림하게 됩니다. 즉 알곡 같은 신자는 천국 창고에 모아들이지만 쭉정이 같은 사람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 즉 추수 감사절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추석에 과일이나 새 곡식을 먹으면서 그 맛만 느끼지 말고 심판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어느 판사가 길에 지나가다가 물에 빠져 죽으려는 한 사람을 건져주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아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에서 건짐 받은 그 사람이 살인을 하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죄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법정의 판사는 자기를 물에서 건져준 그 판사였습니다. 죄인은 판사가 자기와 친분이 있는지라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재판장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전에도 내 생명을 살려 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때 재판장은 준엄하게 말했습니다. "오냐. 그 때는 내가 너를 구해준 구세주였으나 지금은 너를 심판하는 심판주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심판주가 되셔서 생명과 죽음을, 양과 염소를, 지옥과 천국을, 어둠과 광명을 엄격하게 갈라놓으실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때는 뇌물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과 사정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꼭 하나 정확하고 냉정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5:22)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사람들은 종종 의인이 악인에게 고통을 당하며, 선인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도대체 하나님은 뭐하고 계시냐? 이런 사람 잡아가지 않고?"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악인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심판할 때가 아닙니다. 악인도 죄인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구원의 때요 은혜의 때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오면 알곡은 거두어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던지게 됩니다. 고로 초막절, 추수 감사절, 즉 추석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3. 추석에는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 감사절, 즉 초막절에 초막을 짓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기억하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7일간의 초막절이 되면 초막에서 지내면서 애급에서 나그네 되었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땅은 나그네 땅이며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영원한 천국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 인생이 끝마치면 본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해마다 보면 한국에서는 추석 때에 고향을 찾으려고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이면 갈 것을 20시간이나 걸립니다. 그러나 한국에 보면 고향이 이북이어서 이런 추석 때가 되면 오히려 돌아갈 고향이 없어서 눈물을 짓고 한숨을 짓는 실향민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이 나그네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이 나라 저 나라,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1948년 그들이 다시 독립할 때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남아 살고 있는 이들도 유목민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모두 나그네 인생입니다. 한국에는 이런 흘러간 옛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노래는 세상 노래인데 꼭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는 찬송가 가사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언제가 본향으로 가야 합니다. 고로 우리는 늘 본향으로 갈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초막절인 추석 즉 추수감사절을 지내면서 우리는 나그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천국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 도착하기까지 후회 없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추수 감사절에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1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2. 심판을 생각합니다. 3. 고향인 천국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