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 탄식 탄식

날짜: 
2024/04/21
말씀: 
롬8:19-26
말씀구절: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설교: 

오늘 본문에 보면 탄식이란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첫째, 피조물의 탄식(22절), 둘째 신자의 탄식(23절), 셋째 성령님의 탄식(26절)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탄식하다’라는 말은 ‘스테나조’로 ‘신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인생을 살면서 신음하고 탄식해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겁니다. 도대체 왜 신음하고 탄식합니까? 몸과 마음이 아파서 탄식하겠지요. 저의 경우 가족 식구들 보다 제가 훨씬 더 건강 체질입니다. 저는 좀처럼 감기나 몸살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캐나다에서 아주 심하게 몸살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진짜 제 일생에서 가장 추억이 될 정도로 아주 심한 몸살이었습니다. 몇 년 전 COVID-19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한창 백신을 맞을 때였습니다. 저도 백신을 맞기 위해 약국에 가서 보니 거기에 여러 가지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그 중에 대상 포진 백신을 맞으라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대상포진 걸려보신 분이 있습니까? 그거 굉장히 아프다던데... 어때요? 예, 그래요. 그거 굉장히 아픕니다. 그래서 저와 제 아내가 날짜를 잡아서 대상 포진 1차 백신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2차 백신까지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1차 백신을 맞고 나서 제 아내는 괜찮은데, 저는 백신 부작용이 와서 며칠 동안 진짜 끙끙 앓고 신음했습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세상에- 얼마나 아픈지! “아- 이거 뭐야? 이거로도 사람이 죽을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후에 저의 집 사람이 대상포진 2차 백신도 맞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데 제 입에서 즉시 “오- 노(No)! 나 절대 백신 안 맞아. 그거 맞다가 또 죽을지도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이전에 너무 아파서 탄식하고 신음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혹시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러한 우리들의 신음과 탄식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 22절에 보면 피조물의 탄식이 나옵니다. 여러분, 왜 피조물이 단체로 함께 탄식합니까? 다름 아닌 그들도 몸과 마음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아지 키우면서 새롭게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조그만 강아지 새끼가 뭔 근심이 있는지 가끔 한숨을 푹푹 쉬고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강아지들도 사람과 같이 우울증에도 걸리고, 종기와 암도 생기고,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신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강아지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이런저런 병에 걸리고 신음하고 아파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들판에 나가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때로는 그들의 탄식 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물론 인간의 청력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구가 돌아가는 큰 굉음소리나 아주 미세한 지진파의 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합니다.

더구나 하늘이 아파서 신음하고 탄식하는 소리나 수목들이 고통스러워 끙끙대며 탄식하는 소리는 쉽게 캐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도 함께 탄식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다름 아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타락할 때 인간에게만 저주와 질병과 사망이 온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도 같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다함께 고통하며 신음하고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19절) 잠시 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들이 이 땅에 지상 재림을 하게 될 때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파괴당하기 전의 에덴동산처럼 회복이 되고 치료가 됩니다. 그때가 되면 각종 저주와 질병과 고통에서 그들도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때에는 그들의 신음과 탄식 소리가 그치고, 기쁨과 행복의 노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만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너희들도 지금 많이 아프지? 힘들고 괴롭지? 우리 인간 때문에 너희들도 이렇게 탄식하며 같이 고통을 당하는구나! 우리가 미안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더 참아다오.”

여러분, 때로는 우리들도 힘들고 고통스러워 신음하고 탄식하면서 지구를 떠나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탄식과 그 고통을 너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함께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님, 너무 힘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이 고통을 좀 줄여주십시오.”

그리고 본문 23절에 보면 신자의 탄식이 나옵니다. 특히 성령을 받은 우리까지도 탄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 저와 여러분들까지도 때로는 탄식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종종 탄식하고 힘들어하지 않습니까?

왜 탄식하지요? 돈 때문입니까? 병 때문입니까? 그 일이나 그 문제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녀석, 그 사람 때문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 때문입니까? 인생살이 근심할 것이 하도 많아서 그런 세상 근심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해도 때로는 성령을 받고 은혜 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종종 이런저런 일로 인해 탄식을 하게 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럽니까? 아- 하나님을 보다 잘 믿어야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 멸망 길로 가고 있으니 그게 너무 근심이 되고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1:2-3) 즉 차라리 내가 죽고 너희들이 살라는 겁니다.

