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종

날짜: 
2004/01/18
설교: 

제 목 : 충성된 종
본 문 ; 마태 25:14-30

옛날 한 젊은 신하가 나이 많은 임금님께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임금님,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신하가 될 수 있겠습니까 ?" 그러자 임금님은 그 신하의 뜻이 기특하여 지혜를 베풀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젊은 신하에게 기름이 가득 채워진 잔을 주면서 이 잔을 손에 들고 제한된 시간 안에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나 잔에 가득 들어있는 기름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엄히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을 그 젊은 신하 뒤로 따르게 했습니다.
그 젊은 신하는 임금님께 괜한 질문 한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젊은 신하는 임금님의 명령을 따라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땀방울을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서 가까스로 제 시간 안에 임금님이 계신 궁궐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만족한 듯 웃으며 그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그 젊은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시내를 한바퀴 도는 동안 여자를 보았는가 ?" "못 보았습니다." "그럼 술집은 보았는가 ?" "못 보았습니다." "그러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나왔던가 ?" "임금님, 못 보았습니다. 저는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그곳에 정신을 집중하느라고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야 ! 맡은 일에 충성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시험에 들 겨를이 없는 것일세 !" 그렇습니다. 교회일에,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신경 쓰다보면 다른 데 처다보고 신경쓸 겨를이 없어서 시험에 들 수도 없다는 뜻이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란 분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 하루는 그가 나이가 많았을 때 한 젊은이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살아오시는 동안 시험에 든 적이 있습니까 ?" 그러자 에디슨이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시험 ? 나는 평생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시험에 들 여가가 없었다네 !"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각종 시험에 드는 성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신앙의 지혜를 깨달은 선배들은 이렇게 충고를 해줍니다. "이보게,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보아야지, 사람을 바라보면 반드시 시험에 들고 마네 !"
다시 말해 하나님만 바라보고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은 시험에 들 겨를도 없지만, 순간 순간 사람을 바라보고 이리저리 생각 하다보면 이런 저런 오만가지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시험에 빠지면 자신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암소와 당나귀를 함께 쟁기에 매어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암소는 당나귀에게 "오늘 내가 병난 체하고 누워 있을 거야. 그러면 오늘 일하러 안나가도 되겠지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렴. 그렇지만 난 일하러 가겠어 !" 하고 당나귀는 대답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암소의 몸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맛있는 짚을 먹게 하고 마구간에서 편히 쉬도록 했습니다. 암소는 자신의 꾀가 통했다고 기뻐하며 그 날 밤 농부와 함께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당나귀게 물어 보았습니다. "당나귀야, 혹시 주인이 나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든 ?" "응, 아무 말 없었어 !"
"그래, 그렇다면 내일도 연극을 해야겠는 걸 !" 그리고는 다음날에도 암소는 병든 체 누워있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그 암소를 걱정하며 또다시 맛있는 짚을 먹게 하고 편히 쉬도록 했습니다. 암소는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 방법이 있는데 내가 왜 진작 이런 식으로 인생을 못살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농부와 함께 수고하고 돌아온 당나귀를 불쌍하게 여기며 물어 보았습니다. "미련한 당나귀야, 주인이 혹시 나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었니 ?" 그러자 당나귀가 대답했습니다. "응, 나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어. 그런데 말이야 주인 아저씨와 푸줏간 백정 아저씨하고 한참 동안 얘기하던걸 !"
여러분, 농부하고 푸줏간 주인 아저씨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 농부가 푸줏간 아저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 "이보게, 우리 집에 있는 암소가 요즘 이상하네. 나이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도무지 일을 못하니 이제 소용이 없게 되었어. 자네가 그 암소를 처리해 주게 !" 즉 마귀도 우리가 주를 위해 충성스러히 일하는 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을 잡아 가버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어느 글에 충성스런 일군을 급수로 매긴 것을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여러분들에게도 소개해 드립니다. 이 급수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특급 ;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일하는 사람
* 1급 ; 눈치가 보이면 곧 알아차리고 즉시 일하는 사람
* 2급 ; 남이 이야기해주니까 아차 하고 즉시 일하는 사람
* 3급 ; 주어진 범위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
* 4급 ; 재차 지시를 받고서야 일하는 사람
* 두세 번 책망을 받고서야 겨우 움직이는 사람 : 쓸모 없는 자
* 누가 뭐라 하든 자기 고집대로 제멋대로 하는 사람 : 위험한 자
*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 인색과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자기 개발을 못하는 사람 : 가장 불쌍한 자
* 일할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불평 불만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람 : 가장 불행한 사람

