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날짜: 
2004/11/21
설교: 

신33:29 행복의 조건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행복을 '복된 좋은 운수'라고 했습니다. 즉 일진이 좋고, 운수가 좋고, 팔자가 좋아야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로또 복권 일등에 당첨이 되면 행복한 것 같은 애매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삶 속에서 많은 욕구를 가지며, 그 욕구가 충족되어 있는 상태, 또는 그때 생기는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고, 만족의 상태도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행복이 다릅니다. 곧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행복을 말하게 됩니다. 제가 '행복의 조건'에 대해 여러 곳에서 살펴보니 참으로 수많은 행복의 조건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중 성경적으로 일치가 되는 행복의 조건들에 대하여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5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입니다.
즉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100% 만족이라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내게 없는 것만을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많이 가진 자를 바라본다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 그것이라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다시 말해 행복은 모든 것을 갖추었을 때가 행복이 아니라 모자람 속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감사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3년에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가 전국의 20살 이상 된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평균 66.5점이었다고 합니다. 60점을 행복과 불행의 커트라인으로 본다면 간신히 불행을 면하고 사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나라 캐나다로 이민이나 유학 온 여러분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대답해 보세요. 99점입니까? 88점입니까? 77점입니까? 한국 사람들의 평균 점수인 66점입니까?
그리고 이 조사에서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약 70%가 건강을 꼽았습니다. 다음이 경제력이 약11%이고, 사랑이 6.5%, 신앙이 5.2%, 안정된 직장이 2.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01년도 국정홍보처에서 조사한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도 이런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건강 37%, 가족 간의 사랑 35%, 돈 14%, 일에서의 성공과 보람 7%, 정서적 안정, 3%, 종교적 믿음 3%, 기타가 1% 입니다.
여러분은 경우는 무엇이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여기십니까? 통계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보다 건강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의 꿈을 성취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행복의 조건들이 될 수가 있겠지요.
좀더 예를 들면 축구 선수는 결승골을 집어넣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상대방 골키퍼는 죽을 맛이겠지요. 야구 선수는 홈런을 치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상대방 투수는 쓰디쓴 불행을 느끼겠지요. 내가 좋은 땅을 사거나 좋은 집을 사면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친척 사촌 중에 혹시 한국 사람이 있어 그 소리를 듣는다면 갑자기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날 것입니다.
즉 내가 행복하다고 남도 나와 똑같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의 불행을 전제로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이기심의 발로요 추천할 만한 행복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지 않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해야 합니다. 고로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헛된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헛된 자랑은 결국 남의 행복을 파괴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떤 주부가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성실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남편은 직장 일을 마치면 일찍 집에 들어와 자녀들과 시간도 보내고 가정 일도 도와줍니다. 아내는 그러한 남편을 바라볼 때 "아- 나는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학교 동창회에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남편 자랑을 합니다. 남편의 높은 지위, 좋은 수입, 그리고 그에 따른 부귀와 영화를 자랑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은 이 주부는 그만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우울한 표정을 짓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남편을 위해 밥을 차려주지 않습니다. 남편이 어디가 아프냐고 하면 그냥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숨을 짓습니다. 순식간에 그녀의 행복은 사라지고 불행이 깃들게 되었습니다. 동창회에서 친구들의 자랑소리를 듣다보니 그만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불행이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부모복도 없고, 여자복도 없고, 직장복도 없고, 돈복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늘 웃고 사는 행복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에게는 늙고 못 배운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아내도 미인이 아니었고, 그의 집도 형편없이 작았습니다.
불행이가 물었습니다. "아니, 행복할 거리라곤 하나도 없는데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그러자 행복이가 불행이를 데리고 길 건너편에 있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술실 앞에서 초조해하는 사람들, 병실에서 앓고 있는 사람들, 링게를 꽂은 채 휠체어를 굴리며 가는 사람들, 영안실에서 통곡하며 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면서 행복이가 불행이에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우리는 저들에게 없는 건강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 날 걱정해 주는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 작지만 내 집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 나는 불행을 느끼게 될 때마다 숨을 크게 쉬어봅니다. 공기가 없다면 죽게 되겠지요. 그런데 공기가 있지 않은가요. 마찬가지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생각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지요."
여러분, 영화배우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사람이 있습니다. 뛰어난 미모로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모든 남성들의 애정의 시선을 홀로 누린 여인, 그리고 온갖 사치를 부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부자, 이런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이 바로 마릴린 먼로입니다. 그런데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삶에 지쳐 한 순간도 평안이 없으며, 기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마릴린 먼로는 결국 자살로 자신의 삶을 끝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송명희 시인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뇌성마비 환자로, 온갖 고난을 홀로 짊어진 가장 가엾은 여인입니다. 그녀보다 못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한탄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 비록 가진 것이 없으나, 공평하신 하나님이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나에게 갖게 하셨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고!" 그녀가 가진 유일한 한 가지 그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분명 행복의 조건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행복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결혼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말을 합니다. 결혼을 하는 사람 중에 불행을 원하여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즉 누구나 결혼을 통하여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던 그 결혼이 깨지는 것을 보면 결혼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CNN 방송이 최근 미국 심리학회가 발행하는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한 조사 결과를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연구에 보면 결혼과 행복의 함수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결혼초기에는 "깨가 쏟아진다" 같은 표현처럼 짧게 감정적 상승을 경험할 수 있지만 결국 결혼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결혼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마법 상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혼하면 행복하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녀를 낳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혹은 손자나 손녀를 보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사람에 따라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적어도 진리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일시적인 행복이 아니라, 이기적인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잘못된 행복의 도취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인정하시는 올바른 행복을 찾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한 분이시기에 어떻게 하면 인간이 행복해지고, 어떻게 하면 인간이 불행해지는지를 잘 아시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만들 때 그들은 행복하게 창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은 불행의 동산이 아니라 행복의 에덴 동산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행복이었고 하루하루가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 죄가 들어오고, 그 죄를 틈타 마귀가 들어오니, 결국 질병도 들어오고, 저주도 들어오고, 사망도 들어오므로 순식간에 아담과 하와에게 행복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죄
는 인간의 행복을 파괴시킵니다. 죄는 부부간의 행복, 가정의 행복, 인류의 행복을 파괴시킵니다. 고로 죄를 이기지 못하고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는 행복은 단지 허상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과학과 의학을 발달시켜보지만 죄를 없애지 않고서는, 마귀를 물리치지 않고서는 병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죄를 정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물질적인 부요가 있더라도 진정한 행복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죄악과 불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들이 의롭게 되지 않는 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유토피아는 이룩될 수 없습니다. 의로움이 없는 곳에는 완전한 행복이 없습니다.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의는 나눌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불의가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즉 마귀를 이기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마귀를 이기신 분이십니다. 고로 그 분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사망의 불행에서 생명의 행복으로, 저주의 불행에서 축복의 행복으로, 질병의 불행에서 건강의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는 틀립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행복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입니다. 세상 행복과 비교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복을 누리고 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일시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고로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는 백성이 누구뇨"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 주심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에게 있는 행복은 안개와 같고 물거품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또
다시 불행해지고 맙니다. 고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외국 땅에서도 행복을 가꾸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