거의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듯이 저의 경우도 이런 탄식이 참 많습니다. 제가 지금 강대상에서 예배를 인도하면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구를 쳐다보고 있을까요? 환한 얼굴로 아멘하고 웃고 있는 성도님일까요? 아니면 설교할 때부터 계속 졸고 있는 성도님일까요? 아니면 인상짓고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하고 있는 성도님일까요?

물론 저의 시선은 앞에 뒤에, 밑에 위에, 여기저기 골고루 바라봅니다. 그러나 항상 제 마음속의 시선은 일단 여기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아직도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분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각자가 어느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대충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강대상 앞에 올라오면 누가 누가 왔나 하고 쭉- 흩어봅니다.

특히 예배에 자주 빠지거나 가끔 오시는 분들의 자리를 먼저 쳐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 분이 앉아 있으면 “아이쿠, 오늘은 오셨네.” 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그 분이 없다면 “아- 오늘은 또 왜 못 온 거야?” 하며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늦게라도 나타나면 또 다시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심정!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이 아주 절실히 느끼는 심정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의 기분을 좌우합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저의 기쁨과 행복과 자랑이고, 면류관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저의 탄식이고 저의 근심이기도 합니다. 잠언 10:1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려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은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부모의 마음은 거의 항상 자기 자녀에게 있습니다. 자기 자녀가 옳은 길, 바른 길로 가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으면 이보다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가 틀린 길, 좋지 못한 길로 가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로 가면 탄식이 나옵니다.

때로는 그런 자녀로 인해 근심이 쌓이고 쌓여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 자녀로 인해 혹 나도 모르게 어떤 때는 속으로 “아- 이 새끼!“ 하고 욕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녀한테 대놓고 욕을 하면 안 되겠지요. 잘 참아야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바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리라.“(마10:36)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고 참고 또 참으면 좋은 날이 올 겁니다.

오늘 본문 23절에는 성령을 받은 우리들도 탄식하며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즉 우리의 약한 몸, 병든 몸, 썩어질 몸, 죽을 몸에서 다시는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영화로운 몸을 얻게 되는 그날, 곧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을 탄식하며 기다린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고 은혜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도 현재의 몸을 입고 있는 한 이런저런 일로 인해 탄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십시오. 결국 우리들의 그 모든 탄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영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겁니다.

또한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성령님도 탄식을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정의를 갖추신 인격의 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좋아서 기뻐하기도 하시며, 슬퍼하기도 하시고, 화가 나기도 하시며, 행복해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 시대 때 세상을 바라보니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창6:5-6)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선은 항상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즉 너와 내가 하나님의 행복이 되기도 하고, 너와 내가 하나님의 근심과 탄식이 되기도 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 이를 때 사람들이 귀머거리이고 벙어리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습니다.(마7:34) “아- 너는 왜 또 귀머거리가 되었니? 너는 왜 또 벙어리가 되었어? 너는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야? 그렇게 인생을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어?”

여러분, 자녀가 아프면 부모의 마음이 심히 안 좋습니다. 그 자녀 때문에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깊은 탄식을 하시며 그에게 말씀합니다. ‘에바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열려라 참깨’에서 참깨는 빼고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벙어리의 입이 열리고 귀가 열렸습니다. 탄식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 입에서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은혜가 충만한 성도, 늘 기도하는 분들도 어떤 일로 인해서 마음이 처지고 기도조차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주 듣던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의 입도 열리지 않는 영적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되는 답답함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내 심정을 대신하여 탄식하며 대신 기도해주신다는 겁니다.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약할 때 나를 대신하여 탄식하며 기도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고로 때로는 삶이 힘들고 쳐지고 어려울 때 성령님의 그 도우심으로 다시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다시 활력이 생기게 될 겁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주여- 때때로 우리는 힘들어 합니다. 깊은 한숨과 탄식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탄식조차 하지 못하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고 약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내 대신 간구해주시는 성령님이 오늘도 역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여-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여- 다시 힘을 내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애급에서 괴로움을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라.”(행7:34)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사5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