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날짜: 
2013/04/21
설교: 

잠3:9-10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올해가 몇 년도이지요? 주후 2013년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2013년으로부터 한 20년 전 저의 집안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저의 집에 하나님이 주신 빌딩 하나가 지방에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월세가 당시 매달 1000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한국의 5% 정도의 부자가 누리는 축복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정부 개발지역이 되어 그 빌딩에 대한 정부보상이 나왔습니다. 당시 5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때에는 1억이면 서울의 30평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나오자 집안에 싸움이 났습니다. 무슨 싸움이냐? 다름 아닌 십일조 싸움이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그 당시 집사님이었지만 십일조 액수가 커지니까 그 돈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저의 어머님은 "금과 은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이 열 개를 주시면서 '너는 아홉 개를 갖고, 나는 하나만 다오.' 하는데 왜 그것을 못 내느냐? 우리는 더 많이 축복을 받았으니 십일조뿐만 아니라 더 내야 한다." 하고 주장했습니다.
이 십일조로 인한 갈등과 전쟁은 몇 달간 지속되었습니다. 한 달 수입이 천만 원이었을 때에는 백만 원 십일조 내기가 쉬웠는데, 갑자기 5억 5천만 원이 들어와 일시불로 5천 5백만 원을 십일조로 내려고 하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한번 물어봅시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매달 만 불을 벌어서 매 달 천 불을 십일조로 낸다. 두 번째, 매달 십만 불을 벌어서 매달 만 불을 십일조를 낸다.
어린아이 산수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두 번째인 많이 받고 많이 낸다는 쪽을 택할 겁니다. 믿음대로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막상 큰 물질이 들어와 큰돈을 헌금하려니까 저희 아버님의 믿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님이 하루는 오백 만원 수
표를 하나 가지고 오시면서 헌금을 하라고 저와 저의 어머님에게 내놓는 겁니다.
그러자 저의 어머님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니- 5억 5천만 원의 십일조는 5천 5백만 원이지, 어찌 5백만 원입니까?" 그러자 저의 아버님이 대답합니다. "응- 5억 5천만 원에서 나오는 이자를 매달 5백만 원씩 1년간 드리면 결국 5천 5백만 원이 되니까, 그렇게 드릴거야?"
그러자 저의 어머님이 대답합니다. "아니- 여보, 왜 그렇게 잔머리를 굴립니까? 하나님의 것을 가장 먼저 속히 드려야지, 왜 나중에 천천히 찔끔찔끔 이자를 가지고 드리려고 합니까? 생각해 보세요. 제가 밥을 지어서 가장인 당신 것을 가장 먼저 푸지 않고 당신 것을 맨 나중에 누룽지로 드리면 당신 기분이 좋습니까?"
그렇게 십일조에 대한 싸움이 몇 달간 지속이 되자 집안 분위기가 참 안 좋아졌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도 아버님 어머님이 따로 따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식사를 할 때도 아버님은 따로 음식을 차려서 드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총각시절부터 객지 생활을 해서 그런지 요리 실력이 상당히 좋으셔서 오히려 혼자서도 자연스럽게 음식을 더 잘 차려서 드셨습니다.
그 당시 출가한 저의 누님과 여동생도 믿음이 적으니까 5천 5백만 원의 십일조가 크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 돈을 아버님이 자기들에게 주었으면 하고 생각을 하면서 은근히 아버님 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나이가 먹을수록 누가 더 힘이 세집니까?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보통 아내가 더 힘이 세지지 않습니까? 맞지요?
그래서 결국 저의 아버님도 어머님에게 굴복을 했습니다. 하루는 5천 5백만 원 수표를 가지고 오시더니 저와 저의 어머님이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방바닥에 던지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십일조 갖다 내라." 하면서 화를 내고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저와 어머님은 "할렐루야!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수표를 받아 성경책에 끼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수표를 찾으려고 성경책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수표가 끼워진 곳이 말라기 3장이었습니다. 여러분! 말라기 3장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7-12)
여러분! 5천 5백만 원의 십일조 수표가 끼워진 곳이 하필 십일조 축복의 말씀이 있는 말라기 3장에 놓이게 되고,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저는 놀랐습니다. "아하, 이 십일조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구나!"
그리고 그 십일조를 드리려는 날 밤에 저의 어머님이 꿈을 꾸셨습니다. 큰 호박이 넝쿨째 우리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아버님은 그 십일조 수표를 마지못해 내시면서도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으셨습니다. 괜히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고,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저의 아버님이 전화 한 통화를 받고 얼굴이 활
짝 펴졌습니다. 당시 제 여동생이 결혼한 지 몇 년이 되어도 자녀가 안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십일조를 내고 며칠 후 LA에 사는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나 임신했데!" "할렐루야!"
이때 저의 어머님이 아버님에게 말합니다. "여보- 거 봐요. 이렇게 십일조 내니까 딸이 임신을 했잖아요. 십일조 안내서 딸이 임신도 안 되고 시집에서 쫓겨나면 당신 뭐가 좋아요?" 그 후로 십일조 전쟁은 그치고 가정은 도리어 평안해지고, 저희 아버님도 더 큰 믿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저의 어머님이 한 말씀이 가끔 기억이 납니다. "밥 지어서 어른 먼저 드려야지, 맨 나중에 누룽지를 드리면 어른이 기분이 좋을까요?" 오늘의 본문에도 말씀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첫 것을 좋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녀를 낳으면 첫 것, 즉 장자는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3:13 말씀입니다.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누가 잘 섬기고 누가 잘 믿는 겁니까? 좋은 것 생기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고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여러분! 물어봅시다.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일이 당신의 인생사는 순서에 있어서 몇 번째 순서입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인생사는 순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습니다. 첫째, 자기입니다. 둘째, 자기 아내입니다. 셋째, 자기 자녀입니다. 넷째, 자기 부모입니다. 다섯째, 자기 사업입니다. 여섯째, 자기 취
미생활입니다. 일곱째, 자기와 관련된 친구나 친척이나 동료입니다. 여덟째, 자기와 관련된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기중심, 자기 생각, 자기 사상대로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바르게 서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가 우선이고, 자기와 하나님이 충돌하면 늘 하나님께 자기가 옳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믿으라."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 그것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요즘은 이것이 옳습니다." 하고 하나님을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으로 생각합니다.
고로 시험에 잘 듭니다. 교만해집니다. 겸손한 신앙인이 못됩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삶의 순서가 가장 먼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바른 신앙, 심지가 곧은 신앙인이 됩니다.
여러분!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순서를 바꾸는 것입니다. 나보다, 내 아내보다, 내 자녀나, 내 부모보다, 내 애인이나 내 친구나 내 취미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 바른 신앙인입니다.
인생의 어떤 결정을 할 때도 가장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다가 죽으면 순교지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멋대로 믿으면 아무리 큰일을 했어도, 아무리 폼 나고 잘났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결국 꽝입니다. nothing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하고 인생을 사는 것은 항상 하나님이 최우선이기에 결국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겁니다.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처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19-20)
여러분! 이곳 외국 땅 캘거리에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 최우선으로 살겠습니까? 여전히 내가 최우선이 되어 인생을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최우선으로 따르면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자기의 생각이 여전히 최우선이 되어 인생을 살겠습니까?
결론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결국 어디에다 최우선을 두고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최우선이 되어 인생을 사는 중에 하나님이 약속한 좋은 것을 받고 누리며, 진실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