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돋았더라.

날짜: 
2017/01/08
말씀: 
창32:24-32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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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선교사님이 1997년 미시간 주의 어느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면서 그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약품을 전달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정글을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정글을 가는데 군인 두 명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이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그 군인을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고 돌아 왔습니다. 며칠 후 그 군인이 선교사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사실은 우리 두 군인은 당신들이 약품과 돈을 가진 것을 알았기에 정글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신을 죽이고 약품과 돈을 빼앗으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을 호위병 26명이 경호하고 있어서 덤비지 못 하였습니다."
선교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경호원이 없는 데요.” “아니요. 우리만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 5명이 다 같이 보았습니다. 같이 세어 보았더니 분명히 26명이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그 때가 어느 때쯤 되나요?” 선교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날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날 그 때 나는 골프를 치러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나를 기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그만 두고 교회로 가서 몇 명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 때 같이 기도하였던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보세요.” 세어 보니 모두 26명이었습니다. 천사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였습니다.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았습니다. 배고픈 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빼앗은 장자권이었습니다. 그 후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멀리 외삼촌 집으로 보냈습니다. 형의 노가 풀어질 때까지 거기서 살다가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형과 헤어져서 20년을 살았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오는 야곱의 심정은 매우 착잡하였을 것입니다. 갈 때에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갔지만 돌아 올 때에는 아내 4명, 아들 12명, 딸 1명, 그리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에서는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이런 소식이 야곱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야곱은 겁이 났습니다. 20년 전에 악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일단 모든 식구들과 모든 재산을 얍복강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홀로 남아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 눈에 띠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홀로 남았더니’입니다. 여러분! 홀로 있는 시간이 중요한 시간입니다. 홀로 되었을 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세도 홀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에는 늘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야곱이 홀로 얍복강가에서 기도할 때 야곱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이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환도뼈가 위골되고 말았습니다. 야곱과 그 사람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그리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후 일생을 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일어나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가는데 해가 돋았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다리를 절면서 걸을 때 아침 해가 브니엘에서 돋았습니다. 야곱은 평생 처음으로 다리를 절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햇살을 받으며 형 에서를 만나러 갔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걱정하였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옛날 브니엘의 해가 떠오른 것처럼 2017년 새해에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찬란하고 희망찬 해가 떠오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브니엘의 해가 떠오르고 야곱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달라졌는가요?
1. 야곱은 새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까지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데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다는 데에서 야곱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속이는 자’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욕심적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사는 삶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20년 전에 원한을 품고 죽이려고 할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면초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심으로 기도하자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해가 떠오르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7번 몸을 굽히고 절을 하였습니다. 에서가 뜻밖에 달려와서 야곱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악감정이 아니라 감격의 사랑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브니엘의 해가 떠오른 후에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자기가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란 그 이름이 국가 이름이 될 줄은 야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나라가운데 사람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지은 나라는 이스라엘 하나뿐입니다. 온 세계사람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 가운데서 나라를 세운 날을 개천절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둘뿐입니다.
개천절이란 하늘이 열린 날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와서 나라를 세우며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5월 31일 첫 국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국회 임시 의장으로 선출된 분이 이승만 박사였습니다. 그가 사회를 보면서 예정에 없는 한 가지를 제안하였습니다.
당시 감리교 목사님으로서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윤영 목사님에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첫 국회가 열리는 날 가장 첫 번째 한 것은 이윤영 목사님이 단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 분은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이 우주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을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정시(正視)하신 것으로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시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5%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나라를 개국할 때 기도로 시작한 특별한 민족입니다. 즉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애국가의 가사처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대한민국 나라가 건국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자기들만이 정통성을 갖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씨를 부정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교조의 잘못된 영향력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아주 못된 독재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사셨던 노인 분들과 역사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공산주의가 러시아, 중국, 인도차이나, 아프리카, 남미 등 온통 세계를 정복해 나가는 시대에 홀로 공산주의와 싸우며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지켰던 큰 공로가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이승만을 매우 싫어합니다.
2. 야곱은 새 흔적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브니엘의 해가 떠올랐을 때 야곱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 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32;21-32)
환도뼈란 엉덩이에서 다리로 연결시키는 힘줄이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야곱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을 잡을 때 그 부분은 잘라내어 버립니다. 먹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 야곱의 그 부분을 하나님이 취하신 것이니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환도뼈가 부러진 것이 도리어 축복이었습니다. 불구가 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그가 불구가 되었기에 그는 도망을 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형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절며 나아오는 모습을 보고 형 에서가 불쌍히 여겨 동생을 용서하고 화해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은 인간이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야곱은 형을 무서워하여 여차하면 도망을 가려고 했는데, 도리어 하나님은 아예 도망을 못 가게 다리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즉 작은 것을 손해 보게 하시고 큰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우리들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한대로 응답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주권대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처음에는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만족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정확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의 원대로 모두 응답하시면 우리는 타락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기 쉽습니다. 고로 기도는 우리가 하되 응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비록 그 응답이 나에게 깊은 상처의 흔적으로 오랫동안 남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더욱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의 등을 자기 소유 표시를 하기 위하여 인두로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에게는 귀에 구멍을 뚫었는데 이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노예에게는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는데 죽어야만 없어지는 흔적이었습니다. 야곱은 평생 하나님이 주신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들에게도 영광의 흔적과 상처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야곱은 본질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본질입니다. 본질에 충성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장 본질에 충성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본질에만 충실하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은 오직 하나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라고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 것 그 본질에만 충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본질은 땅의 약속을 받아 가나안 땅을 지키며 그 곳에서 민족을 이루어 예수님을 이 땅에 탄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흉년으로 애급으로 피란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들 이삭도 그렇습니다. 흉년으로 블레셋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본질로 돌아 온 것입니다. 손자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년 하란으로 피해 있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는 새해에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본질, 즉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 그 본질에서 벗어났다면 다시 본질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삶은 떠도는 부평초와 같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하나님이 주신 본질의 삶을 살아야 참된 삶입니다. 결론입니다. 아무쪼록 이 새해에 야곱처럼 새 이름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새 흔적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본질의 삶을 사시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