여러분은 과연 이 등급 중에 어디쯤에 해당한다고 여겨 지십니까? 우리 순복음 중앙교회는 모구 특급이나 1급 수준에 속하는 성도들로 가득차 있으리라 믿습니다. 혹시 자신이 2급 이하 성도라도 여겨져도 말씀을 통해 속히 모두가 특 이상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옛날 어느 고을에 두 명의 머슴을 둔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두 머슴 중 한 명은 주인이 보건 안 보건 상관없이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주인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고, 또 다른 한 명의 머슴은 그와는 달리 주인이 없을 때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지금까지 가장 잘 하던 것처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이를 모르는 척하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데 주인은 이들 두 머슴에게 자유를 주기로 하고 그들을 불러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보게, 자네들, 지금까지 우리 집 일을 해주느라 고생이 많았네. 내일은 내가 자네들에게 자유 문서를 줄 것이니 오늘 마지막으로 새끼를 꼬아 주겠나 ?"
그러자 한 머슴은 아무 말 없이 짚을 가져다가 물을 추겨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그 머슴은 마지막으로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니 잘 해주고 가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머슴은 "내일이면 이 집을 나가는데 새끼를 꼬라고 하다니 !" 하면서 주인을 향해 투덜거리면서 일을 하는척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이내 잠을 청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그 머슴 둘을 불러 꼰 새끼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꼰 새끼줄에다 엽전을 꿰어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까지 주인에게 충성을 하겠다고 열심히 새끼를 꼰 머슴은 수많은 엽전을 새끼줄에 꿰어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충한 머슴은 새끼를 꼬지 않았기에 엽전을 조금도 가져 가지 못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서양에도 있습니다. 특히 서양역사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패하고 도망을 가야 하니 얼마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겠습니까 ? 그때 다른 군사들은 왕을 떠나 슬금슬금 자기 살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어 사병 하나에게 그것을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 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병사는 왕의 명령을 따라 말을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패망하여 도망하는 바람에 말도 제대로 먹지 못해 그만 산골짝 길을 가다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는 말 잔등 위의 무거운 짐을 자기 등에 지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병사는 걷고 또 걸어서 목적지까지 도착했습니다. 다른 병사들은 다 도망을 갔고 오직 알렉산더 대왕과 그 병사 하나만이 남고 말았습니다. 그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네 등에 메고 온 물건이 무엇인지 아느냐 ?" 그러자 병사가 "모릅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얼마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전쟁에 크게 승리하여 나라를 되찾고 부귀영화를 다시 회복했을 때 대왕은 그 병사를 궁궐로 불렀습니다. 왕은 그 병사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때 자네가 짊어졌던 그 짐을 이제는 전부 자네에게 상으로 주겠네 !"
그리고 한 신하를 시켜 그 무거운 짐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펼치니 거기에 귀한 금덩이가 가득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짐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오늘 본문에 보면 주인이 세 명의 종들을 불러 각각 재능을 따라 금 한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라고 말하고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그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세 명의 종들을 불러 회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나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보시옵소서. 내가 주인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장사하여 또 다른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러자 주인이 마음이 흐뭇하여 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주인님에게 나아와 말합니다. "주인님, 저도 주인님이 부탁하신 말씀처럼 열심히 장사하여 또 다른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도 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상당히 기분이 나쁜 표정으로 나아와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인님, 내가 보니 당신은 상당히 굳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먼 나라로 여행이나 다니고 우리들만 죽도록 일하라니 정말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 주인이면 답니까 ?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주고 나는 왜 한 달란트만 주는 겁니까 ? 이거 기분 나빠서 일하겠습니까 ? 그리고 내가 누구 좋으라고 당신 재물이나 늘려 줍니까 ? 여기 당신이 준 한 달란트 있으니 도로 가져가십시오."

여러분, 어찌 보면 이 종은 상당히 계산이 빠르고 영리한 사람으로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주인은 상당히 이기주의적이고, 돈 밖에 모르고, 무자비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한 달란트를 준 것은 자신을 무시하려고, 혹은 차별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능에 따라 한 달란트를 준 것입니다. 즉 두 달란트 주어보았자 오히려 부담만 더 될까봐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그렇게 일을 하라고 말을 한 것은 단지 자기를 고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중에 그에 따른 축복과 보상을 주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먼 나라로 여행을 한 것은 혼자 놀러 다니러 간 것이 아니라 주인도 먼 나라에서 자신의 큰 사명을 감당하러 간 것입니다.
어쨌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한 오해로 기분이 상당히 상했고, 그로 인해 주인이 시킨 일을 안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종이 주인의 한 달란트를 도적질하고 횡령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계산대로 주인의 것을 그대로 돌려 드렸습니다. 어찌 보면 상당히 똑똑하고 정직한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의 본문을 보면 주인이 그 종을 정직한 종이라고, 똑똑한 종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차라리 이 종이 주인의 말씀대로 장사를 하다가 그만 본전을 다 까먹었다면 주인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 아마 주인은 이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애야, 너 본전 까먹느라고 마음 고생 많이 했다. 아무튼 너도 충성했으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그러나 이 종의 생각에는 만약 자신이 한 달란트 가지고 장사를 하다가 주인이 준 본전을 까먹으면 주인이 호되게 야단만 칠 줄 아는 못된 사람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즉 괜히 장사한다고 피곤해질 필요 없이 차라리 아무 일도 안하고 있다가 나중에 그냥 한 달란트 주인에게 돌려주면 안전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무익한 종으로 전락되고 말았고, 다른 두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행복을 누리는 데, 자신은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즉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우리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각각 재능을 따라 달란트를 받은 종들입니다. 장차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먼 나라인 천국에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불러 회계할 때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겠습니까 ?
다섯 달란트나 두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여 그 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겠습니까 ? 아니면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스스로 시험에 빠져 주인의 시킨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바끝 어두운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처량한 자리에 서시겠습니까 ?
여러분, 솔직히 말해 하나님이 나를 불러 일을 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특권입니까 ? 나에게 건강이 있고, 그만한 재능이 있고, 감당할 능력이 있기에 시키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 내가 나이 먹어 늙어서 기억력도 없어지고, 체력도 달리고, 재능도 없다면 누가 나를 쓰려고 하겠습니까 ?

그래서 저는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일을 시켜 주십시오. 저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충성을 하겠사오니 부디 저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아무쪼록 이러한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